너무나 갑작스러운, 그래서 더 충격적인 북미정상회담 취소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당혹감과 안타까움 속에 어떻게든 회담을 다시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이번에도 역시 북한의 위장평화 전술에 속았다며 거세게 비토하는 부류도 있다. 정부·여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이 전자라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은 후자에 속한다.
북미정상회담 취소 소식에 24일 밤 11시 30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긴급소집한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된 6월 12일에 열리지 않게 된 데 대해 당혹스럽고 매우 유감"이라며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는 포기할 수도, 미룰 수도 없는 과제다.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온 당사자들의 진심은 변하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정상회담 취소는 당혹스러운 일이지만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평화당과 정의당은 각각 "대화와 협상 과정에서 쌓아온 신뢰와 약속을 바탕으로 비핵화 협상의 실마리를 찾고 불씨를 살려야 한다"(최경환 평화당 대변인), "북한이 차분한 반응을 내놓은 것은 긍정적이다. 아직은 판이 완전히 깨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부디 오늘의 고비를 무사히 넘어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최석 정의당 선대위 대변인)며 희망의 불씨를 되살려야 한다고 밝혔다. 평화당과 정의당은 이와 함께 문 대통령의 역할을 강조하며 적극적인 사태 수습에 나서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반면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일제히 문 대통령을 향해 맹비난을 쏟아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25일 경기도 수원에서 열린 현장 선거대책위원회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취소됐는지도 모르고 왔다. 그걸 어떻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외교참사다"라며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네 사람을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오마이뉴스
홍 대표는 이어 "지난 6개월 동안 김정은의 한바탕 사기쇼에 대한민국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이 놀아났다"며 "판문점 선언을 할 때 이것은 평화쇼에 불과하다고 이야기 하고 많은 사람에게 비난을 받았는데 그게 한바탕 평화쇼에 불과했다. 남북 평화쇼는 끝났고, 여기에 가려 정권이 방치한 민생을 한국당이 바로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역시 문 대통령을 강하게 성토했다. 유 공동대표는 25일 최고의원회의에서 "한미 동맹이 정상이 아니라고 본다"며 "문재인 대통령은 그동안 운전대에 앉아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도대체 무엇을 조율했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북미정상회담 취소로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비핵화, 완전한 북핵폐기는 원점으로 돌아갔다"며 "미국과 북한이 금방 전쟁이라도 할 것 같이 험악한 말 폭탄을 주고받으며 안보위기를 고조시킨 지난해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여지를 남겨놓은 만큼 대화와 협상을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사람들과 북미정상회담 취소의 책임을 물어 문 대통령에게 맹공을 퍼붓고 있는 사람들. 갑작스런 북미정상회담 취소 소식에 정치권의 입장은 이처럼 극명하게 나뉜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태도가 북미정상회담 취소 전이나 이후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전자(정부여당·평화당·정의당)가 역사적인 남북·북미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초당적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해온 반면 후자(한국당·바른미래당)는 비판과 흠집내기로 성과와 의미를 깎아내리는 일이 잦았다.
지난 몇 개월 사이 한반도에서 기적처럼 펼쳐지고 있는 '데탕트'의 흐름에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보여준 반응으로 짐작컨대, 그들은 아마도 이런 변화와 상황을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아니라면 남북 평화와 번영을 위한 남북·한미·북미 사이의 치열한 외교전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표출된 그들의 반평화적·반통일적 행태를 도무지 설명할 방법이 없다.
북미정상회담 취소가 실망스럽다는 것에 이론의 여지는 없다. 전쟁 위기설이 거론되던 안보위기 상황 속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통한 화해·평화의 흐름을 주도했던 우리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일순간에 허물어졌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우리 정부가 수개월 동안 공들여 쌓아 올린 탑을 일거에 무너트린 당사자는 회담을 일방적으로, 그것도 한미정상회담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취소시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정상적인 국가 관계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외교적 결례를 범한 셈이다.
그러나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적 결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조차 없이 문 대통령 비판에 화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회동이 예정대로 진행될 수 없다는 사실에 실망스럽다"(메이 영국 총리),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와 군비 축소 과정은 계속돼야 한다"(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싱가포르 회담이 취소됐다는 데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회담의 중재역을 맡은 한국과 상의하지 않은 것은 '동맹국에 대한 경솔함'"(뉴욕 타임스) 등 국제사회와 외신이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 취소 결정에 우호적이지 않은 데도 말이다.
