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착방예(圓鑿方枘)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둥근 모양의 구멍에 각진 막대를 넣으려는 상황을 빗댄 말입니다. 둥근 구멍에 모난 막대를 집어 넣으려니 들어갈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아무리 안된다고 말을 해주어도 고집을 꺾지 않습니다. 누가 봐도 안되는 상황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으니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만 속이 끓고 애가 탑니다. 북한이 쏘아올린 장거리 로켓(위성)에 대응하는 박근혜 정부의 모습에서 원착방예의 고사가 떠오릅니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에 성공했자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를 고고도에서 격퇴시키는 시스템인 사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알려진 대로 사드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감지하고 이를 추적해 대기권에서 격추시키는 시스템입니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은 고도 40km 이상 150km 이하의 궤도로 타겟을 향해 날아갑니다. 만약 북한에서 대한민국을 공격한다면 중고도 높이의 스커드나 화성미사일, 노동미사일 등을 집중 사용할 것입니다. 장거리 미사일 격퇴를 목표로 개발된 사드를 한반도에 설치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죠.
ⓒ KBS 뉴스
미국이
사드 배치에 열을 올리는 것은 사드 시스템의 핵심인 X밴드 레이더를 한반도에 투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X밴드 레이더가 한반도에 도입되면 미국은 북한 뿐만이 아니라 중국 본토와 극동 러시아까지 면밀히 탐지할 수 있게 됩니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이 미국 본토와 하와이, 괌, 주일미군기지 등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방어하면서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를 감시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미국이 중국을 대북제제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사드를 전략적으로 이용한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드 설치 비용 역시 미국 군수산업업체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게 되니 미국으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최소 2개 포대를 설치해야 하는 사드의 도입 비용만 4~6조 원 가량이고, 이를 유지하는 비용도 연간 6조 원이 넘습니다. 이 비용은
2019년부터 적용되는 방위비 분담금에서 지출될 것입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사드가 도입되면
현재 2조 원 넘게 넘게 들여 개발 중인 L-SAM 레이더는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사드 구매조건으로 요구했던 KF-X에 대한 기술 이전도 거부당했기 때문에 경제적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입니다.
군사 전략적
문제와 함께 기술적 문제 역시 논란거리입니다. 사드는
미국내에서도 전문가들 사이에 성능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시스템입니다. 아직 검증이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11번의 요격 실험에 성공했다는 개발사의 입장 말고는 그 어떤 데이터도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진지하게 되짚어 봐야 합니다. 사드 도입으로 대한민국이 얻게 되는 실익은 과연 무엇일까요? 과연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하면서까지 사드를 도입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
ⓒ SBS 뉴스
박근혜
정부가 갑작스럽게 결정한 개성공단 전면중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개성공단 폐쇄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통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설마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라는 극약처방으로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의지를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들 스스로 바보라고 자인하는 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은 대북 강경책에 흔들릴
국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북 제제와 강경책으로 북한이 흔들렸다면 그들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위성을 발사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쏘아 올릴 수는 없었겠죠.
북한을 변화시키고 그들을 국제사회로 나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의 역할입니다. 북한은 정치·경제적으로 중국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나라입니다. 거의 절대적이라 할 만큼 중국에 기대고 있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우리 정부로서는 중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북한의 변화와 개방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중국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또한 남북 간의 화해와 지속적인 협력을 통해 신뢰를 쌓아나가야 합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은 바로 이런 기조 속에서
유지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전임 정부들의 노력과 성과들을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남북관계의 진작과 평화, 상호공존의 길이 아닌 대립과 대결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 결과가 박근혜 정부가 들고 나온 사드 배치와 개성공단 폐쇄입니다. 사드 배치는 중국과 러시아를 노골적으로 자극하는 외교적 무능을 드러낸 것이며, 개성공단 폐쇄는 남북관계를
파탄내는 대북정책의 완전한 실패를 의미합니다.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의 상황을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이전으로 되돌렸습니다. 민주주의, 역사, 인권에 이어 이제는 남북상황까지 과거로 돌려 놓은 것입니다. (결국 이런 파국을 만들어 놓고도 정작 박근혜 정부는 미국과 중국의 협상을 두 손 놓고 지켜봐야 하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 정의당 홈페이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나라에 우환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취임하자마자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고 헌법가치를 유린한 국정원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더니, 2년차에는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집약되어 나타난 세월호 참사로 인해 전국이 눈물바다가 되어야 했습니다. 3년차였던 지난해에는 메르스 사태로 공포와 두려움 속에 떨어야 했고, 4년차가 되고 나니 남북관계의 파탄으로 국민들이 불안에 떨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어디 이뿐인가요. 경제를
살리겠다며 집권한지 8년이 되도록 경제는 살아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고, 사회경제적 지표와 국가 경쟁력은 계속 뒷걸음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권위주의 시대로 후퇴했고 시민의 권리도 갈수록 위협받고 있습니다. 삼포세대,
오포세대, 칠포세대, N포세대에 이르기까지 포기해야 할
것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고, 탈조선이 유일한 길이라며 이민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나날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유신시대의 긴급조치에 해당하는 테러방지법까지 강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나라의 미래에 어떤 희망이 있는건지 모르겠습니다.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과 정부는 민주주의를 계승 발전시키고, 헌법을 준수하고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외교적으로도 국익을 최우선하는 전략적인 선택과 행동을
해야 하며,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한 남북관계의 진작과 통일의 과업을 이루어야 할 책무도 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이같은 막중한 책무를 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집권 이후 보여주고 있는 행태들이 도무지 설명이 되지를 않습니다. 도대체 이 정부는 대한민국과 시민들을 어디로 끌고
가려는 것일까요? 원착방예를 고집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남아 있는 날들을 생각하니 아찔한 현기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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