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미국 뉴저지의 에지워터 멀티플렉스 극장에서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위안부 영화인 '귀향'(감독 조정래)의 특별 시사회가 열려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이날 시사회가 이곳에서 열린 데에는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뉴저지의 팰리세이즈파크 시는 세계 최초로 위안부 기림비가 건립된 도시이기 때문이다. 팰리세이즈파크 시는 지난 2010년 야만적 인권유린 사건이었던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고 세계에 알리기 위해 세계 최초로 기림비를 세웠고, 이 곳을 인권교육의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이날 시사회는 팰리세이즈파크 제임스 로툰 시장과 고든 존슨 뉴저지 하원의원, 교민들 및 많은 현지인들이 참여했다. 그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유린당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참혹한 실상에 전율하며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그들은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야만적 폭력과 인권 유린의 장면 장면들이 쉽게 가시지 않은 탓일 것이다. 시사회에 참석한 뉴욕인들은 충격과 분노,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연민과 슬픔으로 인해 눈시울이 뜨거워져야만 했다.
ⓒ 한국투데이
영화 '귀향'은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은 영화다. 조정래 감독은 16세에 중국 지린으로 끌려간 강일출 할머니가 그린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을 바탕으로 영화 제작에 나섰다. 이 그림은 강 할머니가 일본군이 병에 걸린 자신과 다른 위안부들을 불에 태워 죽이려던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지난 2002년에 기획된 이 영화는 그러나 투자자를 찾지 못해 제작에 난항을 겪어여만 했다. 그러던 중 2014년 말 이 소식을 접한 시민 4만 여명이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했고, 이를 통해 모은 6억원으로 영화 제작이 시작됐다.
그러나 어렵게 시작한 영화 촬영은 이후에도 갖은 난관에 봉착해야 했다. 정치적 문제에 부담을 느낀 배우들의 출연 고사가 이어졌고, 부족한 제작비로 인해 촬영이 수시로 중단되기도 했다. 그러자 이번에도 각계각층에서 도움의 손길이 나타났다. 영화에 참여한 모든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출연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고, 후원의 손길 또한 줄을 이었다. 그러나 시련은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투자 배급사가 나타나지 않았다. 첨예한 정치 외교 문제를 다루고 있는 영화에 투자 배급사들은 모두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시민들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그들은 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모금 활동을 펴는 한편, 영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 모으기 위해서도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총 제작비의 50%에 해당하는 12억 여원이 후원됐고, 와우픽쳐스가 투자배급에 참여함으로써 이번 달 24일 개봉을 눈앞에 두게 됐다. 조정래 감독이 강일출 할머니의 '태워지는 처녀들'로부터 영감을 얻어 영화 제작에 들어간지 무려 14년 만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 연합뉴스
조정래 감독은 감격적인 영화 개봉을 앞두고 "14년 동안 영화를 준비하면서 수많은 거절과 역경이 있었지만 타향에서 돌아가신 20만명의 피해자들을 비록 영령으로나마 고향으로 모셔온다는 일념으로 영화를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7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영화제작에 힘을 보태주셨다"며 시민들에게 모든 공을 돌렸다.
조정래 감독의 표현대로 영화 '귀향'은 시민들은 물론이고 각계각층의 참여와 관심이 없었다면 완성될 수 없었던 영화다. 갖은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영화 제작에 매달렸던 조정래 감독, 적극적으로 후원에 나섰던 시민들, 기꺼이 출연료를 포기한 배우와 스태프들, 그리고 눈에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손길들이 마침내 영화 '귀향'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날 시사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일본제국주의가 자행한 끔찍한 만행에 분노와 충격에 휩싸였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처참한 참상 앞에서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영화 '귀향'이 이처럼 현지인들의 뜨거운 반향을 불러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를 다음의 세가지로 말하고 싶다.
첫째는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과 끔찍한 실상이 있는 그대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이와 같은 반인륜적이고 반사회적인 범죄행위가 다시는 인류사에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위안부 희생자들의 통한을 풀어주려는 의도에서 제작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귀향'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바로 여기에 있다.
ⓒ 프레시안
영화 '귀향'에 뜨겁게 반응하고 있는 뉴욕인들의 모습은 일본 정부와 위안부 문제를 타결한 박근혜 정부의 모습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정부는 피해 당사자들의 입장은 완전 배제시킨 채 일본 정부와 일방적인 합의를 해버렸고, 이후 거듭되는 논란 속에서 일본 정부를 대변하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둘 사이의 극명한 대비가 의미하는 것은 결국 하나다. 대한민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의 행태만 보고 있자면 저들이 대한민국의 정부인지 아니면 일본의 정부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최근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가 공개적으로 위안부 문제의 강제성을 부인하고 있음에도, 정부가 미온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에서 이같은 의구심은 더욱 증폭된다.
박근혜 정부는 영화 '귀향'이 어떻게 뉴욕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각계각층에서 위안부 문제 재협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이유를 분명하게 성찰해야만 한다. 만약 정부가 계속해서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계속해서 일본 정부에 끌려만 다닌다면 시민들의 분노와 저항은 점점 커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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