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언덕의 그때 그 순간 시간입니다. 지난 12월 28일 한일 양국은 위안부 문제를 전격적으로 합의했습니다. 그런데 이 합의를 두고 나라가 큰 혼란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정부의 이번 협상은 피해당사들의 의사를 배제하고 묵살한 일방적인 합의였습니다. 양국간의 공식적인 문서조차 없는 구두합의에 불과합니다. 국회의 동의를 거치지 않은 이번 협상은 그러므로 절차적 정당성을 가지지 못한 양국 정부의 야합일 뿐입니다.
합의 내용 또한 굴욕적입니다. 미국의 눈치를 보기에 여념이 없는 정부는 일본에게 법적책임은 묻지 못한 채 오히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스스로 무덤을 파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 정부는 앞으로 위안부의 '위'자도 꺼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식민지배를 통해 국토를 수탈하고 수많은 여성의 인권을 처참하게 짓밟은 일본제국주의 침략에 면죄부를 주는 정부의 이번 합의는 원천 무효이며 강력하게 규탄받아야만 합니다. 굴욕적이고 치욕적인 위안부 문제 합의를 주도한 두 사람의 밀월관계를 재조명해 보겠습니다.
ⓒ 연합뉴스
흔히들 설날과 추석 등의 명절 앞에 '고유'라는 수식어를 붙여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는 한다. '고유'라는 낱말은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특유한 것', '변치않는 성질이나 천성' 등의 사전적 의미를 지니는 단어이다. '고유'란 낱말이 빈번히 차용되는 몇가지 경우가 있는데, 이를 테면 위에서 언급한 문화적 전통과 풍습이라든지 지정학적 영토 개념이나 역사 등이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고유의 전통과 풍습', '고유의 영토', '변치않는 고유의 역사' 등의 표현에서 나타나듯 '고유'라는 단어는 이처럼 기본적으로 가변적이지 않는 상태, 즉 불변성을 기저에 깔고 있다. 그런데 이 단어의 불변성은 이를 사용하는 주체의 의도에 따라 '선용'될 수도 '악용'될 수도 있는 상대적 개념으로 바뀌게 된다. 보통 각 나라 마다 존재하는 독특한 문화적 전통과 풍습 등을 거론할 때 불변성이 '선용'된다면, 영토 분쟁이라든가 역사 논쟁 등의 첨예한 진영논리와 결합할 때는 철저히 '악용'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오늘 포스팅할 글을 안타깝게도 '선용'이 아니라 '악용'된 불변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특유한 것을 의미하는 이 '고유성'을 둘러싸고 요즘 국내외 안밖으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고유의 영토인 독도 영유권을 둘러 싸고 일본과는 영토 분쟁 및 역사 논쟁을,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둘러 싸고는 좌·우의 이념 논쟁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내우외환'에 빠져있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는 역사 논쟁, 과연 그 실체적 진실은 무엇이며 현 박근혜 정부의 입장은 무엇인지 정리해 보겠다.
ⓒ 중앙일보
일본의 교과서 역사 왜곡과 영토 분쟁을 이끌고 있는 아베 총리는 총리 취임 이전부터 일본제국주의 침략과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온 인물이었다.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 이후 일본내 보수우익세력은 역사 교과서를 개정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이때 결성된 '새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은 2001년 후소샤 교과서를 만들게 되는데 당시 이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해 주던 자민당 내 국회의원 모임을 주도한 것이 바로 현 아베 총리였다.
더군다나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는 도조 히데키 내각의 상공대신으로 전시동원을 진두지휘했던 A급 전범이었다. 또한 작은 외할아버지인 사토 에이쿠사는 총리,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 역시 전 일본 외상을 역임했을 정도로 그는 일본 최고의 보수 정치가문 출신이다. 역사 왜곡과 독도에 대한 영토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아베 총리의 망동에는 일본 보수우익세력의 막대한 지원을 받고 있는 일본 자민당의 정치적 입장과 함께 아베 총리의 이와 같은 출신 배경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잃어버린 20년'으로 통하는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에 따른 국민적 좌절감 극복, 평화헌법의 개정을 통한 군비 확장과 강한 일본의 완성, 추락하는 일본경제의 부활을 천명한 '아베노믹스', 여기에 일본 내 보수우익세력이 오래 전부터 추진해 온 역사 왜곡에 이르기까지 지금 일본은 브레이크가 망가진 열차처럼 보수우경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중심에 바로 아베 총리가 있다.
ⓒ 한겨례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의 역사 왜곡 역시 일본과 마찬가지로 보수우익 세력이 주도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일본의 역사 왜곡이 자학사관의 극복, 군사력 강화, 일본 보수정권의 장기집권 등에 그 저의가 숨겨져 있는 것처럼 우리의 경우도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시기에 행해진 '과거사 바로 세우기'를 부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자학사관을 반대하고, 이승만 박정희 시대를 복권시키며, 식민지 근대화론의 기치아래 친일청산에 반대하고 궁극적으로 보수정권의 장기집권을 도모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두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 논쟁의 배후와 저의가 이처럼 놀랍게도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같은 목적과 동일한 배후에 의해 움직이고 있으면서도 박근혜 정부는 일본의 역사 왜곡과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에는 단호한 입장을 표명하면서 우리나라의 역사 교과서 왜곡은 주도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일본에 대한 강경대응으로 반일감정을 자극해 국민결집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국정지지율을 끌어 올리는 한편 역사교과서의 국정전환을 포함해 뉴라이트의 역사관을 주류 역사관으로 편입시키겠다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친일과 유신독재의 원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보수우익세력들과 박정희 세대의 후예들이 미래세대들에게 왜곡된 역사를 주입시키려는 의도는 결국 자신들의 역사적 도덕적 원죄에 스스로 면죄부를 주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자신들의 역사적 범죄행위를 지우기 위한 아베 정권의 역사 왜곡과 박근혜 정부에서 꽃을 피운 역사 왜곡의 본질이 정확히 맥을 같이 하고 있다.
ⓒ SBS 뉴스
역사는 가치중립의 개념이다. 고유의 개념이며, 불변성의 개념이다. 따라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가공되지 않은 채로 구체화될 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해 주는 역사의 가치가 찬연히 빛을 발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일본의 아베 내각과 박근혜 정부에서 자행되고 있는 역사 교과서 왜곡은 있는 그대로의 역사가 아닌 지배계급에 의해 가공되고 편집된 역사를 남기겠다는 뜻이며, 자신들이 내세우는 사상과 이념을 미래세대에게 이식시키겠다는 의도다. 현재의 위치에서 과거를 자의적으로 조작하고 이를 토대로 미래를 지배하려고 하는 아베 내각과 박근혜 정부는 그래서 아주 깊게 통해 있다. 이 둘은 서로 발가락이 닮아 있다.
바람언덕은 오늘 이번 협상을 주도한 양국 정상인 박근혜와 아베의 과거를 돌아보았습니다. 살펴본 것처럼 이 두 사람은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를 통해 이미 깊은 교감을 나누었습니다. 이번 합의는 그러므로 우연히 벌어진 일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예고된 수순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식민지배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용서는 이 따위 밀실 합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가서는 안되는 길을 함께 걸어가고 두 사람이 한일 양국의 거리를 더욱 더 멀어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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