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컷뉴스
지난 주말 광화문 광장에서 있었던 민중총궐기대회의
후폭풍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 시민사회는 시위의 성격과 경찰의
대응을 두고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 여당은 이날의 시위 자체를 불법 폭력시위로 규정하며,
일부 시위대가 보여준 폭력성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려 애쓰고 있다.
반면 야당과
시민사회는 시위대의 폭력적인 모습이 일부 있었지만 시위 자체를 불법이라 규정짓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면서 오히려 경찰의 무리한 시위 진압으로 인해 시위대가 부상을 당했고,
시민 한사람이 물대포에 맞아 중태에 빠진 것을 지적하며 경찰의 과잉대응을 문제삼고 있다.
이날의
시위에 대한 공방이 비단 정치권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뜨겁게 각양각색의 의견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개중에는
논리와 이성을 망각한 무개념의 원색적인 감정들이 마구잡이로 배설되는가 하면, 그와 반대로 정연하고 논리적으로
사태를 냉정하게 분석하는 목소리도 있다.
당연하다. 민주주의란 하나의 현상에도 이처럼 다양하고 다채로운 생각과 주장들이 펼쳐지는
정치 체제다. 다양성의 옷을 입은 각각의 주장들은 헌법과 법률, 사회공동체의
도덕률과 규범, 보편적 상식과 합리적 이성을 통해 도퇴되기도 하고 살아남기도 한다. 민주주의의 위대함은 바로 이 부분에 있다.
ⓒ 국민일보
어제 온라인에서는
자신을 전직 의경이라고 밝힌 한 시민의 글이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그의 글은 SNS를 통해 널리 공유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았다. 그의 글은 기승전결이 잘 짜여진 명문은 아니었으나, 이번 시위와 관련해서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그 어떤 글들보다 진솔했고 울림이 있었다. 이번
시위를 향한 사회 각층의 이해관계가 얼마나 계산적이고 정치적인지, 그리고 왜곡되어 있는지 그의 글은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그는 의경
시절 겪었던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하며 글을 시작했다. 장문의 글 중에서 특히 공감이 가는 대목은 두 부분이었다. 그 하나는 10만명의 사람들이 그 곳에 모인 이유를 외면하고 있는 청와대의 불통을 꼬집는 부분이었다. 그는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의 의견에는 귀를 막는 대신, 선물받은 진돗개의 이름 공모에는 적극적으로 의견 수렴에
나섰던 청와대의 이중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는 '못살겠다, 힘들다,
이건 아니다, 대화 좀 하자'는 시민들의 절박함보다
고작(?) 개 이름 짓는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이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소통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청와대의 불통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어쩌면 민의의 왜곡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정과 과오를 비판하는 국민의 목소리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는 정부 출범 이후 그들이 보여온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세상에
비판을 달가와 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정부를
비판한다고 해서 이들이 졸지에 '종북주의자'로 매도당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정부 비판은 시민의 정당한 권리이지, 혐오와 박멸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정부는 비판의 목소리에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안으로 돌변해 버린다. 세계 인권단체들이 연달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추락을 우려하고 있는 이유를 청와대는 직시해야 한다. 마땅히 해야 할 책임과 역할은 망각한 채 비판에만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부의 모습은 졸렬할 뿐더러 뻔뻔하다.
ⓒ 뉴스타파
그의 글에서
인상적이었던 또 다른 하나는 마지막 문장에 있었다. 그는 이날의 시위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묵묵히 적은 뒤 맨 마지막에 '참담한 건 난 어제 그
시간에 술마시며 놀고 있었다. 스스로가 부끄럽다. 이런 글을 쓰는 것조차도
부끄럽다'고 적었다. 나는 그가 부끄러워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시위에 동참하지 못하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는 것을 부끄러워 해야 한다면,
그 시각 비슷한 이유로 시위 현장에 함께 하지 못한 수천만의 시민들이 모두 부끄러워 해야만 한다.
그는 민중총궐기대회를
지켜보고 어긋나 있고 뒤틀려 있는 이 사회의 대응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는 적어도 그가 우리사회의 당면한 제반 문제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뜻이며, 10만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위에 참여한 이유에 대해서도 공감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그가 이번 시위를 정략적이고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이면에 대해서도 꽤뚫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이것들을
바탕으로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치열하게 논쟁이 오가고 있는 이번 시위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을 뿐이다.
부끄러움이란
성찰을 통해 얻은 자책과 미안함에 대한 정서적 반응이다. 그런 의미로 부끄러워 해야 할 사람은 그가 아니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이 지경으로 후퇴시킨 장본인들, 저열한 권력에 기생하며 법조인으로서, 학자로서,
기자로서, 시민으로서 영혼과 양심을 저버린 이들, 정치를 외면하면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를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부끄러움의 정서조차도 잃어버린 사람들. 정작 부끄러워 해야 할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지
그가 아닌 것이다.
지난 주말 있었던 민중총궐기대회에 대한 전직 의경의 메시지는 글 한 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리에게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껴야 할 '부끄러움'에 대해 묻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부끄럽게 만든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민주주의의 가치, 정의와 양심, 보편적 이성과 상식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대한민국의 처참한 현실일까, 아니면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과 미안함일까. 나는 이 질문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 바람부는 언덕의 정치실험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클릭)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원된 아이들, 그들은 왜 떨어야만 했을까? (16) | 2015.11.27 |
---|---|
누가 저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을까 (21) | 2015.11.26 |
그들 마음 속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13) | 2015.11.13 |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에게 (13) | 2015.11.12 |
희망이라 쓰고 절망이라 읽는 그들, 비정규직 (6) | 2015.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