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이 DMZ에 매설해 놓은 목함지뢰가 폭발하면서 대한민국이 크게 술렁거리고 있다. 지난 8월 4일 오전 7시 40분 경 경기도 파주 1사단 DMZ에서 북한군이 매설해 놓은 목함지뢰가 폭발하면서 군인 2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 구멍뚫린 군의 경계망에 대한 각계각층의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북한군이 감시와 경계망을 뚫고 DMZ에 목함지뢰를 매설했는데도 불구하고 군이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 이미 오랫 동안 도발징후가 엿보였는데도 군이 안이하게 대응했다는 비판과 지적이 일고 있다.
그런데 북한군의 지뢰도발에 대응하는 군의 모습이 아주 요상하다. 최초 사건이 발생한 시점은 8월 4일이었음에도 군의 언론 브리핑은 그로부터 6일이나 지난 시점에서야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군은 지난 9일 새정치민주연합의 김광진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북한지뢰라는 제보를 받았다"는 글을 올린 다음 날이 되어서야 국방부 브리핑을 통해 사건을 일반에 공개했다. 그 6일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군은 신속하게 관련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던 것일까?
군의 이해할 수 없는 대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청와대의 움직임을 살펴봐야 한다. 군이 DMZ에서 발생한 지뢰폭발 사건이 북한군의 도발이라는 것을 인지한 시점은 지난 8월 5일이었다. 그런데 군은 같은 날 오후 4시 50분 경 지뢰폭발이 북한의 목함 지뢰일 가능성이 높다는 국방부 브리핑을 진행하면서 기자들을 향해 해당 내용에 엠바고를 걸어줄 것을 요청했다. 관련 내용이 기사화되면 사건을 조사중인 조사위원의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동안 군은 북한군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다음 번에는) 즉각적이고 강력한 응징을 하겠다며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여왔다. 북한군이 매설한 목함 지뢰가 폭발해 아군 2명이 부상을 당했다면 군의 다짐대로 그에 상응하는 강력한 응징을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군은 이번에도 사건이 발생한 지 6일 동안이나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북한군의 지뢰 도발에도 불구하고 군은 평상시와 같은 경계 태세를 유지했고 추가로 있을지 모르는 DMZ 내의 목함 지뢰를 찾기 위한 수색 작전도 전혀 하지 않았다.
군은 엠바고가 끝난 지난 10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다. 군은 소잃고 외양간 고치듯 뒤늦게 '최고 경계태세 유지'를 지시했고, 북한군의 도발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며 대북심리전 확성기를 꺼내들었다. 뒷북 대응도 문제지만 군이 말한 강력한 대응이란 것이 대북심리전을 위한 확성기였다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또 없다. 북한군의 지뢰 도발로 우리 군 2명이 중상을 입은 사안에 비한다면 참으로 소박하고 얌전한 대응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군이 6일 동안 한가하게 사태를 관망하는 동안 청와대는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것일까?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어제(12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 출석한 자리에서 사건 발생 다음 날인 5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해당 사건이 북한 목함 지뢰에 의한 도발로 추정된다고 보고했다고 밝혔다. 한민구 장관의 말대로라면 청와대가 사건을 인지한 시점은 8월 5일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날 박근혜 대통령은 경원선 기공식에 참석했고, 이희호 여사는 북한을 방문했으며, 정부는 통일부장관 명의로 남북고위급회담을 제안한다.
군의 느슨하기 짝이없는 대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사건이 발생한 지 6일 동안 엠바고를 걸고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던 군의 행동이 과연 자체 판단만으로 가능한 일일까? 아닐 것이다. 군이 박 대통령에게 보고까지 한 마당이라면 결국 군의 무대응과 엠바고 요청에 이같은 대북관련 동향을 지켜보려는 청와대의 개입이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해 진다.
북한군의 지뢰 도발은 준전시상황에 달하는 국가 위기의 상황이다. 당연히 대통령은 즉각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해야 했고, 정부는 강력한 대북한 규탄 성명을 발표해야 했으며, 군은 경계태세를 강화하는 한편 즉각적이고 단호한 군사적 대응방안을 마련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같은 국가 위기관리의 기본 중의 기본을 청와대와 군이 하지 않은 것이다.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해야 할 시점에 대통령은 외부행사에 참석하고, 정부는 고위급회담을 제안했으며, 군은 엠바고를 요청한 채 청와대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이 상황이 이해가 되는가? 누구의 말처럼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와 군이 정신이 나가지 않았다면 모를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만인 11일 처음으로 입장을 표명했다. 그녀는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영국 외교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북한의 도발은) 정전협정 위반이며 북한의 행동을 강하게 규탄한다"며 "우리 정부는 강력한 대북 억지력을 바탕으로 한 압박도 지속해 나가는 한편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위한 노력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위기 상황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대통령이 일주일만에 언론에 나타나 북한의 도발을 규탄하고 있다. 뒷북 작렬인 그녀의 말이 공허하게만 들리는 것은 비난 필자만의 생각일까?
"북한이 도발한다면 아무런 정치적 고려없이 초전에 강력 대응하겠다. 북한의 돌발적이고 기습적인 도발에 대해 직접 북한과 맞닥뜨리고 있는 군의 판단을 신뢰할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 (2014년 4월 1일 국방부 업무보고)
"북한이 도발하면 즉각적이고 강력한 응징을 하겠다. 만약 북한 도발 시 전방은 5일 이내 (북한군의) 70% 전력을 궤멸할 수 있는 군 태세가 갖춰져 있다" -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2013년 4월 4일 국회 국방위원회 업무보고)
평상시 철통같은 경계태세를 구축하고, 북한의 도발이 있을 시 초전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것이 박 대통령이나 군이 일관되게 강조해온 입장이었다. 그러나 저들의 화려한 수사가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 한번 입증이 되었다. 청와대는 북한의 도발에 신속하고 즉각적인 군사작전태세에 돌입해야 할 군을 통제하고 있었고, 군은 이런 청와대의 눈치를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북한의 도발에 초전에 강력 대응하겠다는 저들의 말과는 다르게 일주일이 다 되도록 청와대와 군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고, 강력한 응징과 혹독한 댓가란 고작 대북심리전 확성기가 전부였다. 기가 막히고 한심한 노릇이다.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노크귀순 사건, 목함 지뢰 폭발 사건 등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쳐오면서 발생한 크고 작은 사건들은 구멍뚫린 국가안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럼에도 이 정부는 말만 거창하고 화려하게 늘어놓을 뿐 실질적이고 실효적인 대책은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가안보는 말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튼튼한 국가안보가 말만으로 될 수 있다면 대통령과 정부, 군이 굳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 구멍뚫인 국가안보와 대책없는 박근혜 정부,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걱정과 불안이 점점 커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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