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여파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국내 언론과 여론은 이미 대한항공과 조현아 전 부사장으로부터 까마득히 멀어져 있다. 비단 국내 언론 및 여론 뿐만이 아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외신들이 '땅콩회항' 사건을 비판적인 견지에서 다루고 있고 그 기사에 딸린 댓글들도 그녀의 슈퍼갑질에 대한 비난 일색이다. 이처럼 '땅콩회항' 사건에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 있는 가운데 당시 상황에 대한 대한항공 사무장과 조현아 전 부사장의 진술이 서로 엇갈리고 있어 또 다른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국제적 망신으로 번진 이 사건이 논란이 가라앉기는 커녕 점점 점입가경으로 흘러만 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12일 대한항공 사무장은 KBS와의 인터뷰를 통해 조현아 전 부사장으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받았고, 대한항공 측으로부터 거짓진술까지 강요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같은 날 조현아 전 부사장은 국토교통부 조사에서 이같은 사실에 대해 "폭행과 욕설은 모르는 일이다. 처음 듣는 일이다"며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대한항공 사무장의 인터뷰로 비난 여론이 더욱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조현아 전 부사장이 사무장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사건의 양상이 진실게임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진실을 말하는 자와 거짓을 말하는 자 사이의 공방은 언제나 치열하고 뜨겁다. 절박함이 그 둘 모두에게 있기 때문이다. 진실과 거짓이 팽팽하게 맞서는 이 게임의 향배를 가늠할 중요한 변수는 목격자의 유무다. 목격자의 증언 여부에 따라 둘 사이의 무게 저울추는 어느 한쪽으로 급속하게 기울어져 버린다. 목격자가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진실이 감추어질 수도, 거짓이 백일 하에 드러날 수도 있다. '땅콩회항' 사건의 현장에 있던 목격자의 진술은 그런 면에서 사무장과 조현아 전 부사장의 진실공방을 밝혀줄 열쇠가 된다.
'땅콩회항' 사건 당시 조현아 전 부사장의 바로 앞자리 일등석에 앉았던 박모(32·여)씨는 어제(13일) 서울 서부지검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그녀는 이 자리에서 "조현아 전 부사장의 목소리가 워낙 커서 일등석과 일반석 사이 커튼이 접힌 상태에서도 일반석 승객들도 다 쳐다볼 정도였다"면서 "무릎을 꿇은 채 매뉴얼을 찾고 있는 승무원을 조현아 전 부사장이 일으켜 세워 밀쳤다"고 증언했다. 그녀는 이어 "(매뉴얼이 담긴) 파일을 말아서 승무원 바로 옆의 벽에다 내리쳤다"면서 "승무원은 겁에 질린 상태였고 안쓰러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박모씨는 또 "결국 승무원에게 파일을 던지듯이 해서 파일이 승무원의 가슴팍에 맞고 떨어졌다"고 했고 조현아 전 부사장이 승무원을 밀쳤다는 증언도 했다. 바로 곁에서 이 광경을 목격했던 박모씨의 증언대로라면 조현아 전 부사장이 당시 큰 목소리로 승무원에게 고함을 질렀고 위협적인 행동을 한 것은 명확해 보인다. 박모씨의 증언은 조현아 전 부사장의 주장과는 상충되는 것이다. 폭행이란 신체에 대한 일체의 불법적인 유형력을 행사하는 행위로 형법에 명시되어 있다. 결국 조현아 전 부사장이 승무원에 대해 직접적으로 물리력을 행사한 것이기 때문에 폭행을 했다는 의미가 된다.
다만 박모씨는 조현아 전 부사장이 욕설을 하는 것은 듣지 못했다고 진술함으로써 이 부분에 대한 여지는 남겨두었다. 그동안 언론은 참여연대의 주장을 인용하며 조현아 전 부사장이 승무원과 사무장을 향해 '이X, 저X', '이XX'등의 욕설과 폭행을 했다고 보도했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진위여부는 사건의 진행상황을 조금 더 지켜봐야 확실해질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사무장과 조현아 전 부사장 둘 중 한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팩트를 보는 것이다. 팩트는 사건의 본질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통로다. '땅콩회항' 사건이 언론에 대서특필된 후 대한항공측은 황급히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그 사과문이 오히려 여론을 더욱 악화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대한항공측의 사과문이 진정성도 없을 뿐더러 내용적으로도 거짓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심의 유무는 어디서나 이내 드러나기 마련이다. 책임회피와 변명으로 가득찬 사과문에 대한 여론의 질타는 아주 매서웠다. 급기야 사과문에 대한 내부 직원들의 반박 글이 잇따랐고 과거에 행해졌던 임직원들의 '갑질'에 대한 증언들도 속출했다. 대한항공측이 보여준 모습은 물의를 일으킬 때마다 나타나는 특권층의 일관된 대응방식과 대동소이했다. 사실을 부인하고 책임을 떠넘기고, 관련자를 회유하고 협박하고, 나아가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모습들이 이번에도 고스란히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폭행과 욕설에 대해서 모르는 일이라고 진술한 사실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땅콩회항' 사건 이후 그녀와 대한항공측이 보여준 무도함을 생각해 본다면 이유있는 반응들이다. 더구나 드러난 팩트들과 사건의 전개과정은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고 누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에 대한 합리적 판단을 쉽게 만들어 주고 있다.
사람들은 조현아 전 부사장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녀의 주장을 믿지 않는 것은 양치기 소년 효과 때문이다. '땅콩회항'에 대해 조현아 전 부사장과 대한항공측이 책임을 통감하고 진심어린 반성과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더라면 사태가 지금처럼 최악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태수습을 위해 최선의 행동을 해야 했음에도 오히려 최악의 악수들만 연거푸 두고 있다.
이같은 모습은 언급한 바와 같이 특권층의 몸에 배어있는 지독한 관성의 영향 탓이다. 나는 이마저도 특권층의 이유있는 '갑질'로 규정하고 싶다. 실수이든 고의든 잘못을 했으면 용서를 구하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것이 사회공동체의 보편적 상식에 부합한다. 그러나 저들은 이를 늘상 거부하고 무시하며 일방통행만을 고집하고 있다. 이 얼마나 반사회적인 모습들인가.
대통령도 할 수 없다는 '램프리턴'을 지시한 조현아 전 부사장의 행동은 그 자체로 비난받아 마땅한 '갑질'이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갑질'에 대한 거센 비난에 직면하고도 저들의 '갑질'이 도무지 멈출 줄을 모른다는 사실에 있다. 이는 저들의 특권의식이 얼마나 뿌리깊고 단단한 것인지를 우리에게 환기시켜 준다.
'땅콩회항'으로 특권층의 부끄러운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그녀는 우리사회 특권층의 '갑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현주소다. 자신을 향한 세상의 따가운 질책과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녀의, 아니 그들의 '갑질'은 현재진행형이다. 보편적 상식이 가로막지 않는다면 그들의 '갑질'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끊임없이 확대되고 재상산될 것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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