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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MBC 떠나는 이상호 기자, 그를 응원하는 이유

이상호 MBC 기자가 지난 3일 사측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전날 MBC로부터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받자 미련없이 사표를 던진 것이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보도국 대기 발령은 물론 사내 게시판 접근조차 허용되지 않는 등 MBC에서 더 이상 기자로서 소명을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 "이제 국민의 기자가 되기 위해 두려운 가운데 MBC를 떠나 광야로 나서려 한다"는 심경을 남겼다.

이 장면은 그가 해고를 당하던 당시의 상황과 아주 비슷하다. 지난 2013 115일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MBC 종업원이 아닌 국민의 기자가 되겠다. 함께 축하해 주실래요?"라는 글을 올리며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바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번에는 그가 자발적으로 사표를 날렸다는 거다. 피동적 객체였던 그가 능동적 주체로 변신한 것이다. 이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 사측으로부터 해고를 당해야 했던 그가 이번에는 사측에 사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그의 행위에서 시원한 청량감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착각인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대다수의 언론은 그가 사실상 해직당한 것이라 보도하고 있다)



ⓒ 미디어오늘


보통의 경우라면 사표를 제출한 사람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이 자연스럽다. 전전긍긍하고 있는 남의 속도 모르고 '시원하고 통쾌하다'라는 멘트를 날렸다간 멱살잡이를 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상호'라는 그릇을 담기에는 MBC가 위상이 영 볼품이 없기 때문이다. 사나이의 의리와 쌓인 정을 생각해서 남아있어 주기엔 (미안한 말이지만) MBC에는 어떠한 희망도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땐 '잘 나왔다'라고 말해주는 편이 맞다. 이상호 기자의 사표에 분노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대법원의 해고무효 판결이 난 이후 그가 복직을 결정했던 이유는 MBC라는 간판 때문이 아니었다. 아직 한창인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기자'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그다.  뭐가 아쉬울 것이 있다고, 무슨 대단한 영화를 누리겠다고 MBC에 다시 들어간다는 말인가. MBC라는 타이틀은 이미 '국민의 기자'로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던 그에게 오히려 짐이자 부담일 뿐이다.


게다가 MBC로 복직하게 되면 험난한 가시빝길이 예고된 터였다. 그의 복직이 결정되자 마자 MBC는 경영지원국장 명의로 6개월의 정직을 예고하는 성명을 발표했다그에게 강력한 응징과 보복을 의미하는 선전포고를 날린 것이다. 실제로 그는 복직한 이후 두 번에 걸친 6개월의 정직과 갖가지 부당한 처우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는 복직하기 전부터 자신이 받을 징계와 불투명한 앞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MBC로의 복직을 결정했다. 혹시라도 MBC가 바뀌지는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과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기자로서의 소명과 양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MBC 경영진이 보도 불공정성을 개선하고, 신뢰받는 뉴스를 하겠다고 한다면 영등포 경찰서 '사스마와리'(사회부 경찰 기자를 뜻하는 언론계의 은어)라도 하겠다고 했을까.




ⓒ 오마이뉴스

그러나 그의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애시당초 부질없는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김재철, 김종국, 안광한 체제를 거치면서 공영방송 MBC의 저널리즘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MBC의 초라한 현실은 언론사를 대상으로 한 각종 조사와 평가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MBC <시사저널> '2015년 가장 신뢰하는 언론매체조사'에서 7위를 기록했고, 같은해 한국기자협회의 신뢰도 조사에서는 단 1.1%를 얻는데 그쳤다. 이는 조선일보(3.5%)와 중앙일보(2.8%) 보다도 낮은 수치다.

방소통신위원회가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의뢰해 실시한 '2015년 방송채널 평가지수'에서도 MBC는 총 8개 방송채널 중 7위를 기록했다. JTBC 2년 연속 1위를 차지한 가운데 6위와 8위는 각각 채널A TV조선이었다. 한때 신뢰도 1위를 달리던 공영방송 MBC가 여론 왜곡과 편파 방송으로 악명이 높은 종편채널과 바닥에서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호 기자의 복직은 이런 상황에서 이루어졌다그러나 누구보다 맹렬히 정권의 치부와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쳐 왔던 그에게 MBC는 맞지도, 어울리지도 않는 옷이나 다름이 없었다호랑이의 심장과 매의 눈으로 정권과 사회를 감시해 왔던 그에게 MBC는 거대한 철창이나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안다호랑이와 매가 있어야 할 곳은 좁디 좁은 철창 안이 아니라 광활한 숲과 드넓은 창공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마음껏 축하해 주고 응원해 주자. 그에게 찾아온 자유를. 그 멈추지 않는 도전정신을. 그리고 어떠한 외압과 시련에도 꺼지지 않는 불굴의 기자 정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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