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써야만 하고 해야만 하는 이야기, 그러나 좀처럼 마음 속에서 끄집어 내지 못하는 그런 이야기가 하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말하고 전하며 공감하고 있을 때에도 꺼냈다가 슬그머니 집어넣고, 썼다가 다시 지우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던 그런 이야기가 있다. 오래된 앙금처럼 가슴 깊은 곳에 잔잔히 침잠해 있다가도 불현듯 용솟음치며 주체할 수 없는 회한과 상념에 휩싸이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가 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머뭇거리며 주저했던 미루고 미루어 둔 이야기, 그러나 반드시 말해야 하는 이야기, 필자는 드디어 오늘 그를 만나러 간다.
영화 '변호인'의 흥행세가 꺾일 줄을 모른다. 개봉 전부터 세간의 이목이 집중시키며 수많은 화제 거리와 논란거리를 만들어 낸 이 영화가 개봉 19일 만인 지난 7일 800만 관객을 돌파하고, 천만 관객을 향해 쾌속질주하고 있다. 1981년 부산에서 발생한 용공조작사건인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국가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 노출된 무력한 개인(시민)과 그를 변호하며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국가시스템의 한계와 위악에 눈을 떠가는 한 인물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는 성장 드라마라고도 볼 수 있다. 고졸출신으로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지긋지긋한 가난의 영향때문인지 돈 버는 재미에 푹 빠져있던 조세전문변호사가 우연히 맡게 된 용공조작사건을 계기로 국가권력의 폭력과 부정에 저항하며 국가의 존재의미와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해 성찰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 영화의 주인공인 '송우석'이 상징하는 인물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불꽃처럼 뜨겁게 살다가 어느날 바람처럼 떠나간 그,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그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정치인이 또 있을까?
상고출신으로 사법고시를 패스한 후 잘 나가는 조세변호사의 길을 걷다 '부림사건'을 계기로 그는 인권 변호사로 돌아선다. 김영삼의 권유로 국회에 입성한 후 5공 청문회에서 거침없는 패기와 열정을 보여주며 국민들의 뇌리에 '노무현'이라는 이름 석자를 강하게 각인시킨 그는 이후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망국적인 지역주의 청산을 위해 지역구를 포기하고 세 차례에 걸쳐 부산을 선택하는 모험을 강행한다. 그러나 모두 낙마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고, 사람들은 이런 그를 '바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국회에 다시 입성했고, 2002년 대선에서 국민경선을 통해 공고했던 '이인제 대세론'을 무너뜨리는 이변을 일으키며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민주당 내의 '노무현 흔들기'와 대선 막판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파기 등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기적처럼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재임기간 중에는 신자유주의 정책 추진, 이라크 파병, 한미 FTA 추진,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등의 문제들로 진보진영으로부터는 이단아 취급을, 처음부터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보수진영으로부터는 온갖 조롱과 멸시를 당해야만 했다. 급기야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 지지발언을 문제삼은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공조 속에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재임기간 중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모든 정치 사회적 문제들의 시작과 끝이 바로 그였다. 이같은 정치적 책임론의 습관적 관행은 퇴임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의 서거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여전히 진보와 보수진영 모두에게 유용한 효용가치를 지니며 정략적으로 끊임없이 변형되고 악용되고 있다.
대한민국 영화사의 역사를 다시 써내려가고 있는 '변호인' 열풍의 진원지는 다름아닌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 할 이는 많지 않을 것 같다. 멈추지 않는 '변호인' 열풍을 단지 영화의 미적 완성도와 주·조연 배우들의 호연, 시대적 상황에 대한 감정이입 등으로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변호인'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이 영화를 통해 인간 '노무현'을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 이 지점이 필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 영화는 1981년 '부림사건'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리가 영화를 통해 만나게 되는 인물은 '대통령' 노무현이 아닌 '인권변호사' 노무현이다. 바로 여기에 영화와 현실 사이의 모호한 경계가 형성된다. 사람들이 '인권변호사' 노무현을 '대통령' 노무현과 동일시하는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필자의 기억이 맞다면 '대통령' 노무현은 공공의 적이었고,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존재였다.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었고, 증오의 대상이었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대통령' 노무현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사람들에 의해 무장해제된 벌거숭이에 불과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시 그를 만나기 위해 극장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이번에는 조롱과 멸시, 증오 때문이 아니라 그의 부재가 못내 아쉽고 그래서 그립기 때문이라 한다. 씁쓸하기 그지 없다.
'인권변호사' 시절의 노무현과 '대통령' 시절의 노무현 사이에는 20여 년의 시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간극으로 인해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부터 서거할 때까지 누구로부터도 변호받지 못했다. 정의와 공의가 사라지고 국가권력의 일방적 독주 속에 국민의 기본권이 언제든 침탈당할 수 있는 시대에,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국가권력의 집중과 폭주를 경계하며 시민 권리와 권익을 위해 일관되게 노력해 왔던 그였다. '인권변호사' 시절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철학, 세상과 사람에 대한 열정과 희망, 원칙과 소신이 '대통령' 시절에는 달라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인권변호사' 시절의 노무현과 '대통령' 시절의 노무현 사이의 간극은 세상에 의해, 사람들에 의해, 영화 '변호인'을 보고 이 글을 읽고 있을 바로 당신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는 우리시대에 만연해 있던 지역주의, 권위주의, 권력지상주의 등에 정면으로 도전했고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와 정책적 오류를 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 시대와 인간에 대한 평가는 보다 냉정하고 객관적이며 이성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는 유독 노무현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질 않았다. 맹목적으로 그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사람들 틈에 섞여 이에 동조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른 뒤 영화를 통해 그와 조우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과 애틋한 시선을 그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 단지 그는 영화 '변호인'을 보고 극장 문을 나서는 사람들의 등 뒤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을 뿐이다. '당신의 변호인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누구를 변호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앞으로 당신은 어떻게 살아갈 것입니까?'라고.
당신이 '노무현'을 좋아했든 그렇지 않았든 상관없이 영화 '변호인'이 담아내고 있는 시대의 비극과 아픔에 눈물을 흘리고 마음이 움직였다면 이것 하나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 뜨거움으로 2014년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이 시대와 당신의 이웃과 그리고 당신 자신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바로 이같은 당신의 행위가 변호인이기를 자처했던 그에게 뒤늦게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화답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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