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은 다소 '어정쩡한' 성적표를 받았다. 웃자니 썩 만족스럽지 못했고, 그렇다고 울자니 결과가 아주 나쁜 것도 아니었다. 정의당은 광역단체장은 물론이고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선거 때마다 늘 부딪히는 현실의 높은 장벽을 정의당은 이번에도 뛰어넘지 못했다.
만족스럽지는 못했지만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정의당은 정당투표에서 당당히 3위를 차지했고, 이를 바탕으로 경기도 2석을 포함해 수도권과 호남권, 그리고 충남과 경남, 제주도에서 총 11석의 광역비례의원을 배출했다. 정당득표율 3위의 쾌거는 2년 뒤 치뤄지는 총선을 위한 희망의 불씨다. 비록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정의당의 지방선거 결과를 실패로 규정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런 정의당의 얼굴에 요즘 '함박꽃'이 활짝 폈다. 지방선거 이후 웃지도 울지도 못했던 애매모호한 상황과는 확연히 딴판이다. 이유가 있다. 최근 발표되고 있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의당의 지지율이 연일 상한가를 치고 있다. '넘사벽'처럼 느껴졌던 마의 10%를 마침내 돌파하는가 싶더니, 급기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턱밑까지 추격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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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미터가 TBS의 의뢰로 9~11일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1,5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응답률 3.7%,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5%포인트)에 따르면, 정의당의 지지율은 지난주보다 2%포인트 오른 12.4%를 기록했다. 정의당의 지지율이 7주째 연속 상승하면서 한국당(16.8%)과의 격차도 오차범위 이내로 좁혀졌다.
한국갤럽이 지난 3~5일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응답률 14%,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서도 양상은 비슷했다. 정의당은 9%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10%에 그친 한국당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자세한 조사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주목할 것은 정의당이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지역에서 한국당 지지율을 추월했다는 점이다.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서울에서 정의당과 한국당이 각각 11.3%와 20%, 경기·인천에서 13.1%와 13%로 집계됐다. 정의당과 한국당이 최대의 격전지라 할 수 있는 수도권에서 치열하게 2위 경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의당의 상승세가 뚜렷하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이 흐름이라면 정의당이 한국당을 추월하는 대사건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정의당의 약진이 시사하는 바를 한 두가지로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정치적으로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보수성향이 확연한 대한민국 정치 지형에 커다란 변화를 촉진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정치의 주류가 보수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정치적 이념과 노선, 정책 등에서 보수정당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진보정당으로 각인되고 진보 성향 유권자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다분히 자유한국당의 영향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수구·냉전적 인식과 행태를 보이고 있는 한국당이 오랫동안 보수의 지위를 선점해 오면서 그 대척점에 있던 민주당에게 진보정당의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정치적 색채가 정통 보수에 가깝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민주노동당이 창당하기 전까지 대한민국 정치는 누가 더 보수적이냐 아니냐에 따라 스탠스가 나뉘어졌을 뿐 진보정치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민주노동당이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으로 분화한 뒤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거대 보수양당인 한국당과 민주당이 정치를 쥐락펴락하는 사이 진보정당은 현실성 떨어지는 과격한 주장이나 펴는 이단아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극강의 지역주의가 뿌리내린 양당체제의 정치 풍토에서 진보정치가 자생력을 갖기는 애시당초 대단히 난망한 일이었다. 더욱이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가 진보정당의 의회 진입을 가로막으면서 저변 확대는 더욱 어려워졌다. 그러나 정의당은 이같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경쟁력있는 대안정당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힘껏 경주해왔다.
실제 민주당과 한국당 양당체제의 그늘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정의당이 정치 개혁과 혁신을 위해 기여한 바는 결코 적지 않다. 단순 1위제의 비민주성을 극복하고 표의 대표성을 높이는 결선투표제를 가장 먼저 도입한 정당이 바로 정의당이다.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현 선거제도의 대안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것도 정의당이었다.
남북 관계, 재벌 개혁, 비정규직 보호, 복지 확대, 원전 건설 반대 등 각종 사회 현안에 있어서도 정의당은 분명한 색채를 드러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치·사회·경제적 이슈 뿐만이 아니라 노동과 인권, 복지와 환경, 여성과 평화 등 진보적 의제와 관련해서도 정의당은 일관되고 꾸준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장 최근만 하더라도 정의당은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국회 특수활동비 반납과 폐지에 앞장서는가 하면, 대기업 갑질 문화 청산을 주장하며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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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의 지지율이 급상승하자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확실한 것은 당리당략과 정파적 이익에 따라 정책과 노선을 카멜레온처럼 바꿔왔던 거대양당과는 다르게, 정의당이 분명한 자기 색깔을 가지고 진정성 있는 정책과 노선을 제시해왔다는 점이다. 최근의 지지율 상승이 진보정당으로서 정의당이 그동안 보여온 노력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뜻이다.
정의당의 상승세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예측하기는 힘들다. 지방선거 이후 크게 흔들리고 있는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야당이 다시 결집하는 순간 정의당은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일각의 주장처럼 젊은층을 비롯한 진보성향의 민주당 지지층의 이탈이 정의당의 지지율 상승을 견인했다면 그럴 가능성은 더 농후해진다. 고비 때마다 정의당을 옭아매던 '사표심리'가 재가동될 것이기에 그렇다.
불안요소는 정의당 내부에도 도사리고 있다. 정의당은 아직까지 세력이나 조직 등에서 전국정당에 걸맞는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실제 정의당은 6·13 지방선거에서 17개 광역단체장 중 8곳에서 후보를 내지 못했다. 기초단체장 역시 226개 중 단 15곳에서만 후보자를 냈을 정도로 당세가 약한 상황이다.
심상정 전 대표와 노회찬 원내대표를 제외하면 전국적 인지도를 갖춘 인물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새로운 인물이 수혈되지 않는 조직은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심상정·노회찬'으로 대표되는 1세대 진보정치의 바통을 이어줄 참신한 인물을 발굴하는 일이야말로 정의당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라는 평가다.
그러나 이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의당의 약진이 정치적으로 대단히 유의미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지역주의에 기반한 기득권 양당정치의 폐해 속에 신음해온 정치 토양을 떠올리면 더더욱 그럴 터다. 진보정당인 정의당이 주류 정치의 한 축으로 자리잡게 된다는 것은 대한민국 정치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되바뀌게 된다는 의미다. 제1야당의 지위가 한국당이 아닌 정의당에게 있다고 가정해 본다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12일 취임 1주년을 맞은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0년 총선에서 반드시 제1야당이 될 것"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제시했다. 이 대표의 포부대로 정의당은 과연 제1야당이 될 수 있을까? 그 결과가 어떻든 상상만으로도 절로 미소가 번진다. 망국적 지역주의와 세대·계층 갈등에서 벗어나 이념과 정책 중심의 생산적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는 장면을 떠올려 보라. 제대로 된 보수와 제대로 된 진보가 유권자를 사이에 두고 진검승부를 벌이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어떤가. 생각만으로도 '유쾌', '상쾌', '통쾌'하지 않은가. 정의당의 지지율 상승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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