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맞은 놈은 다리를 뻗고 자도, 때린 놈은 다리를 못 뻗고 잔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피해를 당한 사람은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반면, 남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은 불안감에 휩싸여 좌불안석하게 되는 상황을 비유한 경구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 상황도 그에 따라 변하게 되고 사람의 인식 또한 달라지게 마련이다.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되어 왔던 저 경구가 2014년 대한민국 현실에 부합한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작금의 시대는 때린 놈이 오히려 기세등등하게 활개치는 뻔뻔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할지라도 여전히 효용가치를 지니는 빛나는 경구가 있는가 하면, 그와 반대로 아쉽지만 용도폐기되어야 할 경구도 있다. 시대의 풍조가 만들어낸 안타까운 현실이다.
요즘은 자고 일어나면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얼굴을 찌푸리게 만드는 사건과 사고, 논란들의 연속이다. 공무원들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공무원 연금 개혁안 저지에 사활을 건다. 그런가 하면 임금 노동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비정규직은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 삶의 극한으로 내몰리고 있다. 증세는 절대로 없다던 정부가 담뱃세와 주민세, 자동차세, 수도세 인상 등 서민증세를 통해 부족한 세수를 마련하겠다 한다. 이른 봄 대한민국을 충격과 비통 속에 빠지게 만들었던 세월호 참사는 늦가을이 다되도록 진상규명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자나 깨나 안전을 외치온 사회를 비웃기라도 하듯 판교에서는 환풍구가 붕괴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또 다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단통법 논란, 전작권 연기 논란, 대북전단 살포 논란 등 크고 작은 사회적 현안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 나간다. 논란과 갈등으로 정신없는 대한민국,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대다수 서민들은 고달프고 힘들다. 그러나 어디나 예외는 있는 법이다.
지난 28일 국정감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최민희 의원은 국민들 입장에서 보자면 아주 분통터지는 자료를 공개했다. 최민희 의원이 청와대로부터 넘겨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명박 전 대통령 부부는 퇴임 후 1년 7개월 동안 국내행사로 1,924회, 해외행사로 10차례 등 총 1,934회의 경호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놀랍게도 이명박 전 대통령 내외는 현 박근혜 대통령보다 무려 6배나 많은 경호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현직 대통령보다 6배나 많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경호는 아무리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의거했다 하더라도 도가 지나친 기현상이다. 세종이 임금이던 시절 상왕이었던 이방원이 부럽지 않는 엄청난 호사와 권세를 누리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사람들은 주저없이 '황제'란 칭호를 부여했다.
본래 제국의 절대군주를 호칭하는 '황제'는 위대하고 큰 사람이나 한 분야에서 넘볼 수없는 업적을 이룬 대상에게 바치는 존경과 경외의 헌사다. 테니스의 황제 페더러, 골프의 황제 타이거 우즈, F1의 황제 슈마허 등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대상에게 아낌없는 찬사와 함께 '황제'란 칭호를 부여했다. 그들은 '황제'로 불리게 된 이유는 뭐가 달라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국민들로부터 '황제'라 불리는 이명박 전 대통령도 '황제'답게 뭐가 달라도 많이 달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황제 경호'뿐만이 아니라 '황제 테니스'도 즐겨왔다. 그것도 황제답게 제값이 아닌 반값에 말이다. 지난 2013년 2월 중순 경 북핵 위기로 시국이 한창 혼란스러운 와중에 그는 일반인들의 예약자체를 원천봉쇄하며 테니스장을 예약하고 즐겨온 사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얼마 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테니스 요금마저 반값밖에 지불하지 않았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황제는 역시 뭘 해도 다르긴 달랐다. 북핵 위기로 국내정세가 불안정하고 국민불안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편법까지 동원해가며 무심하게 여가생활을, 그것도 반값에 즐길 수 있는 국가원로는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급이 다른 면모는 각종 부정비리 의혹에 줄기차게 이름이 거론되면서도 능글맞게도 '황제'의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의연함과 태연함에서 더욱 눈부시게 빛난다.
JTBC 뉴스룸은 요즘 4대강 비리에 대한 심층취재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정권의 명운을 걸고 야심차게 추진한 4대강 사업은 수많은 부정•비리가 속출하고 있는 국가적 골치덩이로 전락한지 오래다. 4대강 사업비리는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업을 강행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하는 망국사업으로, 토건사업자들과 이명박 정권과의 유착관계를 밝혀내는 것이 그 핵심이다. 그러나 그는 천연덕스럽게도 4대강 예찬을 멈추려하지 않는다. 참을 수 없는 뻔뻔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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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 시절의 부정•비리와 의혹들은 4대강 사업비리로 끝나지 않는다. 국정원이 불법개입한 이른바 국정원 사건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몰랐을 리 없는 전대미문의 사이버 선거부정사건이었고, 원전비리에 이어 최근에는 자원비리마저 터졌다. 측근비리를 꼽으려면 손가락으로도 모자라고, 내곡동 사저 의혹, CJ 비자금 의혹 등 각종 의혹들은 고구마 줄기처럼 엮여 나온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황제'로서 각종 특혜와 특권을 마음껏 누리고 있고, 국민혈세를 물쓰듯 쓰고 있다. 정상적인 국가에서였다면 법정을 들락거려야 하는 그가 들락거리는 곳이 국내외 행사장이라는 사실은 이 나라에서는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나라는 수백명의 자국 국민을 살상한 학살자에게도 똑같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전관 예우를 해주고 있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들은 확실히 자연스럽지 못하다. 부정•비리는 반드시 제대로 된 수사를 통해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것은 초등학생들조차 아는 사회의 도덕률 아닌가. 이런 모습들이 보편적 상식을 가진 대다수 국민들이 생각하는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런데 실상은 완전히 거꾸로다. 부정•비리를 저지른 자들은 무탈하고 부정•비리를 감시하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탈이 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고록 하느님이 보우해온 내 나라가 고작 이 정도 수준밖에 안된다는 사실에 분노를 넘어 절망한다. 이런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환경에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섬뜩하고 끔찍하기가 이를 데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 내외에 대한 '황제경호' 논란은 우리 사회의 무도함이 빚어낸 비극이자, 전시행정가의 천박함이 만들어낸 추태다. 현실은 비정하고 냉정하다. 지금은 때린 놈이 다리를 못 뻗고 잘만큼 순박한 세상이 아니다. 다리를 쭉 펴고 잠만 늘어지게 잘뿐만 아니라 또 때릴 궁리마저 하는 무도한 세상이다. 무도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둘 중 하나다. 무도함을 닮아 스스로 무도해지거나, 그 무도함에 맞서 당당히 싸우거나. 어떤 길을 택하든지 그것은 온전히 당신의 몫이다. 그러나 이것 한가지만 기억하자. 무도한 세상에서는 불의에 맞서 분노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이 의인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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