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파행이 끝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4월 국회에 이어 5월 국회까지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벌써 40일 넘게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청년일자리 지원 등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방송법 개정안 등 당장 처리해야 할 민생·경제 관련 현안이 한가득이다. 6월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국회의원 4명의 의원직 사퇴안도 5월 14일 이전에 처리돼야 한다.
그러나 국회는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드루킹 특검'에 대한 여야의 이견이 워낙 첨예한 탓이다. 여야 원내대표는 지난 7일 국회 정상화 협상을 재개했지만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드루킹 특검과 추경안을 오는 24일 동시처리하자고 제안했지만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선 특검, 후 추경안 처리'를 요구하면서 협상은 틀어졌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회동에서 <드루킹 특검-추경안 24일 동시 처리>, <특검 명칭으로 '드루킹의 인터넷상 불법댓글 조작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법' 사용>, <야당이 특별검사 추천, 여당이 거부권 행사>, <미세먼지 특별법 등 민생법안 처리>등의 조건을 내세우며 특검 수용 의사를 밝혔다. 수사 결과를 지켜본 뒤 특검 여부를 판단하자고 했던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그러나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드루킹 특검을 먼저 처리하고 추경안은 추후에 논의하자며 거부의사를 드러냈다. 두 야당은 특히 우원식 원내대표가 조건부 특검 수용 입장을 표명한 것에 대해 거세게 반발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와 김동철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회동 이후 기자들과 만나 협상 결렬의 책임이 민주당에게 있다고 강하게 성토했다
반면 조건부 특검 수용 의사를 밝혔던 우원식 원내대표는 그와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그는 "우리로서는 국회의장이 '8일 이후 합의하면 국회 문을 닫겠다, 본회의 소집을 안 하겠다'고 해서 큰마음을 내서 야당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라며 "이렇게 통 큰 제안을 하고 특검을 수용했음에도 파행한다면 그건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이라고 불쾌한 심경을 드러냈다.
ⓒ 오마이뉴스
양쪽의 입장이 이처럼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그렇다면 여야 원내대표 협상에 함께 참석했던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정의와 평화의 의원 모임)는 이날의 회동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노회찬 원내대표는 8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여야 협상이 결렬된 이유와 국회가 좀처럼 정상화되지 않고 있는 배경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놨다.
"사실 추경 문제는 그동안 쭉 김성태 원내대표가 '특검을 받으면 추경을 포함해서 다 해줄게.' 이 얘기를 수십 번 이상 해온 바이기 때문에 이게 쟁점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측을 못했던 거죠. 추경을 하려면 예결위에서 심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기간이 약간 필요합니다. 그러면 즉각 합의를 하더라도 5월 24일, 5월 국회가 열리고 있는 중 마지막 요일인 5월 24일날 본회의 열어서 그날 특검법하고 추경하고 같이 처리를 하자고 한 거죠. 이걸 소위 말하는 조건이라고 해서 왜 다느냐하는 겁니다."
특검을 수용하면 추경안을 함께 처리해 주기로 해놓고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김성태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드루킹 특검을 받아들이면 추경안 처리에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내비쳐왔다. 지난달 25일에 열린 비상의원총회에서도 그는 "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이 드루킹 특검을 수용하면 추가경정예산과 국민투표법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노회찬 원내대표는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에게 협상과 타협의 의지가 있는지부터가 불분명하다고 했다. 애초부터 결렬을 염두해 두고 협상에 임한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는 것이다. 노회찬 원내대표는 그렇게 볼 수 있는 근거로 세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첫번째가 드루킹 특검과 추경 동시처리를 거부한 김성태 원내대표의 심경 변화다. 살펴본 것처럼 '특검-추경 동시처리'는 원래 한국당이 주장해오던 바였다.
"특검이라는 것도 하기로 합의하면 그 다음에는 법안이기 때문에 법안에 대한 세세한 검토가 사실 필요하거든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5월 24일에 그 두 가지를 처리하자고 하니까 처리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같이 처리할 수 없다는 얘기는 특검 먼저 처리하면 추경을 안 해줄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이렇게 하니까 또 바른미래당에서는 '우리는 추경에 반대한다.' 이렇게 얘기를 한 거예요. 그러면 추경 안 하고 특검만 하자는 얘기인데 그건 있을 수가 없는 얘기죠."
흔히들 정치는 대화와 타협의 예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노회찬 원내대표가 전한 이날의 분위기는 그와는 상당한 간극이 있어 보인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드루킹 특검 외에는 그 어떠한 제안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일방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여당에서 특검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이상 야당에서도 그에 걸맞는 '무엇'인가를 내놓아야 할 터. 그러나 야당은 특검만 취하고 자신들은 아무 것도 양보하지 않겠다고 나오고 있다.
"오늘 단식 농성도 이걸 안 들어주면 무기한 단식 농성하겠다고 얘기해야 하는데 '안 들어주면 오늘 단식 농성 접겠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참 난해한 상황이에요. 물론 특검을 받아주면 단식할 이유가 없죠. 특검 받아주면 단식 끊겠다. 단식을 중단하겠다. 그리고 특검을 끝내 받아주지 않으면 오늘 단식 중단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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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황당한 건 노회찬 원내대표가 전한 세번째 에피소드다. 상식적으로 특검을 받아주지 않으면 단식을 풀지 않겠다고 말해야 정상일 터다. 그러나 김성태 원내대표는 그와는 정반대로 말한 것으로 드러나 김어준 공장장을 '빵 터지게' 만들었다. 이에 김어준 공장장은 "이런 종류의 압박은 처음 본다"며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이 모습이 흡사 "과자를 사주지 않으면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협박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원내대표 회동 이후 김성태 원내대표와 김동철 원내대표는 각각 "민주당이 특검을 수용하면서 여러 어려운 조건들을 너무 많이 붙였다", "수많은 조건을 걸어놓고 특검을 한다는 것이냐. 당당하고 떳떳하다면서 무슨 조건을 거느냐"고 맹비난을 쏟아냈다. 협상 결렬의 책임이 전적으로 민주당에게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손뼉이 어디 혼자서만 쳐지던가. '선 특검'만을 고집하는 야당에게도 국회를 공전시킨 책임이 있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더욱이 야권 일각에서는 드루킹 사건을 지난 대선과 연계시키려 하는 등 '대선불복' 움직임마저 감지되고 있는 형국이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역시 9일 의원총회에서 "드루킹 게이트는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측근과 민주당이 민주주의 기본 가치와 질서를 유린한 것이 그 본질"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당연히 (특검의) 수사 대상이 돼야 한다"고 공세의 수위를 한층 끌어올렸다. 계속해서 강경 일변도로 나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사실상 드루킹 특검에 사활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총공세에 나서고 있다. 노회찬 원내대표가 두 야당을 향해 국회를 정상화시킬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고 쓴소리를 날린 것도 그 때문이다. 드루킹 특검이 개헌, 남북정상회담 국회 비준, 추경안, 방송법, 국회의원 사퇴안, 각종 민생·경제 관련 법안보다 시급하고 중요하냐는 반문이다.
세간에서는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행태가 방탄국회를 위해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드루킹 특검 외에는 마땅한 지방선거 전략이 달리 보이지 않는 데다가, 한국당의 경우 염동렬·홍문종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처리 문제와 강원랜드 채용비리 특검 등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노회찬 원내대표는 "어제와 같은 태도가 계속된다면 그런 의심을 입증하는 꼴"이라고 강하게 역설하기도 했다. 어쩌면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곱씹어야 할 대목일지도 모르겠다. 합리적 의심은 노회찬 원내대표만 품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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