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그레 이글스의 이상군. 그는 올드 프로야구 팬들이라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선수다. 현 한화 투수코치인 이상군 선수는 1980년 대 중후반 한국프로야구를 지배했던 몇 안되는 선수 중 하나였다. 그에게는 최동원의 폭포수같은 커브도, 선동열의 날카로운 슬라이더도, 그렇다고 모든 투수들의 로망인 빠른 직구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리그를 지배할 수 있었던 까닭은 남들은 가지지 못한 자로 잰 듯한 제구력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프시즌 동안 심판들이 스트라이크 존 연습을 위해 그의 도움을 받았다는 일화가 있을만큼 그의 제구력은 발군이였다.
이상군 선수 정도의 레벨이 되면 경기 초반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을 확인하기 위해 홈플레이트의 이곳 저곳을 공 한개나 반개 정도 시험삼아 찔러보고는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심판의 성향을 가늠하고 이를 경기에 활용하는 것이다. 실제 그는 의도적으로 공을 반개 정도씩 살짝 홈플레이트를 빗겨가게 던져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을 넓히려는 시도를 했다고 한다. 야구는 심판의 존이 넓어질수록 투수에게 유리한 게임이기 때문에 이상군 선수의 시도는 매우 유의미하다.
오늘 뜬금없이 오래 전에 활약했던 이상군 선수와 야구의 스트라이크 존을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그의 행위를 연상시키는 인터뷰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다. 영화배우 김의성씨의 인터뷰는 이상군 선수가 선수시절 심판의 존을 넓히려고 스트라이크에 가까운 볼을 자주 던졌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김의성씨는 지난 15일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그가 1인 시위에 나선 이유는 쌍용차 평택공장 굴뚝에서 고공시위를 벌이고 있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위해서다. 현재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이 70m 굴뚝 위에서 고공시위 중에 있다.
지난 11월 13일 대법원은 쌍용차의 정리해고가 유효하다는 판결을 내리며 사측의 손을 들어 주었다. 쌍용차 153명의 실낱같은 희망은 이렇게 눈앞에서 허망하게 사라졌다. 그로부터 한달 후인 지난 12월 13일 새벽, 살을 에는 한기를 뚫고 두 사람은 다시 굴뚝 위에 올랐다. 지난 2009년의 옥쇄파업과 2012~13년의 평택 송전탑 고공농성에 이어 세번째 고공시위다.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은 이번 시위가 자신들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나약함을 알리기 위해 그들은 70m 굴뚝 위, 채 1m도 되지 않는 공간에 자신들의 몸을 맡겼다.
대법원의 판결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복직을 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봉쇄됐다. 그럼에도 저들은 다시 굴뚝 위로 향했다. 나약하기 때문에, 외롭기 때문에, 무섭기 때문에, 더 이상 길이 없기 때문에 저들은 어쩔 수 없이 또 다시 굴뚝에 오른 것이다. 국가가, 사회가, 법이 저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차디찬 굴뚝은 이제 저들의 마지막 희망이다. 처절하고 처연하다. 나는 이토록 처절한 시위를 일찌기 보지를 못했다.
"'당신들이 외롭지만 완전히 고립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는 배우 김의성. 그는 대중들이 환호하는 인기 많은 배우가 아니다 . 필자는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처음으로 그와 조우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저 우리네 이웃같은 느낌의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전혀 연기하지 않는 듯한 톤의 연기, 그 자연스러움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그 이후로 그를 영화와 TV에서 간혹 만날 수 있었다. 배우로서의 삶과 길, 대중에게 주목받고 싶은 열망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어쩌면 그 역시 지독히 외로웠는지도 모르겠다. 외로워 본 사람만이 타인의 외로움의 심연을 느낄 수 있는 법이다. 그래서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생각하는 이 배우의 일인 시위에는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마치 그가 쌍용차의 해고노동자로 빙의된 것만 같은, 그런.
그는 배우로서 정치적 표현을 하는 부담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내가 대단한 셀러브리티도 아니니까, 나같은 사람들이 법이 됐건 사회가 됐건 스트라이크 존을 테스트해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며 "스트라이크와 볼 사이에 자꾸 공을 던져서 스트라이크 존이 조금이라도 넓어지게, 그래서 개인의 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 이런 것들이 조금이라도 확장될 수 있게 자꾸 도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대답했다.
때로 너무 뻔한 이야기들이 가슴 속에 강렬한 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킬 때가 있다. 김의성씨의 스트라이크 존 이야기가 바로 그렇다. 스트라이크와 볼. 야구경기의 흐름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가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이다. 분명히 같은 코스에, 같은 구종의 볼이 들어갔는데 어떤 공은 스트라이크로 어떤 공은 볼로 판가름난다면 경기는 어떻게 될까.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이 흔들리면 그날의 경기는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심판의 흔들리는 스트라이크 존과 마찬가지로 국가도, 사회도, 법도 흔들릴 때가 많다. 정치권력에 의해서, 기득권에 의해서,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부당하고 불공정하게 진행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사회적 제반문제들이 법과 원칙에 따라 정당하고 공정하게 처리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사찰, 각종 측근비리, 사자방 비리, 남북정상회의록 유출, 국정원의 대선개입부터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서울시 간첩조작 사건, 세월호 참사, 비선실세 논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은 우리사회의 실종된 원칙과 상식이다.
냉정하게 말해 김의성씨의 테스트는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력과 기득권이 쌓아놓은 시스템이 대단치 못한 샐러브리티의 1인 시위 따위에 흔들릴만큼 빈약하지 않은 까닭이다. 오히려 그가 정치권력의 눈밖에 나 곤경에 빠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지금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시대다.
그러나 나는 김의성씨의 이런 모습 속에서 작지만 희망의 온기를 느낀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 하나로 곤경에 처해있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나아가는 모습에서는 의연함을 넘어 숭고함까지 느껴진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더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김의성씨 같은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실종된 원칙과 상식은 원래의 제자리를 찾아가게 될 것이고,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위한 배우 김의성씨의 1인 시위를 적극 지지한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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