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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가폭력의 상징, 백골단을 아십니까?

80년대 가두시위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백골단'은 무시무시함의 대명사로 통했다시위대의 체포 및 해체를 목적으로 조직된 '백골단'은 진압과정의 무자비함으로 시위대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백골단'의 악명은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도드라졌는데, 건물사이에서 헬멧과 곤봉을 들고 갑자기 등장하는 그들의 모습을 마주칠 때면 저승사자를 보는 것만큼이나 섬뜩하고 무서웠다


그들은 무자비한 폭력과 구타로 시위대를 반 죽음 상태로 몰아넣었다. 그들 사전에 자비나 용서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곤봉으로 시위대를 인정사정없이 내리치는 장면이 실제로 가두시위 현장에서는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선배를 따라 몇번 나갔던 가두시위에서 '백골단'을 피해 도망치던 기억이 내게는 아직도 생생하다. 그만큼 그들은 살떨리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 민주화기념사업회


80년대와 90년대 초 국가폭력이 난무하던 권위주의 시대의 흉물이었던 '백골단'은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해체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공권력의 폭력성까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문민시대를 열었던 김영삼 정부와 민주정부였던 김대중 정부, 그리고 노무현 정부에 이르러서도 공권력은 시위 진압과정에서 과도한 폭력을 행사해 사회적 논란을 유발시키고는 했다.

그러나 야만적인 국가폭력의 상징이자, 권위주의를 앞세운 군사독재정권의 첨병 역할을 담당했던 '백골단'이 해체되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시민의 권리인 집회 결사의 자유가 확장되고, 공권력의 물리적인 시민 통제가 경감되었다는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한단계 도약했음을 알리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어제 언론은 오는 12 5일 열릴 예정인 제2차 민중총궐기대회를 앞두고 경찰이 '백골단'을 부활시키겠다는 내부방침을 정한 사실을 보도했다. 경찰은 '백골단'을 통해 불법 집회 참가자들을 현장에서 바로 체포하겠다는 복안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백골단'을 부활시키려는 것은 제2차 민중총궐기대회가 폭력집회로 변질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미 전국농민회총연맹의 집회신고에 집회금지를 통보한 바 있다. 2차 민중총궐기대회의 주체인 전농측이 평화집회를 열겠다고 밝혔음에도 이를 불허한 것이다.

경찰은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복면시위자를 색출하는 것은 물론이고, 폭력 시위자에 대한 검거조직반인 '백골단'마저 부활시킬 태세다.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이후 조성된 정부의 대대적인 공안몰이가 마침내 '백골단' 부활이라는 초강수까지 이어진 것이다.



ⓒ huffingtonpost


정부가 사라진 구시대의 유물인 '백골단'까지 부활시키겠다는 것은 이 참에 폭력불법집회의 싹을 아예 잘라놓겠다는 의도다. 집회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유발시켜 시위 자체를 무력화시키겠다는 뜻이며, 나아가 시위대에게 폭력 불법시위자라는 낙인을 찍어 정부 비판 자체를 금지시키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문제는 시위대를 향한 정부의 강력한 제제와 엄단이 그들의 의도한 바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공권력에 의한 과도한 폭력이나 인권침해는 오히려 시위대를 자극할 뿐이며, 이로 인해 경찰과 시위대 간의 물리적 충돌만 격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의 사례만 보더라도 이내 드러난다.

80년대와 90년대 초반의 시위는 지금보다 훨씬 격렬했고 치열했다. 마치 전쟁을 방불케하는 격렬함이 시위대와 경찰사이에 펼쳐지고는 했다. 시위대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백골단'도 이때 맹활약했다. 완전무장한 백골단에 맞서려면 시위대도 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화염병과 죽창, 쇠파이프 등은 당시 시위때마다 등장했고, 이에 따라 
시위도 과격해졌다. 


그러나 1998년 경찰이 '무최루탄' 원칙을 밝히며 진압과정에서 최루탄 사용을 금지하자 시위의 양상이 사뭇 달라졌다. 시위대 역시 집회 현장에서 화염병 사용을 자제한 것이다. 이에 1997 172건에 달하던 화염병 시위가 1998 2건으로 급감했다. 경찰의 최루탄 사용을 금지시켰던 이무영 서울경찰청장은 "경찰이 먼저 최루탄을 포기함으로써 시위대가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 빌미를 없앨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지금처럼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결을 내린 차벽이 등장하고캡사이신이 섞여있는 물대포가 난사되고아직 통과조차 되지 않은 복면금지법을 적용시키고마침내 국가폭력의 상징이었던 '백골단'까지 부활시킨 경찰의 시대착오적 대응으로는 절대로 집회를 막을 수도 없고시위대를 굴복시킬 수도 없다시위대를 향한 경찰의 공격적인 대응은 결국 시위대를 자극해 물리적인 충돌을 유발시킬 뿐이다.



ⓒ e-영상역사관

 

최루탄 사용을 전격적으로 금지시킴으로써 시위현장에서 화염병을 사라지게 만들었던 이무영 당시 서울경찰청장의 지침은 김대중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과 정치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다. 결국 정치세력이 어떤 철학과 가치관으로 국정을 운영하느냐에 따라 공권력 역시 두개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김대중 정부의 정치철학에 따르다 보면 이무영 서울경찰청장처럼 공권력을 행사하게 되고, 박근혜 정부의 정치철학을 따라하게 되면 김현웅 법무부장관이나 강신명 경찰청장처럼 공권력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장면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집권세력이 누구냐에 따라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가 이처럼 확연히 다르게 소급 적용되기 때문이다. 평생을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워왔던 지도자가 국정을 운영할 때, 경찰은  먼저 우월적 지위를 내려놓고 최루탄의 사용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면 민주주의와 담을 쌓은 채 권위주의 독재권력의 우산 속에서 자라온 지도자가 집권한 이후, 경찰은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을 향해 억압과 겁박은 물론 무자비한 폭력의 상징인 '백골단'마저 투입시키겠다고 한다. 같은 조직의, 달라도 너무나 다른 대응방식이다.


이 극명한 대비는 우리에게 어떤 지도자를 선택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물어 온다. 기억해야 할 것은 잘못된 선택은 순간이고 일회적이지만, 그 결과는 참담하다는 사실이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를 당하는 것이라 했다. 어쩌면 우리는 정치를 외면한 대가를 오늘날 톡톡히 되돌려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가폭력의 상징인 '백골단'까지 부활시키려는 이 정부의 막나가는 폭주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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