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3일 자유한국당의 새 원내사령탑으로 3선의 김성태 의원이 선출됐다. 잘 알려진대로 김 원내대표는 한국노총 출신으로 노조 활동을 할 당시 '들개'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강력한 투쟁능력을 갖춘 인물로 평가받는다.
원내대표 경선에서 의원들이 친박계인 홍문종 의원과 중립 단일후보인 한선교 의원이 아닌 김 원내대표에 표를 몰아주었다는 것은 한국당이 강력한 대여 투쟁에 나설 것임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나 마찬가지였다.
김 원내대표 역시 의원들이 자신을 선택한 이유를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한국당의 당면 과제는 첫째도 둘째도 문재인 정권과 맞서 싸우는 것"이라며 "문재인 정권의 독단과 전횡, 포퓰리즘을 막는 전사로 서겠다"고 천명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우리의 모든 상처와 아픔을 용광로에 넣어서 대여 투쟁을 강화하겠다"면서 "이제 우리는 야당이다. 잘 싸우는 길에 너와 내가 있을 수 없다"며 대여 투쟁에 사활을 걸겠다는 뜻을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취임 일성을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원내대표로 부임한 이후 그는 시쳇말로 정부여당과 '박 터지게' 싸웠다. 부임하자마자 그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아랍에미리트(UAE) 특사 방문을 둘러싼 의혹을 집중 부각시키며 대대적인 대여 공세에 나섰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는 임 실장의 전격적인 국회 방문을 이끌어냈고 '향후 효율적인 해외 원전 수주를 위해 정부와 야당이 함께 협력할 것', '국익과 관련한 문제일수록 정부가 야당에 더 잘 설명하고 국회 협력을 구할 것' 등의 합의를 이뤄내며 제1야당 원내대표로서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각인시켰다.
ⓒ 오마이뉴스
평창동계올림픽 과정에서도 그는 한국당 특유의 색깔론과 이념 공세로 정부여당을 거세게 밀어붙였다. 그는 올림픽이 시작하기 전부터 "올림픽을 핑계로 한미연례 군사훈련도 중단하더니 북한 이슈에 경도돼 평창올림픽을 통째로 북한의 페이스에 맞추려 해 국민들이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면서 "문재인 정권이 평창올림픽을 통째로 북한에 갖다 바칠 기세"라고 날을 세웠다.
'평양올림픽' 프레임을 가동시키며 남북한 동시입장, 한반도기, 여자 아이스하기 남북단일팀 등에 문제를 제기하는가 하면, 폐회식 참석차 방남하는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막아서기 위해 파주 통일대교에서 밤샘 농성을 펼치기도 했다.
대통령 개헌안 정국에서도 그의 '싸움꾼' 기질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지난 대선 당시 후보들의 공통공약이었던 '6월 지방선거-개헌 국민투표' 약속 이행이 지지부진해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 주도의 개헌안 발의를 시사하며 국회의 조속한 협조를 당부했다. 30여년 만에 찾아온 개헌의 호기를 놓치지 말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그는 정부 개헌안을 '관제개헌'으로 규정하는 한편 문 대통령의 개헌 시도를 "애들 장난"이라고 폄하했다. 그는 3월 19일 원내대책회의 자리에서 "개헌이 애들 장난인가. '아니면 말고' 식의 개헌 장난은 아이들 불장난에 불과하다"며 "개헌을 정략의 도구로 바라보지 말고 개헌 논의를 '아무 말 대잔치'로 만들지 말 것을 경고한다"고 각을 세웠다.
그러나 6월 개헌은 한국당의 대선 공약이었다. 그 역시 지난 2016년 9월 국회 대정부 질문을 통해 "여야 정치권에만 의지해서도 안 된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며 정부 주도 개헌의 당위를 역설한 바 있다. 심지어 그는 2017년 4월 12일 보궐선거와 연계해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날짜까지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당의 공약 파기와 자신의 말바꾸기에 대해 그 어떤 사과나 입장 표명도 하지 않았다.
