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밤 8시 32분 경 경주에서 지진관측 이래 최대 규모인 5.8의 지진이 발생했다. 진동은 경주와 멀찍이 떨어진 서울에서까지 느껴질 정도였고, 부산에서는 80층에 달하는 고층빌딩이 흔들려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주시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인한 피해액만 107억9900만원에 이르며, 지진의 여파로 월성원전 1~4호기의 가동이 중지됐다.
19일 오후 8시
33분 경에는 이 지역에 규모 4.5의 지진이 다시 발행하기도 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번 경주 지진의 여진만 374회(19일 오전 9시 현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최근 7년 동안의 지진 횟수인 396회에 육박하는 것으로 우리나라가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지진에 대한 국민 불안이 점점 가중되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국민들의 불안은 단지 지진 자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지진 발생 이후 또 다시 재연된 정부의 부실 대응이야말로 국민을 불안에
떨게 만드는 본질적인 진앙지다. 정부는 최초 지진이 발생한 뒤 8분이나
늦게 '긴급재난문자'를 보냈고, 두번째 본진 때도 역시 9분이나 늦게 문자를 보냈다. 지난 7월5일 울산 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5.0의 지진 당시 18분이나 늦게 문자를 발송해 지탄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늑장 대응으로 일관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민에게 지진 상황과 대피 요령 등 지진 관련 정보를 제공해야 할 국민안전처 홈페이지는 다운이 됐고, 정부의 공식 입장은 최초 지진 발생 뒤 2시간47분이
지난 밤 10시31분이 되어서야 나왔다. 그 사이 국민들은 지진에 무방비인 상태로 '각자도생'을
해야만 했다. 이쯤되면 국가적 재난에 대한 이 정부의 부실 대응은 가히 고질병이라 부를만하다.
무엇보다 경주와 울산,
부산 인근 지역에 밀접해 있는 원전을 생각해 본다면 이번 지진에 대한 정부 대응의 심각성은 배가된다.
그동안 정부는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등의 국가비상사태 때마다 부실한 초기 대응으로
상황을 걷잡을 수 없이 악화시켜 왔던 터다. 이런 정부의 모습을 감안하면 '설마'가 '현실'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정부의 미숙하고 부실한 위기관리능력이 자칫 끔찍한 대재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 오마이뉴스
그런데 이와 같은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추석 연휴가 끝나가던 지난 18일
더불어민주당의 신경민 의원은 국민이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공개했다. 신 의원은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원전 비상시 대응 매뉴얼을 토대로 지난 15, 16일 심야부터 새벽 시간대까지 직접 원전의 안전 실태조사에
나섰다. 그 결과 원자력 안전 운행과 비상사태에 대비한 관계기관의 근무가 부실할 뿐만 아니라 대응 매뉴얼에도 심각한
결함이 발견되었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에 따르면 문제는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한국원자력의학원 24시간 상황실은
15일 밤 11시 10분 경 전화를 받지 않았고,
울진현장방재센터 역시 15일 밤 11시
22분 전화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월성현장방재센터와 영광현장방재센터는
당직자가 아닌 비번 근무자로 착신 연결이 됐으며,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야간전화는 없는 번호로 나왔다.
원전의 최대 밀집지역인 부산 기장군 재난 안전과 역시 결번이었다.
이밖에 국민안전처 사회재난대응과와 재난관리총괄과, 119구조과도 16일 오전
4시 경 전화연락이 되지 않았으며, 국가 재난시 국가안보에 앞장서야 할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 역시 16일 오전 4시28분 경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종합해 보면 적어도 추석 기간동안 원전의 이상징후에 신속한 대응과 대책을
마련해야 할 국가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천재지변과 재난은 예고없이 불시에 발생한다는 점에서 이번 불시점검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등을
겪으며 확인된 정부의 무능과 태만, 위기관리능력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재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불시점검은 관측 이래 최고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지 채 일주일도 안된 시점에서 이루어졌다. 이를 감안하면 정부의 위기관리시스템이 얼마나 부실한지는 말로 형용하기 힘든 수준이다.
경주 지진이 한반도의 지진 위험성에 대한 명징한 신호임은 불문가지다. 좁은 지역에 원전이 밀집해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원전의 안전에 만반의 태세를 갖추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되었듯이 국가비상사태시 이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은 국민 불신의 온상이 된 지 오래다. 늦장 부실 대응 뿐만 아니라 국가위기관리시템은, 이번 불시점검에서 다시 한 번 드러났듯이, 여전히 가동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런 상황에서 국가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지진과 원전의 안전에 대한 인식은 지극히 평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에게는 오로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강력하게 응징하고 이참에 북한을 괴멸시키고야 말겠다는 의지만 엿보인다. 경주 지진 직후에 열린 지난 13일 국무회의 도중 대통령은 정부의 늑장 부실 대응에 대해선 그 어떤 사과나
언급도 없이 정부와 군을 향해 "북한 정권을 끝장낸다는 각오로 응징태세를
유지하라"는 초강경 발언을 쏟아내기에 급급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규탄받아 마땅한 도발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반드시 억제시켜야
하고 단호히 대응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국가적 재난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부의
역할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대규모의 원전이 단일지역에 집약되어 있는 유일한 국가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대통령과 정부가 앞장서서 원전의 안전에 만전의 태세를 기울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대단히 위태로워 보인다. 그동안 정부가 국가적 위기와 재난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국민을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게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많은 국민들은 북한 정권 못지 않게 이 정부의 무능과 태만, 부실한 위기관리능력에 깊은 불신을 표하고 있다. 불안한 것은 단지 북한의 핵 뿐만이 아니다. 북핵보다 더 불안한 위험 요소는 어쩌면 우리
내부에 있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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