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은 기초노인연금, 4대 중증질환 100% 국가보장, 무상보육, 반값등록금 등의 각종 복지공약들을 제시하며 유권자의 표심을 흔들었다. 특히 박근혜 후보는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증세없는 복지가 가능하겠느냐는 문재인 후보의 질문에 호기롭게 "가능하다"라고 대답했다. 대다수의 경제전문가들이 증세없는 복지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절로 흔들때 당당히 "아니요"를 외친 박근혜 후보의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다"며 국민과의 신뢰를 유독 강조해온 여당의 대통령 후보는 이처럼 매력적인 공약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대선공약을 둘러싼 국민들의 달콤한 기대와 상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지 불과 하루 만에 대다수의 보수신문들은 잔치가 끝났으니 이제 현실을 돌아봐야 할 때라며 대선공약의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하다는 논지의 사설을 내보냈다. 새누리당도 감추고 있던 본색을 드러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출범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인 2013년 1월 중순 새누리당의 심재철 최고의원은 "예산이 없는데 공약대로 하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공약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뜻을 피력했다.
기초노인연금 축소 논란이 거세지자 새누리당의 정책을 이끌고 있는 나성린 정책위부의장은 그보다 한술 더 떴다. 그는 "대선때 기초노인연금을 65세 이상 노인 전부에게 지급한다고 한 적이 없다"며 오리발까지 내밀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온국민에게 철썩같이 약속했던 사안을 없었던 일로 돌리자는 사람과 아예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발뺌하는 사람이 집권여당의 최고위원이고 정책을 만드는 정책위부의장이라면 시쳇말로 볼장 다 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놀랍게도 저 당에는 저들과 같은 생각으로 정치를 하는 자들이 수두룩하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책임윤리와 책임정치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 중의 하나다.
지금 정국은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을 둘러싼 여야간, 지방자치단체장과 시•도교육감간의 갈등으로 큰 논란이 일고 있다. 홍준표 경남지사의 무상급식예산지원 중단선언으로 촉발된 무상급식 논쟁이 경기도 등 다른 지자체로 번져가는 형국이고, 누리교육과정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시•도교육청의 갈등도 일파만파로 커져만 가고 있다. 2010년 지방선거의 핵심이슈였던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를 둘러싼 정치권의 이데올로기 싸움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어제(6일) 무상급식 정책의 전면적인 재검토를 촉구하고 나섰다. 김무성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에서 "무상급식에 중점을 둔 예산을 편성했지만 오히려 급식의 질은 떨어지고 학생들 안전을 위한 시설보수와 교육기자재 비용은 부족해 교육의 질이 하락했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라며 "정책의 우선순위는 무엇보다 소유자인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고 효율성을 고려해야 하고 교육예산도 교육의 본래 기능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무성 대표의 주장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정이 악화된 상황이니만큼 무상급식 예산의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맞는 말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곳간은 텅텅 비어있고 따라서 예산의 전면적인 재검토가 절실한 시점이다. 그런데 그 순서가 틀렸다. 예산의 전면적인 재검토 이전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정을 파탄에 이르게 만든 원인을 살펴보는 것이 먼저다. 예산이 올바르게 사용되고 있는지 불필요하게 세는 예산은 없는지 재검토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이 고갈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그 이유는 누구보다 집권당인 새누리당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7년 동안 국정을 운영한 장본인들이기 때문이다. 그 7년 동안 정말 어마어마한 혈세가 강바닥으로 허공으로, 누군가의 주머니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언론은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 방산비리 등으로 유실된 국세만 약 100조 원 가량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는 단돈 1만원짜리 USB를 무려 95만원에 구입하는 경우가 있었는가 하면, 가치가 1달러에 불과한 정유공장을 자그만치 1조 원에 사들이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정도면 낭비 수준이 아니라 다분히 의도적인 혈세유출이다. 이같은 엄청난 비리들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그리고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국정을 운영할 때 속출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정악화의 일차적 책임이 바로 이명박정부와 박근혜 정부, 새누리당에게 있는 것이다.
본인들이 방만하고 무책임하게 국정을 운영해서 악화된 재정상황을 마치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의 문제때문인양 몰고가는 것은 무책임할 뿐더러 치졸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은 새누리당이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재선거에서 패배하자 위기감 속에 야당의 복지공약을 고스란히 차용한 것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야당보다 더 야당다운, 증세없는 복지론까지 주장하며 유권자를 현혹시킨 것도 다름아닌 새누리당이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공약파기에 대한 사과 한번 없이, 무분별한 혈세낭비에 대한 어떠한 반성도 없이 무상급식과 무상교육 이슈를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정치쟁점화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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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대표가 주장한 예산의 재검토 문제도 따져 보겠다. 지금 국회는 내년도 예산안 편성을 위해 전쟁을 방불케하는 치열한 로비전이 펼쳐지고 있다. 매해 이맘 때면 볼 수 있는 국회의 진풍경이다. 그런데 올해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 중에는 최근 여론의 비난이 빗발치고 있는 자원외교 관련 예산도 수천억 원이 배정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 완전히 헛물켠 빈깡통으로 판명난 해외자원 개발사업에 여전히 5200억 원이 편성된 것이다. 이 중에는 1달러짜리 정유공장에 1조원을 투자한 캐나다 하베스트에 대한 예산도 포함되어 있다.
이 정도면 제 정신이 아니다. 예산의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면 바로 이런 부분이 되어야 한다.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예산은 없는지, 중복되는 예산은 없는지, 지방재정을 축내는 선심성 예산과 이권이 개입된 예산은 없는지 등을 꼼꼼하게 따지는 것이 예산을 재검토하는 본질적 의미다. 김무성 대표와 새누리당이 본인들의 주장대로 철저하게 직무를 수행해 왔더라면 어마어마한 세금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정상황이 이처럼 파탄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우리 아이들의 먹는 문제와 교육문제가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 위협받는 일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증세는 절대로 없다"고 공언했던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이제는 당당히 증세의 당위를 역설하며 담뱃세와 자동차세, 주민세 등을 올리겠다고 말한다. 증세는 없다더니 결국 서민증세를 통해 부족한 세수, 그것도 자신들의 실정으로 양산된 재정난을 만회하겠다는 심산이다. 선거철만 되면 마치 간과 쓸개라도 내어줄 것처럼 국민들을 미혹시키더니 이제는 국민들을 향해 간과 쓸개를 내놓으라 하고 있다. 이 기막힌 페이스오프야말로 대한민국 정치의 비극이자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논란은 새누리당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부족한 예산에서 촉발된 것은 맞다. 그러나 그 본질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방만한 국정운영과 혈세낭비에 있는 것이지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는 약속의 문제이며 신뢰의 문제이기도 하다. 무상급식과 무상교육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지난 대선공약이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수없이 파기된 대선공약들에 이어 아이들의 급식과 보육공약마저 관련 사실을 호도해 가며 깨뜨리려 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졸지에 '글로벌 호구'로 전락시킨 자들이 국민들을 '호갱님'으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앞으로 2년 동안 선거가 없다는 사실이 저들의 뻔뻔한과 오만함의 근거다. 따라서 우리는 저들의 무도함을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만 한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지키지도 못할 약속들을 습관적으로 토해내는 거짓말쟁이들을 반드시 걸러내야 한다. 당리당략을 위해 국민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후안무치한 자들이 다시는 정치판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이고 애족이며 애향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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