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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배우 박보영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

ⓒ 오마이뉴스


지난 16일은 세월호 3주기였다. 이날 안산·목포신항·서울 광화문광장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추모식이 거행됐다. 대선후보들 역시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3년 기억식'에 참석해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그런데 이날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인 홍준표 후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홍 후보는 "세월호 갖고 3년 해먹었으면 됐지, 이제 더 이상은 안 된다"면서 "세월호 사건은 정치권에서 얼마나 많이 울궈먹었냐. 세월호 참사 터졌을 때 분향소에서 한 달 이상 추모했다. 더 이상 정치인들이 거기 얼쩡거리면서 정치에 이용하는 것은 안했으면 한다"고 불참 이유를 설명했다.

추모식에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역시 참석하지 않았다. 황 대행은 '기억식'에 참석하는 대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회 국민안전의 날 국민안전다짐대회에 참석했다.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불참했다. 3년이 되도록 세월호 참사에 대한 그들의 인식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씁쓸하고 씁쓸하다. 

'기억식'에 불참한 그들의 무심함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슬픔을 마주하는 그들의 대응 방식을 말하려는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가족을 잃은 아픔은 억지로 누른다고 해서, 애쓴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잊는다는 건 끊어질 듯 울고, 가슴을 내리치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짓고, 아파하는 모진 여정이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고 세월의 상념들이 겹겹이 덧칠된 이후에야 비로소 슬픔은 기억 저편으로 떠밀려 가게 된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는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생략돼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극단적 슬픔이 치유되기 위한 전제조건인 '진실 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정부여당은 세월호 참사를 정치쟁점화시키는가 하면, 이념과 진영 문제로 본질을 왜곡시키기에 급급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매특허나 다름 없는 '갈라치기' 전략을 세월호에도 그대로 적용시켰다.

보수단체를 동원해 세월호 집회 참가자들을 종북세력으로 매도하기도 했고, 하루 아침에 가족을 잃고 망연자실해 있는 유가족들을 향해 막말과 망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와 특별법 제정을 무력화시키려 하는가 하면, 특조위 활동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기도 했다. 국가적 슬픔에 대응하는 그들의 방식이 대개 이러했다.


ⓒ 오마이뉴스


"실제 도봉순처럼 힘이 셌다면 세월호를 들어 올리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왜 세월호 이야기를 꺼려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세월호는 전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예요. 그런 것을 떠나서 꽃 같은 아이들이 당한 일이잖아요."

그러나 노랫말처럼 추억은, 혹은 기억은 저마다 다르게 적히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는 이제 그만했으면 하는 지겨운 일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애도해야 하고 기억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배우 박보영씨에게 세월호는 그랬다. 얼마 전 종영된 JTBC 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에서 열연을 펼쳤던 그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다.

정치적이기 때문에 세월호를 그만 울궈먹어야 한다는 누군가와 달리 박보영씨는 세월호 이야기는 전혀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정치적인 문제인가, 아닌가를 두고 입장이 엇갈리는 이유는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각 자체가 본질적으로 판이하게 다른 탓이다. 홍 후보와 달리 박보영씨는 이 문제를 인도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세월호가 정치 이전에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박보영씨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인터넷에서 봤는데 세월호를 잊을 수 없는 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세월호에 대해 아직 우리가 해야 할 일도 많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은 분들도 있습니다. 그 일에 당연히 우리가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정곡이다. 세월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이 박보영씨의 이 표현 속에 오롯이 담겨있다. 세월호는 좌우의 문제도, 진보·보수의 문제도 아니다. 사회공동체가 같이 슬퍼하고 아파하면서, 애도하고 치유해야 하는 사람의 문제이며 공존의 문제다. 책임과 역할을 잊지 않고, 인간의 도리를 떠올리면서 참사의 상처가 잘 아물도록 최선을 다했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국가의 책임과 역할을 환기시키고 있는 박보영씨의 지적이 뼈아픈 것은 그래서다. 인류보편적 가치와 맞닿아있는, 너무나도 당연해 보이는 그의 인식에서 역설적으로 국가의 부재가 더욱 뚜렷하게 부각되기 때문이다.

세월호를 향한 우리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우려먹을대로 우려먹은 지겨운 이야기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유가족들의 고통이 완전히 가실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적인 문제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있다. 사람 생긴 모양이 다 다르듯 생각도 이렇듯 다 제각각이다.

이 장면에서 생각해봐야 할 것은 '누가 옳은가'가 아닌 '누구와 함께 하고 싶은가'이다. 설령 과정의 오류가 있다고 할지라도, 타인의 슬픔을 공유하고 교감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사람에게는 다른 종과 구별되는 '격'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나는 그 곳에서 단 하루가 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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