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생시대'는 지난 2012년 개봉했다.
당시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개봉하고 나서
1년 쯤 뒤에 DVD로 본 것 같은데, 걸쭉한 폭력이 난무하는 느와르를 기대했던 나로서는 조금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이는 조폭 영화 특유의 장르적 관습에서 탈피해 블랙코미디적인 요소를 영화의 기본 베이스로 깔았기 때문이었는데, 바로 이 부분이 오히려 평단과 관객의 찬사를 이끌어 냈다. (필자의 영화보는 안목과 수준이 드러난다.)
영화가 개봉된 후 재미있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흥행에도 꽤 성공했는데, 특히 네티즌들
사이에서 수많은 패러디 포스터가 만들어지며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실 패러디의 핵심은
원작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세태를 풍자하거나 조롱하는 것에 있는데, '나쁜 놈들 전성 시대'는 그런 면에서 패러디의 미학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여러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당장
제목만 보더라도 전위적이며 도발적인 느낌이 물씬 풍겨난다. 나쁜 놈들이 출세하고 성공하는 이 사회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조롱이 제목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 DAUM 영화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해 낸 포스터 또한 나쁜 놈들의 특징을 기가 막히게 잡아내고 있다. 나라라도 구하려는 듯 의기있게 걸어가는 일단의 사내들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허세와 비열함이다.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의기양양하게 걸어가고 있는 저들은, 폼 나게 살기 위해서 온갖
나쁜 짓을 다하는 건달들과 그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부패한 공무원이다.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삥' 뜯는 건달들, 그리고 그들을 이용해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챙기는 부패한 공무원은 제목 그대로 '나쁜 놈들'일 뿐이다. 그러나 보라, 나쁜 놈들이 얼마나 위풍당당한지를. 그러므로 저 포스터는 시대배경인 1980년대를 관통했던 나쁜 놈들에 대한 위트있는 야유이며 유쾌한 조롱이다.
나쁜 놈들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 왔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나쁜 짓도 시대에 따라 점점 지능화되고
진화되어 왔다. 지금은 힘없는 사람들의 돈을 갈취하고, 세관에서
몰래 빼낸 마약으로 한 몫 크게 챙기는 찌질한 짓으로는 명함조차 내밀지 못한다. 지금은 천문학적인 나랏돈을
축내는 것은 일도 아닌 세상이며, 나쁜 짓을 해야 오히려 대접받고 성공하는 시대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들의 인식과 태도다. 나쁜 짓을 해놓고도 도무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시대의 풍조에 맞추어 그들의 뻔뻔함도 업그레이드 되어 온 것이다.
고위 공직에 임명되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이 사회가 얼마나 나쁜 놈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되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부동산 투기, 탈세, 논문 표절, 부적절한 군면제, 편법증여, 위장전입 같은 일들이 나쁜 짓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이같은 행위는 해서는 안되는 일이거나, 적어도 부끄러워 해야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고위 공직에 나서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행태는 사회공동체의 보편적 상식을 완전히 전복시켜 버린다. 그들은 부끄러워 하지도, 미안해 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부끄러워 해야 할 치부를 열심히 살아온 대가나 훈장쯤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이런 자들이 공위 공직에 올라 이 사회를 호령한다. 아찔하다.
ⓒ 연합뉴스
지금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21일 발표한 부총리 및 장관 후보자 5명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한창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국민의 기대와는 한참은 떨어진 부적격 인사들로 내각이 꾸려질 전망이다. 이명박 정권의 '고소영 강부자' 내각 이후로 되풀이 되고 있는 촌극이다. 이제는 익숙해 질 법도 한데 좀처럼 적응이 안된다. 섬뜩한 것은 설령 나쁜 놈들을 걸러낸다 해도 그 자리는 그보다 조금 덜 나쁜 놈으로 채워진다는 사실에 있다. 이쯤되면 이 나라는 나쁜 놈들 전성시대가 아니라, 나쁜 놈들의 천국이다. 정말 궁금한 건 이런 사람들을 줄기차게 임명하고 있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만들고자 하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도무지 가늠이 안되기 때문이다. 나라 꼴이 점점 추해지고 천박해지고 있다. 인사청문회를 볼 때마다 느끼게 되는 한심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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