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세비동결 없던 일로? 새누리당이 비판받아야 하는 이유

지난달 30일 박명재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아주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의 일환으로 세비 동결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는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혁신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20대 국회는 세비를 동결하겠다. 올해 안에 국회의원들이 지발적으로 약 100만원의 자기 선금을 각출해 청년희망펀드에 기부하도록 결의했다"는 각오를 늘어놓았다.

새누리당이 20대 국회에서 세비 동결을 주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새누리당은 깨끗한 보수정당으로 거듭나겠다는 다짐 속에 세비 동결과 보좌진 채용 점검 등의 '특권 내려놓기'에 앞장서기로 결의한 바 있다. 국회의원의 가족채용 문제로 여론의 비난이 빗발치자 발빠른 대응으로 국면을 타개하겠다는 의미에서였다.

지난달 29일에도 정진석 원내대표는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중향평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가진 사람으로 분류되는 국회의원부터 달라져야 한다며 의총에서 세비 동결 문제를 진전시키겠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비대위에서도 '특권 내려놓기' 차원에서 혁신 의제 중 하나로 이 문제를 검토해주길 부탁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집권여당의 원내대표와 사무총장이 연달아 세비 동결 문제를 거론한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일이다. 국회의원의 과도한 특권을 비판하는 국민여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집권여당이 솔선수범해서 '특권 내려놓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 하니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인 것이다.


ⓒ 오마이뉴스


그런데 세비를 동결하겠다고 선언한 지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웃지 못할 촌극이 연출되고 있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앞다투어 다짐한 세비 반납이 의원들의 강한 반발에 막혀 흐지부지될 공산이 커졌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6일 국회에서 비공개로 열린 의총에서 세비 동결 문제로 격론을 벌였다는 후문이다. 이 자리에서 의원들은 지도부의 세비 동결 방침을 현실을 도외시한 포퓰리즘이라 강하게 비판했다 한다.

맞는 말이다. 애초부터 새누리당의 세비 동결 주장이 포퓰리즘이자 선심성 립서비스였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더민주당 서영교 의원의 가족채용 논란의 불똥이 새누리당으로 옮겨붙자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세비 동결과 불체포 특권 포기였다. 그래도 '설마' 했다. 적어도 시늉이라도 하겠거니 했다. 그런데 '역시나'다. 국민 눈치 안 보는 'LTE'급 대응이다. 역시 새누리당은 클래스는 영원하다. 

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익숙한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지난 19대 국회가 개원한지 얼마 안 된 시점의 일이다. 당시 국회는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의 국정조사와 청문회 개최에 대한 여야의 이견으로 한달 가량 열리지 못했다. 이에 국회를 비난하는 여론이 빗발쳤고 눈치 빠른 새누리당이 선수를 쳤다.


그들은 뜻밖에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들이대며 6월 세비 전액을 반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깜짝 세비 반납 결정이 '대국민 우롱극'임은 이내 밝혀졌다. 반납하기로 한 새누리당의 세비가 국고가 아닌 당으로 귀속되는 까닭이었다. 국민들은 다시 한번 새누리당의 기만극에 장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새누리당의 말바꾸기와 기만극을 늘어놓자면 한도 끝도 없다. 그 중 선거 공약이야말로 그들의 실체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비근한 예다. 일일히 기억하기도 힘든 수많은 공약들이 깨졌고 누더기가 됐다그러나 사라진 공약보다 더욱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든 건 후안무치한 그들의 뻔뻔함이었다. 그들은 제대로 된 사과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언제 그랬냐는 듯 오리발까지 내밀었다.


ⓒ 오마이뉴스


대표적인 경우가 지난 대선의 기초노령연금 공약이다. 대다수 노인들의 마음을 미혹시켰던 이 공약은 그러나 대선이 끝나기 무섭게 이리저리 뜯겨 나가더니 격한 논란 끝에 결국 국민연금가입기간에 따른 차등지급으로 결론이 났다. 이 와중에 당시 새누리당의 정책위부의장이었던 나성린 의원은 "대선 때 기초노령연금을 65세 이상 노인 전부에게 지급한다고 한 적이 없다"는 역대급 오리발을 내밀어 수많은 국민들을 멘붕에 빠지게 만들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지난 대선 공약이었던 영남권 신공항 건설 공약 파기 역시 같은 맥락이다. 기존의 김해 공항을 확장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 이 기만극에 대해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김해공항 확장이 곧 신공항'이라는 해괴한 궤변을 늘어놓으며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이쯤되면 새누리당의 말바꾸기와 국민 기만은 대동강물을 팔아 먹었다는 '봉이 김선달' 저리 가라는 수준이다.

 

문제는 이 장면들이 TV와 신문,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통해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달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극단의 정치 혐오와 불신이 사회 전반에 걸쳐 확대될 수밖에 없다. 정치의 미덕인 '책임' '신의'가 희화화되고, 정치가 국민들로부터 더욱 유리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말바꾸기와 거짓말이 사회공동체의 기본 질서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사회악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초등학생들도 아는 이 기본적인 도덕 관념이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마구잡이로 훼손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이 중심에 새누리당이 놓여있음은 물론이다. 그들이 더욱 혹독하고 매섭게 비판받아야 하는 이유다.



  바람 언덕의 정치실험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