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국회
미래창조과학통신위원회의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국정감사는 파행에 파행을
거듭했다. 공안검사 출신 고영주 이사장의 이념 편향적인 발언이 문제였다. 그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공산주의자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고, 문재인 대표와 한명숙
전 총리가 "사법부 전체를 부정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울러
자신이 국가정상화추진위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발행한 <친북인명사전>에 박원순 서울시장과 새정치민주연합 우상호•이인영 의원 등을 포함시킨 것을 두고, "과거 그런(친북) 행적이 있는 걸로 안다"며 질의자로 나섰던
우상호 의원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동안
수없이 국정감사를 지켜봐 왔지만 고영주 이사장같은 인물은 일찌기 본 적이 없다.
자신이 피감기관을 대표해 국정감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듯한 그의 언행은, 소신과 신념의 발로라기 보다는 후안무치한 만용이자 무모한 객기에 가까웠다.
안하무인이
따로 없는 언행을 보인 고영주 이사장은 이날 야당 뿐만 아니라 회의를 진행했던 새누리당 홍문종 위원장과 여당 간사로 나왔던 박민식 의원에게까지 제지와 질타를 받아야
했다. 그는 이날 문재인 대표와 야당 의원은 물론이고 민의의 대표기관인 국회까지 두루 모욕했다.
고영주
이사장이 이날 보여준 만용 중 단연 으뜸은 "문재인 대표가 공산주의자라고 확신한다"는 자신의 과거 발언에 대해
"사정이 변경된 건 없다"고 밝힌 부분이다. 그는 야당 측이 이 부분을 집중 추궁하자, "(문재인 대표가) 공산주의자라고 말한 게 아니라 '공산주의자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 둘 간의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언어의
연금술사가 있다면 바로 이런 자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말장난에 불과한 언어도단이 국감 현장에서 자주 목격된다는 건 국회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이는 국회의 품격에 관한 문제이며 권위에 대한 문제다. 도대체 저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 한심한 궤변이 의미하는 것은 '문재인 대표가 공산주의자'라는 고영주 이사장의 변함없는 신념이다.
그는 문재인
대표가 공산주의자라는 근거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려고 애썼고, 한•미연합사 해체에 관여했고, 연방제 통일을 적극 지지한 점"을 지적했다. 또한 이런 저런 예를 들며 문재인 대표와 야당 의원들을 문제삼았다. 고영주 이사장의 구구절절한
생각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나는 문재인 대표가 싫고, 야당이
싫다"는 거다. 자신의 이념에 반하는, 나아가 체제와 정권을 유지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일단의 부류와 사상 자체를 아예 인정치 않겠다는 것이다.
끔찍하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이 고영주 이사장의 인식 안에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 북한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변수가 존재하는 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무개념과 몰이해가 빚어낸 저같은 망언은 이처럼 언제든 확대 재생산된다. 반공이데올로기
하나로 지난 수십년을 호령했던 독재정권의 끔찍한 세뇌의 결과가 바로 고영주 이사장의 만용과 망동에 그대로 압축돼 있다.
잘 알려진
대로 고영주 이사장은 공안검사출신이다. 그는
'공공의 안녕'을 위해 무수히도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갔던 장본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공공'이란 정권과 체제의
다른 이름이다. 군사독재시절 공안검사들은 활약상은 그야말로 눈이 부셨다. 유비에게 오호대장군이 있었다면 박정희와 전두환에게는 공안검사들이 있었다.
예술의
경지에 이른 고문의 기술을 무용담처럼 말할 수 있었던 서슬 퍼런 시절, 그들은 독재정권을 위한 충성스런 일당백의 전사들이었다. 33년이 지나서야 무죄판결이 난
'부림사건' 역시 이들의 충정이 빚어낸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사건을 맡았던 담당검사가 바로 고영주 이사장이었다.
그는 부림사건 당시의 피해자도 공산주의자이고, 그들을 변호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표 역시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부림사건의 무죄판결 역시 대법원이 좌편향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이후 급격하게 우경화된 대법원을 두고 저렇게 말할 수 있다니 어불성설도 이만한 어불성설이 또 없다.
고영주 이사장의 주장대로 문재인
대표는 정말 공산주의자일까? 그럴 지도 모르겠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정권을 비판하고 불의와 부정에 맞서는 의기로운 행동이 종북 빨갱이가 되는 대한민국에서라면 문재인 대표는 공산주의자가 맞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작 그보다 더 위험하고 끔찍한 것은 따로 있다.
이 나라는 국가폭력을 은폐하고 축소하는 치욕스런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대한민국의 사법정의와 시민의 인권을 지켜야 하는 대법관의 중책을 담담하고 있는 나라이며, 무고한 학생들을 좌익용공사범으로 몰아가며 갖은 폭행과 고문, 억울한 옥살이를 시켰던 독재권력의 하수인이 공영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책임지는 방문진 이사장을 맡고 있는 나라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했던 독재권력의 부역자들이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권력의 최정점에서 여전히 민주주의와 시민권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이보다 더 끔찍한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나는 문재인 대표가 공산주의자라는 사실과 참담하기 짝이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 중 무엇이 더 개탄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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