4월과 5월 임시국회를 공회전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의 외유논란과 드루킹 사건에서도 그는 맹활약했다. 김 전 원장의 과거 국회의원 시절 외유성 출장 논란이 불거지자 그는 누구보다 앞장서 맹공을 펼쳤다.
의혹과 관련해 그는 "참여연대 출신의 금융전문가가 아니라 갑질과 삥뜯기의 달인"이라며 "청와대의 검증시스템은 코드 인사에겐 과오도, 죄과도 묻지 않는다는 것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고 김 전 원장과 청와대를 향해 적극적인 공세를 폈다.
그러나 피감기관 지원에 의한 국회의원의 해외출장은 당시의 관행이었다. 그 역시 과거 외유성 출장 사실이 알려지며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2015년 당시 두 차례에 걸쳐 피감기관인 한국공항공사의 지원을 받아 캐나다와 미국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는 이와 관련해 시민단체로부터 고발까지 당했다.
드루킹 사건 당시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국당은 이 사건에 사실상 '올인'하다시피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한국당의 장외 대여 투쟁을 진두지휘하며 노동운동가 출신다운 야성을 유감없이 드러내 보였다. 비록 특검을 관철시키지는 못했지만 9일 간에 걸친 단식투쟁으로 정부여당을 압박함으로써 특검 수용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렇듯 그는 원내대표 부임 이후 강한 야당론을 견지하며 강력한 대여 투쟁 노선을 고수해 '김성태'라는 이름을 뚜렷하게 부각시키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수야당을 대표하는 전국구 정치인으로서의 가능성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 오마이뉴스
그러나 대여 투쟁을 바탕으로 한국당의 체질 개선과 야당으로서의 선명함을 대내외적으로 드높였다고 평가받는 그는 요즘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당은 6·13 지방선거에서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 홍 전 대표와 함께 선거 국면을 이끌었던 그로서는 선거 패배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다.
지난 18일 발표한 이른바 '김성태 쇄신안'도 뭇매를 맞고 있다.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된 쇄신안에 반발하는 기류가 당내에 확산되고 있는 데다, 선거 참패의 책임을 져야 할 그가 당 수습 방안을 내놓는 것 자체가 자가당착이라는 비판이 속출하고 있다.
급기야 21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당 의원총회에서는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목소리까지 분출됐다. 친박계를 중심으로 한국당 내에는 '중앙당 해체, 혁신비대위 구성' 결정을 독단적으로 감행한 그의 행보를 당권 장악을 위한 수순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해지고 있다. 원내대표 사퇴 요구는 이와 같은 친박계의 뿌리 깊은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방선거 참패 이후 한국당은 살을 에는 듯한 혹한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선거 패배의 책임론을 둘러싸고 당은 극심한 내홍에 휩싸여 있고, 이 와중에 친박계와 친이계의 해묵은 계파싸움까지 불거지며 자중지란에 빠져 있는 상태다. 한국당을 향한 세간의 인식 역시 싸늘하기 그지 없다.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한국당이 2020년 총선을 즈음해 소멸하게 될 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6개월 간 정부여당과 그야말로 '오지게' 싸워왔던 그가 직면해 있는 현실 역시 한국당의 처지와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원내대표로 취임 하자마자 강한 야당론을 피력하며 맹렬히 칼을 휘둘러 왔지만 결과는 '참담' 그 자체다. 한국당은 지방선거에서 유례없는 참패를 당했고, 그는 사퇴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정치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들개' 김성태 원내대표의 지난 6개월 동안의 행보가 시사하는 바는 아주 남다르다 할 것이다. 강력한 대여투쟁보다, 화려한 싸움의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시대의 흐름과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는 정치의 중요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반면교사'일지도 모른다. 집권을 꿈꾸고 있는 정당이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그런.
'정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당에게서 비극을 예감하는 이유 (5) | 2018.06.27 |
---|---|
한국당의 앞날, 그야말로 캄캄하다 (2) | 2018.06.26 |
한국당의 '정풍운동'이 공감받지 못하는 이유 (4) | 2018.06.21 |
풍전등화에 빠진 한국당..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4) | 2018.06.20 |
중도의 함정에 빠진 안철수, 정계 은퇴 하나! (7) | 2018.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