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해킹 프로그램 제작업체인 'Hacking Team(해킹팀)'으로부터 원격감시시스템을 구입해 불법 사찰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국정원이 거래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는 민간사찰용이 아닌 연구 개발용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언제부터인지 이 정부에 문제가 생기면 어디서든 나타나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주는 북한의 사이버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구입했다는 취지다.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은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국민을 대상으로 해킹했다면 어떤 처벌도 받겠다"며 거세지고 있는 국정원의 불법 사찰 논란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국정원의 해명과 부인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어제(15일)는 연구 개발용으로 프로그램을 구입했다는 국정원의 해명을 궁색하게 만드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애초 국정원은 2012년 1월과 7월 '해킹팀'에서 10명씩 20명분의 해킹용 소프트웨어인 RCS를 구입했다고 해명했었다. 그러나 대선을 불과 11일 앞둔 지난 12월 6일 RCS 30개를 추가로 구입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거짓말을 한 것이다. 국민을 대상으로 해킹한 것이 아니라던 국정원은 왜 이같은 내용을 숨기고 있었을까. 필자는 이것이 지난 대선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국정원이 '해킹팀'과 계약한 것은 지난 2012년 2월 무렵이었다. 국정원은 본계약에 앞서 '해킹팀'과 수차례에 걸쳐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제품에 대한 문의를 하고 자문을 받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 이후 2개월 뒤 제19대 총선이 치루어졌다. 그로부터 5개월 뒤인 7월 10일 국정원은 RCS에 대한 업그레이드를 실시했고, 다시 5개월 뒤인 12월 6일 추가로 RCS 30개를 구입했다. 이렇게 지출된 비용만 우리 돈으로 약 8억 6천만원이나 된다. 상식적으로 제품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수억원을 들여 RCS를 구매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RCS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이용한 페이스북과 트위터, 메일 등은 물론이고 주소록과 통화목록, 채팅, 비밀번호까지 알아낼 수 있는 강력한 해킹 프로그램이다. 뿐만 아니라 컴퓨터와 스마트 폰의 카메라를 원격으로 조정해 몰카까지 찍을 수 있고,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두 감시할 수 있는 강력한 기능을 탑재한 프로그램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장면들이 RCS를 통해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고, 실제로 국가기관인 국정원이 그렇게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앵무새처럼 대북관련 활동의 일환으로 연구개발용 차원에서 RCS를 구입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는 지난 대선 당시의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당시에도 그들은 대북심리전의 일환이라는 말만 기계처럼 늘어놓고는 했다. 그러나 트위터를 통해 리트윗된 120만건에 달하는 정치·대선관련 글들, 야당 후보와 특정지역을 비하하며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커뮤니티 게시판에 무차별적으로 게시된 정치편향적인 글들이 대북심리전과 아무런 상관이 없듯, RCS 역시 대북정보 활동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국정원은 갤럭시가 출시될 때마다 국내판매 제품에 한해 해킹을 의뢰했고 특히 갤럭시6 엣지에 대해서는 통화를 녹음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까지 요청했다. 이는 국정원이 감시의 대상으로 국내인을 표적삼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카카오톡'과 'V3 모바일'에 대한 해킹 의뢰한 것 역시 북한과는 연관성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이들은 모두 국내인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이다.
'서울공대 동창회 명부'라는 파일과 '천안함 조사'라는 파일에 악성코드를 심어 감시 대상자에게 보낸 것도, '떡볶이 맛집', '벚꽃축제'같은 피싱 URL을 87차례나 제작의뢰한 것도 대북정보 활동과는 전혀 무관한 일일 뿐이다. 그럼에도 국정원이 해킹팀과 거래하면서 국내에서 활동해 왔던 짓들을 대북정보 활동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느새 그들의 주특기가 되어버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나 다름이 없다. 설령 그들의 말대로 연구개발용으로 구입했다 하더라도 국정원이 불법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정황상 국정원은 RCS에 대한 충분한 검증을 거쳐 대선 전 추가 구매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역시 국정원이 과연 해킹 프로그램을 대선에 활용했느냐의 여부다. 지난 대선에서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던 국정원의 행태로 볼 때 구입한 해킹용 소프트웨어를 대선에 활용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프랑스의 위대한 철학자이자 사상가였던 몽테뉴는 "진실은 하나뿐이지만 거짓말은 한없이 많은 변종이 있다"는 명언을 남겼다. 국정원이 자행한 지난 대선에서의 선거개입과 민간인 사찰 사이의 진실 역시 하나일 것이다. 당시의 대통령은 이명박이었고,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민간인 사찰을 진두지휘한 것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다. 그리고 도움을 받은 적이 결단코 없다던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의 도움을 받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국정원이 해킹프로그램을 이용해 민간인을 광범위하게 사찰하고 이를 대선 정국에 이용했다면 이명박과 국정원,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한다. 이명박과 국정원에게는 민주주의와 헌법을 유린한 책임이, 이에 동조한 박근혜 대통령은 최고통수권자로서 민주주의와 헌법가치를 방기한 책임이 있다.
민주공화국에서 민주주의와 헌법가치가 훼손되는 것만큼 참담하고 비극적인 일이 또 없다. 만약 제기된 의혹이 사실이라면 박근혜 정권 퇴진운동이 벌어진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처참한 상황이다. 대통령과 정권보다 소중하고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헌법가치를 수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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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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