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이상해졌네."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척당불기' 액자와 관련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척당불기' 액자가 2010년 의원실에 있었다는 영상이 발견됐다"는 MBC 기자의 질문에 즉답을 피하면서 내뱉은 말이다. 가만 보니, 허투루 흘려 들을 말이 아니다. 홍 대표의 말마따나 MBC가 이상해지긴 정말 이상해진 듯 보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해 MBC가 얼마나 이상해(?)졌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홍 대표를 진땀 깨나 흘리게 만들고 있는 '척당불기' 액자 관련 보도다. 애초 '척당불기' 액자 논란에 불을 붙인 것은 <뉴스타파>였다. <뉴스타파>가 25일 '성완종 게이트'의 진실을 밝혀줄 핵심 관건인 '척당불기' 액자가 2010년 홍준표 의원실에 걸려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MBC의 영상이 있다고 보도한 것이다. 실제 MBC의 2010년 8월 4일과 10월 19일 방송 내용을 보면 홍준표 의원실에 문제의 액자가 카메라에 포착되는 장면이 등장한다.
지난 2011년 6월 당시 한나라당 대표 경선을 앞두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홍 대표는 22일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와 관련 홍 대표에게 1억원을 전달했다고 주장하는 성 전 회장의 측근 윤모씨는 돈을 전달하는 날 "홍준표 의원실에서 '척당불기'란 글자가 적힌 액자를 봤다"고 재판 과정에서 진술한 바 있다. 그러나 홍 대표 측은 이 액자가 의원실이 아닌 대표실에 걸려있었다고 반박했고, 대법원은 윤모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뉴스타파>에 이어 MBC까지 '척당불기' 액자와 관련된 보도를 내보내자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모양새다. MBC는 26일 방송에서 "당 대표실과 의원실 두 곳에 걸렸던 액자의 한자는 정확히 같다. 그런데 '당' 자에 사람인 변이 아닌 심방 변이 붙어 틀린 글자인 것까지 일치한다. 틀린 글자가 들어간 액자를 2개나 뒀을 가능성은 희박하므로 의원실의 액자를 대표실로 옮겼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이는 윤모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액자가 대표실에 걸려 있었다는 홍 대표의 주장이 거짓이었음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다.
그런데 MBC가 이상한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내용이 전파를 탔기 때문이다. 그동안 MBC는 공정·진실 보도와는 거리가 먼 방송으로 악명이 높았다. 정부여당에 불리한 내용은 축소하거나 침묵하는가 하면, 유리한 내용은 확대하거나 부풀리는 보도로 정권의 혓바닥, 정권의 나팔수라 비난받아 온 터였다. MBC가 이상해졌다고 홍 대표가 푸념을 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MBC였다면 한국당 대표의 입장을 곤궁하게 만드는 내용이 방송될 리 만무했을 테니까 말이다.
ⓒ MBC뉴스데스크 화면 캡쳐
MBC의 이상 징후는 다른 곳에서도 감지된다. <한겨레>는 27일 '달라진 MBC, 26년차 무명배우를 연기대상 시상자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오는 30일 열릴 예정인 <MBC 연기대상>의 대상 시상자로 26년차 무명배우 최교식씨가 나설 것이라고 보도했다. 통상 <연기대상>의 대상 시상자는 방송사 사장이나 고위급 간부가 맡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이번 시상식에서 MBC는 권위주의를 내려놓겠다는 상징적 의미로 무명배우인 최씨를 배우 이종석씨와 함께 공동 시상자로 선택했다고 한다.
이번 <연기대상>을 연출하는 박현석 피디는 "대상이라는 건 가장 크게 빛나는 별인데, 그 별이 있기 위해서는 수많은 작은 별들이 있어야 한다. 작은 별들 때문에 큰 별이 더 빛난다는 의미에서 유명하지 않아도 열심히 연기하시는 분들이 시상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최씨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그가 드라마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한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씨는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 26회에서 홍길동과 함께 싸우다가 죽는 백성 역할로 드라마 엔딩을 장식하며 화제가 된 바 있다.
<연기대상>의 형식도 내용도, 그야말로 파격이다. 무명배우가 <연기대상>의 대상 시상자라는 사실도 놀랍지만, 박 피디가 이런 구상을 하게 된 배경이 더욱 의미심장하다. 그것을 통해 달라진, 아니 누구 말처럼 이상해진 MBC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소위 '힘' 있고 '빽' 있고 '돈' 많고 '잘난' 사람들이 귀하게 대접받는 사회다. 법과 상식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히려 바보가 되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배금주의와 권력에 대한 탐닉이 내재된 욕망이라면, 이를 부추기는 건 사실 방송이다. 당장 TV를 켜 보라. 인간의 물욕과 탐욕을 자극하는 내용과 광고 일색이지 않은가. MBC의 이번 <연기대상> 시상식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이유일 테다. 각자의 위치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유명하지 않아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중한 가치를 MBC는 지긋이 묻고 있다.
지난 8일 <MBC 뉴스데스크>는 뉴스를 전달하기에 앞서 고백과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그를 통해 MBC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부역했던 과거를 사과하며 철저한 준비의 과정을 거쳐 겸손하고 따뜻한 뉴스로 인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12일 방송된 <PD수첩>에서도 MBC는 거듭 사과 입장을 표명하며 고개를 숙였다. 사회적 공기가 돼야 할 공영방송을 '사회적 흉기'로 전락시킨 지난 과오를 반성하며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 방송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실제 MBC는 최승호 사장 취임 이후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 사장은 취임 첫날부터 대대적인 인사 개편을 단행하며 MBC를 망친 구체제를 혁신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내비쳤다. 이어 과거 MBC의 황금기를 주도했던 뉴스와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원상복구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MBC가 과거를 통렬하게 반성하면서 새출발을 약속하자 시민들의 성원이 쏟아지고 있다. MBC 정상화 관련 기사마다 응원 댓글이 줄을 잇는가 하면, 새롭게 단장한 <MBC 뉴스데스크>에 대한 기대감은 시청률 상승으로 돌아오고 있다.
냉소와 조롱의 대상이었던 MBC에 시민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모든 변화가 MBC가 이상해지면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언론이 권력의 부정과 부패, 부조리를 감시·비판하고, 사회적 공기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려 노력하자 시민들의 지지와 격려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MBC가 달라지자, MBC를 향한 시민들의 시선도 바뀌기 시작했다. 이상해진 MBC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일 터다. 자신들이 시민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이유를 아직도 모르고 있는 언론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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