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 지 한참을 망설였어. 하고 싶은 말은 참 많은데 어떻게 글로 옮겨야 할지 모르겠다.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이 이렇게 힘들고 고된 일이란 걸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 같아. 왜 그럴까. 텅 빈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한동안 생각했어.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답을 얻었지. 미안함과 부끄러움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감정의 편린들이 지독하게 엉켜 있어서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정말 그렇단다. 너무나 미안하고 그리고 부끄러워, 너희들에게.
ⓒ 경향신문
한동안
너희들 생각만 하면 눈물이 그렁그렁해지곤 했어. 그래서 남몰래
참 많이도 울었단다. 때론 주체할 수 없는 분노 때문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또 어떨 때는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을 생각하며 깊은 무력감에 시달려야만 했어.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야만 했을까. 왜 어른들은 너희들을 그렇게 보내야만 했을까.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어.
그런데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을 쫓아 가다 보면 그 끝에선 언제나 너희들의 모습이 아른거리고 있었어. 해맑게 웃고 있던 너희들의 모습이 떠오를 때면 얽히고 섥혀 있는 수많은
감정들도 이내 사라져 버렸지. 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미안함'
하나만 남더라. 미안하다, 얘들아.
국가가, 사회가, 어른들이 너희를 지켜주지
못했어.
소식을
접하고 나서 사람들은 희망의 끈을 놓치 않았단다. 제발 버텨내 주기를, 기적이 일어나 주기를, 그래서 다시
우리들 곁으로 돌아와 주기를 바라고 또 바랬어. 그런데 기적은 끝내 일어나지 않더구나. 간절한 염원과 기도조차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지. 절망과 함께 지독한 상실감이 찾아왔고,
슬프고 우울한 나날들이 한동안 계속되었어.
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흘러갔어. 한 달,
100일, 1년, 500일, 그리고 오늘까지 시간은 참 빠르게 그리고 속절없이 지나갔단다. 그런데 단지 시간만 흘러간 것은
아니었어. 내 일처럼 아파하고 슬퍼해 주던 사람들의 마음까지 함께 어디론가 흘러가 버리고 말았어.
그 뿐만이 아니야. 너희들과 너희들의 부모님을 향한 온갖 오해와 편견,
억측과 모략까지 만들어 졌지. 시간은 참 무섭고 잔인해. 마치 어른들의 마음같이.
ⓒ 교보문고
너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전부였는데, 이제는 부끄러움이 그보다
먼저 고개를 내민다. 이 나라의 대통령과 정부, 정치인,
그리고 어른들은 너희들이 왜 그렇게 끔찍하게 죽어가야 했는지 이제 관심조차 없는 것 같구나. 꽃보다 더 아름다운 너희들이 떠나간 이유를 그들은 알려주려고 하지를 않는다. 지켜주지도 못할 만큼
무능하고 무책임했던 그들이 이제는 진상규명의 약속마저도 철저히 외면하고
있어.
너희들이
책에서 배워왔던 정의와 양심, 합리적 이성,
원칙과 기준, 도덕과 윤리가 이 사회에서는 보이질 않아. 너희들을 떠나보낸 이후 이 나라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들은 하나같이 말도 안되는 것들의 연속일 뿐이었다. 국가는 너희들을 지켜주지도 못했고, 너희들과의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시간의 탓으로 돌리기엔 저들의 무심함이 참으로 비정하다. 부끄럽다, 너희들에게. 대한민국의 수준이 고작 이것 밖에는 되지 않는구나.
오늘은
수능날이야. 당사자인 학생들과 부모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수능으로 인해 분주한 하루가 되겠지. 그 사고만 아니었다면, 관련 기관이 관리 감독만 철저하게 했더라면, 정부가 무능하고 무책임하지 않았더라면,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지만 않았더라면, 좀 더 적극적으로 구조에 나섰더라면 너희들도 오늘 그 자리에 있었을 텐데. 그래서 말인데, 나는 너희들의 빈자리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무척 힘들다. 너희들의 부모님들은 더더욱 그러실테지.
ⓒ 중앙일보
오늘 부모님들이 많이 힘들어 하실게다. 그 분들의 마음 잘 다독여 드리렴. 꿈 속에 나와도 좋고, 그분들이 잠시 일손을 놓고 있을 때 살며시 어깨에 기대도 좋고, 너희들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훔치고 계실 때 가만히 안아 드려도 좋아. 너희들이 그들 곁에 여전히 살아있음을 넌지시 알려 드리렴. 마음으로 아실 게다. 가슴으로 느끼실 게다. 그 분들의 뜨거운 심장과 피는 너희들을 대번에 알아보실 거야.
얘들아, 세상이 너희들을 잊은 것 같이 보여도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란다. 미안하고 부끄럽지만 너희들의 억울한 희생을 기억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도 많아. 고통과 신음 속에 아파하고 있는 너희들의 부모님 편에 서서 함께 걸어가는 동지들이 있고, 열악하고 힘든 여건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단다.
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 된 아이들아, 너희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행렬은 절대로 멈추지 않을 거야. 사건의 진상과 진실 역시 반드시 밝혀질 거야.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거다.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고, 끝까지 갈 것이다. 그러니 얘들아, 지켜봐 다오. 너희들의 고귀한 희생이 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 나가는 지를,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를.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다시는 아프지 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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