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어제(7일)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에게 해외순방 성과를 보고하는 자리에서 노동개혁과 경제활성화법안의 연내
처리를 다시 한번 촉구했다. 하루 밖에 남지 않은 정기국회 내에 관련 법안들이 처리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임시국회에서라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회를 강력하게 성토해 왔던 그 동안의 기조를 그대로 유지했다. 법안처리를 국회에 압박하며 건네는 말들 속에 날카로운 가시를 숨기지 않았다. 대통령은 경제활성화법안이 통과되면 경제가 활성화되고 일자리도 많이 생겨날 것이라며 법안 통과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런데 대통령의 발언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가 관련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 연합뉴스
박 대통령은
이날 "요즘 맨날 (중국과) 기술 격차가 좁혀졌다. 경제가 어렵다 맨날 걱정만
하는데 실제 걱정을 맨날 하는 것보다 지금 이 경제활성화법들 이런걸 열심히 해서 한발씩 뛰다 보면 어느새 우리 경제가 살아나고 국민 삶도 풍족해지고
일자리도 많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간에 유행하는 '박근혜 어록기'를 돌려야 비로소
해석이 가능해지는 비문이다.
이런 비문을
다른 누구도 아닌 이 나라의 최고통수권자가 쓰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대통령의 발언은 논술시험으로 치자면 낙제에 가깝다. 초등학생에게조차 보여주기 싫은 비문 중의
비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발언이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철저히 계산된 고도의 기만술에 있다.
경제활성화법안이
통과되면 정말 죽어있는 경제가 살아나고 수십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그로 인해 국민의 삶이 풍족해질 수 있는 걸까. 적어도 대통령의 발언만 보면 그런 것 같다.
그의 말대로라면 저 법안은 신통방통한 묘약이며, 마법이다. 야당과 시민사회가 기를 쓰고 반대할 이유가 전혀없는 만병통치약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이 나라 대통령의 언어는 언제나 역설과 모순으로 가득차 있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사활을 걸고 있는 경제활성화법안의 핵심이랄 수 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서비스법)과 기업활력제고법만 보더라도 이는 명확해진다. 박 대통령은 "서비스법이 통과되면 약 70만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청년들이 (법안의 통과를) 학수고대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결론적으로 말해 근거없는 뻥튀기에 불과하다. 정부가 서비스법의 통과시 예상한 고용창출 효과는 미국이나 독일 등의 선진국을 롤모델로 산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 한국개발연구원 by 국민일보
일자리 70만개는 우리나라의 서비스산업이 미국 수준과 동등해질 때라야 가능한 수치다.
탄탄한 경제인프라와 서비스 산업을 기반으로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독일의 경우에 근접한다 해도 일자리 창출
수준은 약 15만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서비스법이
통과되면 마치 당장이라도 7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처럼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규모와 서비스 산업 인프라로는 어림도 없는 비현실적인 수치다.
박 대통령이
제시한 장미빛 전망의 허상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에서도 이내 드러난다. KDI는 서비스업이 통과되더라도 실제 고용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KDI의
'서비스업 개혁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의 주장대로 서비스업이
발전해 고용이 창출된다 하더라도 제조업 같은 비서비스업의 일자리가 줄어 서비스업으로 옮겨가는 형태가 되기 때문에 전체 고용 창출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결국 서비스업이 통과된다 해도 박 대통령의 말처럼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뜻이다.
더구나
서비스법의 진짜 심각한 문제는 바로 이 법안에 공공재의 시장편입을 가능하게 만드는 민영화의 그림자가 숨겨져 있다는 점이다. 알려진 대로 서비스법 안에는 의료•보건 분야는 물론이고 교육•복지를 비롯한 공공서비스 영역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서비스산업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의료와 보건, 교육과 복지라는 공공재가 영리화될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 아시아경제
기업활력제고법인
이른바 '원샷법' 역시 마찬가지다. 이름부터 화끈한 '원샷법'은 현재 조선과 해운, 철강 등 공급 과잉 상태에 빠져있는 업종의 구조조정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쉽게 말해 포화상태에 있는 업종을 구조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관련 규제들을 한꺼번에 없애자는 것이다.
