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해킹 의혹이 여야의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국회는 지금 안전행정위원회(안행위) 전체회의가 한창이다. 이 회의가 소집된 이유는 국가정보원의 해킹 프로그램 구입·운용 의혹과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직원 임모 과장의 사망 경위를 둘러싼 의혹을 밝히기 위해서다. 그런데 안행위 전체회의에 임하는 여당과 야당의 입장이 확연히 다르다. 여당이 의혹은 억지에 불과할 뿐이라며 국정원과 경찰을 비호하기에 급급한 반면, 야당은 국정원과 경찰의 움직임에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 많다며 사건의 조작 가능성을 집중 추궁하고 있다.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인 진실게임에서 과연 누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의혹은 합리적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제기된다. 야당이 문제삼고 있는 국정원 해킹 의혹 역시 이성적 판단으로는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다. 무엇보다 국정원 직원 임모 과장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들은 미스테리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다. 특히 임모 과장의 석연치 않은 죽음과 죽음의 실체를 밝혀줄 증거물이었던 마티즈가 사건 발생 하루 만에 신속하게 폐차된 점은 이번 사건을 미궁 속으로 빠뜨린 결정적 장면 중의 하나다.
의혹이 명확하게 해명되지 않으니 새로운 의혹들이 잇따르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새로운 의혹들이 양파껍질처럼 제기되고 있다. 최근 경기도 재난본부가 자신을 '직장 동료'로 밝힌 국정원 직원의 현장 진술에 따랐다가 헤메는 과정에서 사고 현장에 한시간가량 늦게 도착했다는 의혹이 새롭게 제기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노웅래 의원은 안행위 전체회의에서 이같은 사실을 폭로했다.
노웅래 의원이 국민안전처 중앙119구조본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기도재난안전본부 재난종합지휘센터는 사건 당일 오전 10시32분경 임모 과장이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화산리의 야산 중턱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10시40분쯤 야산 초입의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그러나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나와 임 과장은 낚시터를 자주 갔다'는 말을 듣고 사건 현장으로부터 2km나 떨어진 낚시터 주변을 수색했다가 한시간이 지난 11시55분이 되어서야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재난본부를 한 시간 가량 따돌린 국정원이 그 시각 경찰보다 먼저 사고 지점에 도착해 현장을 점검했다는 사실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박남춘 의원이 중앙소방본부와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소방대원이 임모 과장의 마티즈 차량을 발견한지 불과 8분 뒤인 오후 12시3분경 국정원 직원이 현장에 도착해 현장을 살핀 반면 경찰은 12시50분에야 현장에 나타난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 적어도 한시간 가량 국정원이 사고 현장에 머물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정원의 수상한 행위들은 상상하기 싫은 최악의 그림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든다. 경찰보다 현장에 먼저 도착한 국정원 직원이 지켜보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원격 자료 삭제 기능이 있는 MDM을 작동시켰다는 언론 보도까지 나온 것으로 미루어 본다면 국정원에 의한 현장 오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초 해킹 의혹이 불거지자 국정원은 납득할 수 없는 해명으로 의혹을 부추겼다. 얼마 뒤 해킹프로그램의 구입과 운용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국정원 임모 과장이 유서같지 않은 유서를 남기며 돌연 자살했고, 경찰은 부실·축소 수사로 일관하며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이 와중에 임모 과장의 죽음의 비밀을 풀어 줄 결정적 단서였던 마티즈는 숱한 논란속에 귀신같이 사라졌고, 국정원은 재난본부를 따돌리고 경찰보다 현장에 먼저 도착해 증거은닉의 의심을 받을만한 짓을 저질렀다. 이 모든 흐름이 단지 새누리당의 주장처럼 억지와 억측으로 치부될 수 있을까?
국정원이 해킹프로그램을 구입해 민간인을 광범위하게 사찰하고 지난 대선 정국에 이용했다면 시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국기문란 행위를 자행한 셈이다. 국정 최고 통수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지고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할 엄중안 사안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헌법가치를 수호해야 할 책무가 있는 대통령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이는 명백한 직무유기이자 방기다.
참여정부 시절인 지난 2005년 안기부 불법도청 사건이 터졌을 때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진상규명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한편 정부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며 참여정부를 강력하게 규탄한 바 있다. 당시 박근혜 대표는 안기부 불법도청 사건에 대해 "국가기관이 나서서 우리의 자유와 민주를 짓밟은 것"이라며 "어두운 과거에 대해 분명하고 확실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에서 도청이 이뤄지는 것은 개탄스럽고 국가적으로 수치스럽다"는 입장을 표명했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과 된 이후의 모습이 이렇게나 다르다. 국정원이 음지에서 자행한 국기문란에 대응하는 한 사람의 인식이 손바닥 뒤집듯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한다. 이 지독한 자가당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그녀가 당 대표 시절을 맡았던 10년 전보다 못하다는 사실이다. 이는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누구보다 시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신장시켜야 할 책무가 있는 대통령의 모습이 전혀 아니다. 나는 그녀가 강하게 비판했던 2005년의 국정원과 2015년의 대한민국 대통령 중 누가 더 개탄스럽고 수치스러운건지 모르겠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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