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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김무성의 도발,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라

미국 방문 중인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가 연일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26일 워싱턴 DC 알링턴 국립묘지 내에 있는 월턴 워커 장군의 묘비에 큰절을 올리며 '과공비례' 논란에 휩싸이더니 31일에는 '진보좌파가 장악하고 있는 역사관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직접적으로 거론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미국 LA의 한 호텔에서 교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 진보좌파 세력들이 대한민국 건국 이후 역사를 정의가 패배한 기회주의, 굴욕의 역사라고 깍아내리고 있다. 좌파세력이 준동하며 미래를 책임질 어린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역사관을 심어주고 있다"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 역사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차기 대권을 꿈꾸는 집권여당의 대표가 바다 건너 미국에서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고 당당히 주장하고 있다. 대단히 정략적이고 정치적인 이 발언이 문제가 되는 것은 첨예한 사회적 갈등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이념 논쟁을 국정교과서 추진의 도구로 삼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현행 역사교과서가 '정의가 패배한 기회주의'와 부정적 인식에 사로잡혀 있는 '굴욕의 역사'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 장면은 어딘가 낯이 많이 익다. 김무성 대표의 모습은 최근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안보법제'를 날치기로 처리하며 거센 역풍에 시달리고 있는 아베 일본 총리의 그것과 판박이다. 아베 총리는 취임 이후 끊임없는 역사 왜곡과 영토 분쟁을 일으키며 일본의 극우화를 추진해 온 인물이다. 그의 삶은 일본제국주의의 침략과 전쟁을 정당화하고 군국주의를 부활시키기 위해 일생을 바쳐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 이후 일본내 보수우익세력은 역사 교과서를 개정하기 위한 총력전에 돌입했다. 이때 결성된 단체가 '새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다. 새역모는 2001년 역사왜곡 논란이 거세게 일었던 후소샤 교과서를 만들게 되는데 당시 이 모임을 적극적으로 후원해 주던 자민당 내 국회의원 모임을 주도한 것이 현 아베 총리였다. 


새역모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본에서 이루어진 역사 교육을 '자학 사관'이라 인식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인사이자 새역모의 회장을 역임했던 후지오카 노부카쓰가 널리 퍼트린 '자학 사관'은 패전 이후 일본의 유구하고 자랑스러운 역사가 부정되고 왜곡되고 있으니 이를 폐기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그 과정에서 자행된 만행들이 기록된 역사교과서가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기 때문에 아예 이를 없애자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학문의 영역인 역사를 정치 깊숙이 끌어 들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유사한 움직임이 발견된다. 지난 2014년 3월 1일 교과서살리기운동본부, 자유통일포럼 등의 보수단체가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바른역사 독립을 위한 시민대회'를 개최하고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현장판매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그들이 팔겠다고 들고나온 역사교과서는 2013년 10월 교육부로부터 251건에 달하는 수정·보안 권고를 받은 교과서다. 이 교과서는 검정단계에서부터 본다면 무려 2,122건이나 수정된 문제의 교과서다. 그런데 거의 책 한권을 다시 쓸 정도의 오류가 발견된 이 교과서의 진짜 심각한 문제는 그 내용에 있다. 







교학사의 역사 교과서에는 경악할 만한 내용들이 수두룩하다. 일본군 트럭에 끌려가는 위안부의 사진 밑에 '한국인 위안부는 부대가 이동할 때마다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놀랍게도 강제 동원된 위안부가 돌연 자발적 참여자로 뒤바뀌어 있다. 일제의 헌병 경찰이 독립군 의병을 '토벌'하고 독립 운동가를 '색출'했다는 내용도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 교과서가 일제 헌병 경찰을 아군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쯤되면 차라리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의 주역인 새역모가 만든 교과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런데 이 문제의 교과서를 정부와 집권여당이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나섰다. 김무성 대표 역시 그 대열에 가세했던 정치인이다.  


김무성 대표는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 "7종 교과서가 현대사를 부정적인 사관으로 기술한 반면 교학사가 긍정적인 사관으로 교과서를 준비하고 있다. 학생들이 역사 교과서 중 현대사 부분을 긍정적 사관으로 배워야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고 이에 따라 애국심을 갖고 국가 발전에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그는 "교육부의 엄격한 검증을 거쳐 통과된 역사 교과서가 전교조의 테러에 의해 채택되지 않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교학사 교학서가 일선 학교에서 채택되지 않는 현실을 개탄하게도 했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일본제국주의를 미화한 식민지 근대화론이 긍정적 사관이 되고, 식민지 근대화론에 입각해 기술된 교과서를 통해 배워야만 학생들이 애국심을 갖고 국가발전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소리가 된다. 일본제국주의를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분단과 독재로 이어지는 역사과정을 미화하고 왜곡하는 교과서가 학생들을 위해 꼭 필요할 뿐만 아니라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집권여당 대표의 영혼없음에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그가 말하는 애국심과 국가가 대한민국을 지칭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지극히 의심스럽다. 





일본의 역사 왜곡에 자학사관의 극복, 군국주의 부활, 일본 보수정권의 장기집권 등의 저의가 숨겨져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 역시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시기에 행해진 '과거사 바로 세우기'를 부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승만·박정희 시대를 복원시키며, 식민지 근대화론에 입각해 친일청산에 반대하고 궁극적으로 보수정권의 장기집권을 도모하려는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역사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기록이자, 반성이며 성찰이다. 그런데 일본의 아베 내각과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 역시 있는 그대로의 역사, 반성과 성찰의 역사가 아닌 가공의 역사, 편집되고 윤색된 역사를 아이들에게 이식하겠다 한다. 이는 친일과 유신독재의 원죄가 있는 이 땅의 보수우익세력들이 자신들 스스로에게 역사적·도덕적 면죄부를 주겠다는 의미다. 정권의 철학과 사관을 고스란히 반영할 수 밖에 없는 국정교과서는 이를 위한 초석이나 다름없다. 


전 세계적으로 국정교과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베트남과 북한 밖에는 없다. 유신시대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국정교과서 체제로 돌아가겠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통용될 법한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체제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민주공화국에 걸맞는 다양하고 창조적인 사고를 지향하는 교육체제로 나아갈 것인가가 우리의 숙제로 남겨졌다. 정치권력의 일방적 폭주와 독재를 제어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는 건강한 시민사회의 행동과 의지에 달려 있으므로.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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