소규모 합병 완화, 합병절차 특례, 지주회사의
종손회사 지분율 완화 등이 이 법안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 법안은 들여다 보면 볼수록 요상하다. 원래 법안의
취지는 공급과잉 산업에 대한 손쉬운 구조 조정이 목적이지만 그 내용은 대기업의 경영권 승계와 총수 일가의 지배권 강화를 위한 특혜가 곳곳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 법안은 기업이 자신보다 덩치가 작은 회사를 인수 합병할 때 주주총회 없이 이사회의 승인
만으로도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되면 일반주주들의 권리와 의사가 침해되는 것은 물론
이를 통해 재벌들의 세제해택이 가능해져 편법상속과 증여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 법안은 재벌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쉽게 만든다는 난점도 있다. 5년에 한해 한시적으로 적용될 이 법안을 기업들이 지배구조를 강화시키거나 경영권을 승계하는 데 이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룹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삼성그룹의 경우 이 법안이 통과되면 가장 큰 수혜를 입게 될 전망이다. 이 법안이 그룹 승계를 목전에 둔 삼성그룹을 위한 법안이라는 세간의 비판이 일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박 대통령은 '원샷법'과 관련해
"500대 기업에 물으니까 80%에 가까운 기업이 빨리 해달라고 한다"며 법안 통과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법안 자체가 기업 일가에 유리하도록 설계된
마당에 그들이 이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대기업을 제외하자는 야당의 제안에 "대기업을 빼면 이 법의 존재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정부와 새누리당의 태도 속에 이
법안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그 어디에도 대기업의 구조조정 여파 속에 피해를 보게 될 노동자들을
위한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 국민TV
박 대통령이
노동개혁과 경제활성화 법안의 조속한 국회통과를 촉구하면서 빼놓지 않고 언급하는 것이 있다. '경제'와 '민생'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미 통과됐거나 국회 인준을 기다리고 있는 법안들인 관광진흥법,
의료법, 서비스법, 조세특례제한법,
소득세법, 신용정보법, 국가재정법,
기초생활보장법, 클라우드컴퓨팅법 등으로 인해 경제가 살아나고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서민들의 삶이 풍족해질 수 있을 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위의 법안들은 모두 민생과는
별 상관이 없는 재벌과 부자들을 위한 법안이기 때문이다.
낙수효과를
강조하며 대기업 프랜들리 정책으로 일관했던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의 수혜가 일반 서민이 아닌 대기업과 재벌에게만 돌아갔던 것처럼 박근혜 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는 노동개혁과 경제활성화 법안 역시 초점은 어디까지나 서민이 아닌 대기업과 특정 계층에게 맞추어져 있을 뿐이다. 실상이 이런대도 노동개혁과 경제활성화 법안이 마치 경제를 살리고, 서민을
살리는 특효약이나 마법이라도 되는 것처럼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주장하고 있는 것은 거짓이자 기만에 불과하다.
ⓒ 오마이뉴스
요즘 대한민국은
복면이 대세다. 박 대통령이 복면을 쓴 시위대를
IS에 비유한 지 하루 만에 새누리당은 거짓말처럼 '복면금지법'을 발의했다. 복면으로 가장한 시위대를 엄벌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복면으로 위장한 채 자신을 숨기고 있는 것이 어디 시위대 뿐이던가. 박 대통령과 정부여당이야말로
복면의 대가들이요, 위장의 달인들이다.
그들은 '경제'와 '민생'을 전면에 내세워 쉬운 해고를 가능하게 만들었고, 시간제
일자리와 비정규직을 대량 양산했으며, 임금피크제를 통해 기존 근로자의 임금까지 삭감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서비스법을 통해 의료와 보건, 교육과 복지 등의 공공부문을 영리화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원샷법'으로는 경영권을 강화하고 기업 승계를 용이하게
만드는 등 기업의 지배구조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 주려 하고 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서민은 없고, 오로지 대기업과 재벌,
부자와 기득권만 있다. 그런데 그들은 언제나 입으로는 서민과 민생을 말한다.
참을 수 없는 뻔뻔함이다. 이 모든 것이 박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경제'와 '민생'이라 적혀 있는, 위선의 복면을 쓰고 있는 탓이다. 위선과 거짓의 복면을 쓰게 되면 염치도 없어지고 뻔뻔해지기 마련이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위선과 뻔뻔함이 금도를 넘었다. 그들에게 '복면금지법'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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