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만들어진 포스터 한 장이 눈에 들어 왔다. 지난 2007년 이명박이 당시 한나라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된 후 만든 대선홍보 포스터다. 지금 보니 이명박의 미래를 내다보는 현안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어쩌면 '다음 대선에는 볼 것도 없고, 생각할 것도 없이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다'라는 주술이 저 포스터에 걸려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명박근혜'라는 희대의 신조어를 만들어 냈던 저 포스터의 문구 그대로 박근혜는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이 되었다.
국민들이 이명박을 선택했던 것은 그가 CEO출신의 후보이기 때문에 경제를 살릴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참여정부가 경제에 실패한 정부라는 주장은 조중동과 당시 한나라당의 끊임없는 정치공세로 인한 착시효과일 뿐이었지만, 국민들은 지난 17대 대선에서 이명박이 내세운 장미빛 경제 공약들에 사로잡혀 그를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애초에 이명박에게 도덕성과 정치지도자로서의 자질 및 품성, 가치관 등을 기대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로지 국민의 초점은 과연 그가 참여정부가 완벽하게 말아먹은(?) 경제를 살릴 수 있을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다. 저들은 '이명박이 약속하고 박근혜가 보장하는 국민성공시대'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리고 그렇게 8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과연 그들의 말처럼 국민들은 성공했을까, 행복했을까?
ⓒ 뉴시스, 선관위 by 아이엠피터
국민들이 이명박 정권에 기대한 것은 첫째도 둘째도 '경제살리기'에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임기 초부터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명박 정권의 경제운용의 핵심이 대기업 프랜들리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은 낙수효과를 강조하며 부자감세와 고환율 정책을 고수했고, 각종 규제를 완화시키며 철저하게 대기업 우선의 경제정책을 펼쳐 나갔다. 그 결과 고용환경은 점점 악화되어 갔고 계속되는 고환율정책으로 물가는 폭등했으며, 청년실업은 사상최대를 기록하고 내수는 죽어 자영업자들과 소상인들은 벼랑끝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게다가 이명박 정권은 일일히 기록하기가 벅찰 정도로 부정비리와 부패가 극심했던 최악의 정권이었다,
이 정도면 당연히 정권이 교체되어야 할 이유가 차고도 넘친다. 그러나 국민들은, 정확히 표현한다면 유권자의 51.6%가 제18대 대통령으로 박근혜를 선택했다. 그들이 박근혜를 선택한 이유들은 제각각일 것이다. 지역정서 때문에, 박정희에 대한 향수 때문에, 새누리당을 지지하기 때문에, 여성 대통령에 대한 기대 때문에, 대선 공약 때문에. 유권자들은 저마다의 이유들로 박근혜를 선택했다.
지역정서 때문에, 박정희에 대한 향수 때문에, 새누리당을 지지하기 때문에 박근혜를 선택한 국민들은 그녀와 새누리당의 변치않는 고정지지층이라 볼 수 있다. 40%에 이르는 국민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이 사람들은 하늘이 두 쪽이 난다 해도 절대 변하지 않는다. 대선과 총선, 그리고 재보선 등 각종 선거마다 나타나는 표심이 이를 여실히 입증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10%에 가까운 사람들은 왜 박근혜를 선택했을까. 이 사람들은 박근혜와 새누리당에게 과연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일까.
ⓒ 오마이뉴스
축구로 치자면 이명박근혜의 10년 중 전반전이 끝이 났고, 이제 후반전도 막바지로 향해가고 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전반전은 지켜보는 국민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경기였다. 그러나 기대를 가지고 시작한 후반전 역시 전반전과 별반 차이가 없다. 전반전을 책임진 이명박의 '국민성공시대'는 완벽한 사기로 판명되었고, 후반전 역시 박근혜가 대선 기간 내내 국민에게 약속한 '국민행복시대'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
박근혜는 대권수락연설문에서 '국민대통합, 부패척결과 정치개혁, 국민행복'을 거듭 강조했다. 정치인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살아온 삶의 과정이다. 박근혜는 대선기간 내내 '국민대통합'을 외쳐왔다. 그러나 정작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 갈등을 조장하고 이를 통해 정치적 입지를 다져온 사람이 바로 박근혜 자신이었다. 대권수락연설문에서 밝혔던 것처럼 박근혜가 '국민대통합'을 위해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해왔다면 박근혜 정부의 3년은 지금과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
과거 한나라당 대표를 역임했고 두 번의 비대위원장을 지낸 박근혜는 당내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 중 한사람이었다. 그는 당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부패척결과 정치개혁을 부르짖었고, 혁신과 개혁을 통해 환골탈태하겠다며 국민에게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전혀 없었다. 한나라당과 이름을 바꾼 새누리당, 그리고 박근혜 정부에서조차도 부정부패는 여전했고, 정치개혁은 늘 공염불에 불과했다.
ⓒ 노동과 세계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함께 성장하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차별없이 대우받도록 하겠습니다. 경제적 약자도 공정한 기회를 갖도록 만들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국민에게 힘이 되어드리겠습니다. 원천적으로 자립이 불가능한 분들은 국가가 보호하고, 일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국민은 일을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한국형 복지제도를 확립하겠습니다."
박근혜의 대선수락연설문 중 일부다. 박근혜의 입에서 나왔던 저 말들 중에서 과연 무엇이 지켜졌을까. 공허한 말의 성찬이 따로 없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널리 퍼지는 소문이 유언비어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는 국민들에게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를 약속하겠다'라는 말들을 무수하게 남발했다. 대선공약으로 명명된 그 말들은 지금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지금와서 보니 박근혜의 대선수락연설문은 한편의 유언비어 모음집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명박이 약속하고 박근혜가 보장하는 '국민성공시대'와 '국민행복시대'의 후반전도 이제 거의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또 한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약속했던 시대는 찾아오지 않았다. 지금은 약속은 사라지고, 책임마저 실종된 시대다. 실체없는 자기부정의 말들만 유령처럼 세상을 떠돌아 다니고 있다. 이쯤되면 속는 사람이 바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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