복잡난해하게 얽혀있는 관계의 문제를 이해하는 지름길은 '역지사지'에 있다. 북미정상회담이 전격 취소된 배경 역시 그런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보낸 '공개서한'을 통해 "최근 당신들의 발언에 나타난 극도의 분노와 공개적인 적대감으로 보건대, 애석하게도 지금 시점에서 이 회담을 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느낀다"고 밝혔다.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을 뜻을 내비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과 펜스 부통령을 "아둔한 얼뜨기"라 비난한 최선희 부상의 강경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북한의 자존심을 먼저 건드린 쪽은 미국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천명한 이후 미국은 지속적으로 그들을 자극해왔다. 대표적인 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의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PVID)를 위해 북한 내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능력이 완전히 제거돼야 한다"며 "그 결정의 이행은 모든 핵무기를 제거하겠다는 것, 핵무기를 폐기해 테네시주 오크리지에 가져오는 것을 의미한다"고 대놓고 말했다. 북한의 주권을 완전히 무시하는 강압적이고 고압적인 언사다.
또한 미국은 생화학무기 폐기, 인권 문제 등도 협상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북한이 받아들이기 힘든 리비아식 핵 폐기 모델을 거론하는 등 계속해서 심기를 건드려왔다. 이와 관련 박지원 평화당 의원은 25일 페이스북을 통해 "트럼프는 '말과 종이'로 약속하지만 김정은은 '핵시설 핵무기 폐기로 보장'한다는 저의 지적이 사실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상호 신뢰가 쌓이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이 먼저 자신들의 카드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 뉴시스
주목할 것은 북미정상회담이 취소됐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개서한의 말미에 "언젠가는 당신을 만나기를 고대한다. 이 가장 중요한 회담과 관련해 마음을 바꾸게 된다면 주저하지 말고 전화하거나 편지해달라"고 여지를 남겼다. 북한도 김계관 부상 명의의 담화문을 통해 "우리는 항상 대범하고 열린 마음으로 미국 측에 시간과 기회를 줄 용의가 있다.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다"며 대화의지를 나타냈다. 이는 북미정상회담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있다는 의미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담화문과 관련해 25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북한으로부터 따뜻하고 생산적인 아주 좋은 뉴스가 전해졌다. 우리는 이것이 어디에 다다르게 될 지 조만간 알게 될 것이다. 바라건대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번영과 평화가 이뤄지길 바란다. 단지 시간 (그리고 능력)이 말해 줄 것"(Very good news to receive the warm and productive statement from North Korea. We will soon see where it will lead, hopefully to long and enduring prosperity and peace. Only time (and talent) will tell)이라고 말해 이같은 전망에 무게를 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그들은 그것(북미정상회담)을 무척 원하고 있다. 우리도 그것을 하고 싶다. 우리는 일단 지켜볼 것이다. 회담은 6월 12일에 열릴 수도 있다"며 하루 전과는 전혀 다른 뉘앙스의 말을 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이날 오후에는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정상회담 재개에 관해 북한과 매우 생산적인 대화를 하고 있다"며 "북미정상회담을 하게 된다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릴 수도 있다는 의미로, 비핵화 방법과 과정에 대한 북미 사이의 의견 조율 실패가 6월 12일 회담이 취소된 본질적인 원인이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다시 말해 북미 모두 정상회담의 시기와 내용에 이견이 있을 뿐 판 자체가 깨지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오히려 북미정상회담이 잘 안 되기를 바라는 쪽은 따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바로 그렇다. 그들은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급물살을 탄 남북 평화와 화해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행보로 세간의 비판을 받아 왔다. 외교·안보 문제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북·북미정상회담마저 정쟁의 수단으로 삼는 정략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의 위기가 감돌던 한반도에 평화체제 구축의 가능성이 마련된 것은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남북과 북미 사이의 관계 회복에 나선 문재인 정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한결 같은 평가다. 그러나 유독 한국당과 바른미래당만 다른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북미정상회담이 취소되자 내보인 반응 역시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한반도가 전환기적 흐름을 맞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어렵게 찾아온 천재일우의 기회가 헛되이 사라지지 않도록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전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모습은 마치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의 분위기가 무르익는 것을 꺼리고 있는 것처럼 비쳐진다.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와 번영, 나아가 남북 통일의 초석을 다져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임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없는,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행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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