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회의는 자신들의 기득권 수호를 위해서라면 여야 없이 일치단결 할 수 있다는 쓰라린 진실을 알려주었다. 이는 곧 국회가 근본적으로 개혁되어야 하는 필요성을 스스로 입증하는 꼴이다. 무엇보다 이번 개헌에서는 다당제 확립을 통한 국회 기득권 타파가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다."
홍문종·염동열 자유한국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자 정의당이 날린 쓴소리다. 추혜선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21일 논평을 통해 "매우 충격적인 결과다. 무엇보다 이번 부결 사태에 앞장선 보수야당들의 추악한 동료 감싸기를 강력히 비판한다"면서 "앞에서는 날을 세우고 싸우는 여야 국회의원들이 뒤에서는 이렇게 동료애를 발휘해 서로 감싸주고 있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ㅇ추 대변인은 이어 "권성동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요구서가 국회에 도착하지 않은 관계로 권성동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는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라며 "다음 본회의에서 권성동 의원의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국회를 향한 국민들의 분노는 들불처럼 일어날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그러나, 권성동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처리까지 지켜볼 필요는 없을 듯하다. 홍문종·염동열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 후폭풍이 이미 거세게 일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썩어 빠진 국회 해산을 원합니다', '무기명 투표 행위를 없애 주십시오', '홍문종, 염동열 체포동의안 찬반명단 공개를 요구합니다', '방탄국회 해산하라' 등의 관련 청원이 줄을 잇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는 '국회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분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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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국회는 21일 본회의를 열고 홍문종·염동열 의원의 체포동의안을 상정·표결했다. 무기명 투표로 실시된 홍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총 275표 중 찬성 129표 반대 141표, 기권 2표, 무효 3표로, 염 의원의 체포동의안은 찬성 98표, 반대 172표, 기권 1표, 무효 4표로 각각 부결됐다.
홍 의원은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사학재단인 경민학원을 통해 불법정치자금 75억원을 횡령·배임하고 업체 대표로부터 사업 편의를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8200만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런가 하면 염 의원은 강원랜드 교육생 선발과정에서 지인 자녀 등 수십명의 부정채용을 청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홍문종·염동열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은 지난 4월 2일과 11일 청구됐지만 국회 파행으로 인해 신병처리가 지금까지 미뤄지고 있던 상태였다. 이 과정에 한국당은 드루킹 특검 요구로 두 달 가까이 국회를 보이콧하며 '방탄국회'를 열고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당은 각종 민생법안과 청년 일자리 추경 심의에는 손을 놓고 있더니 동료의원 감싸기에는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체포동의안 표결 직후 "결과에 대해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라며 눈시울을 붉힌데 이어 "무죄 추정의 원칙, 불구속 수사 원칙에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은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있다"며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강조해 공분을 샀다.
안이한 태도로 표결에 나섰던 더불어민주당을 향해서도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날 반대표는 한국당 의석수인 113표보다 많았다. 이는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등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 일부도 반대표를 던졌다는 의미다. 체포동의안 부결 직후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원내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민의를 거스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발빠르게 사과에 나선 배경이다. 부결에 따른 여론 악화를 의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체포동의안 부결 이후 여론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드루킹 특검·추경안 등으로 한 달이 넘게 여야가 격렬하게 대치하는 동안 민주당은 국회 파행의 책임을 물어 한국당을 맹비난해오던 터였다. 심지어 민주당 내부에서는 한국당의 기습적인 5월 임시국회 소집을 체포동의안 처리를 막기 위한 '방탄국회용'이라 비판할 정도였다.
그랬던 그들이 역시 '가재는 게 편'이요, '초록은 동색'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앞에서는 치열하게 싸우는 척 하다가도 뒤에서는 동료의 허물을 덮어주는 눈물겨운 동료애를 보여준 것이다. 작심하고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선 한국당보다 체포동의안 가결을 권고적 당론으로 정해 체포동의안 부결에 일조한 민주당에게 세간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이유다.
민심이 심상치 않다고 여긴 것일까. 민주당이 현행 무기명 투표 방식을 기명 투표 방식으로 바꾸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발의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민주당은 논란이 되고 있는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폐지 방안도 검토할 방침이라 한다. 폐지 여론이 높은 불체포특권에 기대어 동료 의원 감싸기에 앞장선 한국당이나, 비판 여론이 쇄도하자 부랴부랴 민심수습용 법안을 내놓고 있는 민주당이나 이럴 땐 '도긴개긴'이다.
그동안 여야는 선거 때마다 다양한 정치개혁안을 내놓으며 표심을 자극해왔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역시 그 중의 하나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전혀 없었다.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 등을 포기하겠다며 서로 경쟁하듯 특권폐지안을 내놓았지만 선거가 끝나면 그들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약속은 번번이 휴지가 됐고 그 때마다 국민의 탄식은 늘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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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사학재단을 통해 불법정치자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는 홍 의원과 강원랜드 인사청탁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는 염 의원은 모두 범죄 정황이 뚜렷한 비리 혐의자들이다. 특히 염 의원을 비롯해 한국당 출신 전·현직 의원 7명이 관여돼 있는 강원랜드 채용비리는 2012~2013년 채용된 518명 중 무려 493명이 인사청탁으로 발탁된 것으로 드러나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국회는 '역시나'였다. 그들은 이번에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눈부신 동업자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무기명 투표의 '익명성'에 숨어 비리 혐의로 구속 위기에 처한 동료의원을 구명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로 인해 특권 없는 사회를 갈망하는 국민의 기대는 또다시 '기망'(欺罔)당했다. 그것도 민의의 전당이라 불리는 국회에 의해서.
국회의원의 특권과 권한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국민소환제'가 포함된 대통령 개헌안을 한국당 등 보수야당은 단호히 거부했다. "사회주의 개헌", "좌파 세력들만의 헌법" 등의 색깔론 공세를 폈지만 보수야당이 대통령 개헌안에 반대한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6월 개헌이 현실화 될 경우 지방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데다가, 권력구조 개편을 통해 의회 권력을 강화시키려는 목표 역시 물건너 가기 때문이다.
보수야당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분산·축소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회의 권한과 위상을 높이는 책임총리제를 기반으로 한 분권형 대통령제가 그 대안이라는 주장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도 의원내각제를 선호하는 의원들이 상당수다. 그러나 국회에 대한 국민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임을 감안해야 한다는 반론이 가열차다.
홍문종·염동열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은 그들의 주장이 어불성설에 불과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단적인 예일 터다. 사회에 만연해있는 적폐들의 개혁과 혁신에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국회가 비리 혐의에 연루된 동료 의원 구명에 나서고 있다. 책임총리제, 분권형 대통령제, 국회의 위상 강화 등은 이제 운운하지 말라. 미안한 얘기지만 저급하기 짝이 없는 국회의 수준으로는 언감생심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만큼 우리 국민은 어리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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