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청와대와 새누리당 사이의 극심한 갈등과 대립을 이끌었던 이른바 '유승민 파동'은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물러나며 일단락됐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이후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대표직 유지를 두고 극심한 내홍에 휩싸였던 새누리당은 결국 의원총회를 통해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사퇴를 박수로 추인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박 대통령의 건재와 '친박'의 부활을 확인한 '유승민 파동'의 최후 승자는 박 대통령도 '친박'도 아닌 유승민 전 원내대표였다. 개혁적 보수의 이미지가 강했던 기존의 정치 이력에 더해 '유승민 파동'은 그에게, 청와대의 거수기에서 벗어나 사안에 따라 언제든 바른 말을 할 수 있는 강단과 원칙, 소신을 갖춘 정치인이라는 훈장을 더해주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는 시련과 아픔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차차기의 유력한 대권후보로 이름을 올리는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입니다. 저의 정치 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라는 사퇴의 변은 유승민을 위해 만들어진 무대의 화룡점점을 찍는 멋들어진 고별사였다. 그는 원내대표직을 잃었지만 그와 비교할 수 없는 정치적 자산인 국민의 신뢰를 얻는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유승민 파동'의 패자는 누구일까. 민주주의 위에 군림하려는 최고통수권자의 오만과 독선을 어김없이 노출시킨 박 대통령일까? 아니면 패권주의와 계파 줄세우기를 통해 당내의 구태를 재연시킨 '친박'일까. 시각에 따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유승민 파동'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았던 사람은 다름아닌 김무성 대표였다. 왜 그럴까?
김무성 유승민 투톱체제는 기존의 새누리당의 당내 권력지형을 완전히 허무는 일대 '사건'이었다. 당시 상황을 잠시 복기해 보면, 당 대표 선거와 원내대표 선거의 승리를 의해 '친박'들은 사활을 걸다시피했고, 청와대 역시 당권 장악을 위해 막후에서 힘을 실어 주었다. 그러나 결과는 '친박'의 완벽한 참패였다. 박 대통령이 직접 전당대회에까지 참석하는 실력행사를 보였음에도 '올드 친박' 서청원 의원은 김무성 대표에게 큰 표 차이로 무너졌고, 절치부심했던 원내대표 선거 역시 공공연히 박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던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완승으로 끝을 맺었다.
이로써 '친박'을 통해 당권 장악과 내년 총선을 위한 공천권을 확보하려던 청와대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청와대는 '플랜 B'를 가동해야 했다. '친박'을 동원해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흔들기에 나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유승민 파동'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청와대와 '친박'들에게 찾아온 절체절명의 기회였다. 그들은 '유승민 축출'에 총력을 기울였고 박 대통령은 이를 적극 지원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박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한 새누리당 최고의원들 대부분이 '친박'으로 돌아섰고, 김무성 대표 역시 자신의 가장 든든한 우군을 적에게 내어주는 실기를 범하게 된 것이다. 김무성 대표는 청와대와 '친박'의 다음 타겟이 누구인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검을 휘두르는 대신 안전책을 선택했다. 그러나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찍어내며 다시 한번 확인된 박 대통령의 무시무시한 권력욕과 그의 친위부대인 '친박'의 부활은 김무성 대표의 가시밭길을 예고하는 서막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필자는 김무성 대표가 유승민 전 원내대표 축출을 묵인한 이유에 대해서 다음의 세 가지 경우를 예상한 바 있다. 첫째 김무성 대표가 꼬리를 내릴 만한 치명적인 약점을 청와대가 움켜쥐고 있거나, 둘째 대표직을 유지한다는 조건으로 청와대와 교감을 나누었거나, 셋째 훗날을 기약하기 위해 다시 한번 굴욕을 감내했거나. 그러나 그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친박'들이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찍어낸 이상 결국 김무성 대표 역시 흔들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새누리당 내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공천권 갈등은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뜻이다.
현재 김무성 대표는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져 있다. 때 아닌 '마약사위' 파문으로 휘청거리더니, 지난 추석 연휴 때 지도부와 상의없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잠정 합의했던 안심번호 국민공천제가 당 안팎으로부터 융단폭격을 맞고 있다. 그래서일까. 청와대의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비판에 대해 "오늘까지만 참겠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췄던 김무성 대표는 지난달 30일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공언했던 오픈프라이머리를 사실상 접었다. 아울러 어제는 "전략공천을 할 수는 없지만 현행 당헌•당규대로 우선추천은 할 수 있다"며 그보다 한 발 더 물러서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우선추천은 부분적인 전략공천을 의미한다. 아무리 좋은 의미와 수식으로 포장한다 한들 우선추천이 전략공천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친박'들이 김무성 대표의 우선추천 제안을 전략공천으로 가는 수순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전략공천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완전국민경선제를 통해 100% 상향식 공천을 이루는데 정치생명을 걸겠다던 김무성 대표의 의기와 소신은 이번에도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김무성 대표가 결정적인 순간 뒤로 물러서는 모습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같은 모습은 유승민 의원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새누리당의 공천권 파동을 두고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안 되면 부러지는 스타일이고, 김무성 대표는 휘어지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타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예상하던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의 전망은 그래서 대단히 유효하다.
장수는 나아가야 할 때와 물러설 때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환경과 상황에 맞는 전략과 전술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하며, 위기를 돌파해 낼 수 있는 결단과 용맹도 필요하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위기의 순간 (비록 그것이 이미지 메이킹에 불과할 지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며 '미래'를 얻어냈다면, 김무성 대표는 눈치만 살피다가 당 대표직이 위협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거의 손에 잡힐 것만 같았던 대권의 꿈도 사라질 위기에 놓이게 됐다.
김무성 대표가 처해있는 위기는 표면적으로는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새누리당 내의 패권주의와 계파갈등이 그 원인이지만, 그 본질은 정치인으로서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겨야 할 원칙과 소신을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에 방점이 놓여 있다. 그리고 이 차이야말로 김무성 대표가 '유승민'이 될 수 없는 결정적 이유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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