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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라 쓰고 절망이라 읽는 그들, 비정규직!

박근혜 대통령(이하 박 대통령)은 25일 대통령 취임식 이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희망 복주머니'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 마련된 '희망의 나무'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미리 접수한 국민의 희망 메시지가 담긴 365개의 복주머니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 중 3개를 골랐고, 그 두번째 복주머니에는 서울에 산다는 집배원 박형동씨의 '우정사업본부는 비정규직이 가장 많이 근무하는 정부기관입니다. 비정규 상시 계약 집배원들이 똑같은 일을 하면서 차별대우를 받는 일이 없도록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시길 부탁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희망메시지 행사에 참석한 박 대통령, 출처 : 뉴스 1>


박 대통령은 "비정규직 문제에 제가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임기 내에 이 문제가 반드시 해결될 수 있도록 최대한 관심을 갖고 힘쓰겠다"고 밝히며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대책마련에 나서겠다는 뜻을 내보였습니다. 


"비정규직 차별철폐 문제는 100% 공감하는 일이다. 비정규직이라서 억울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박근혜 후보, 작년 10월 22일 한국노총 방문 자리에서)


지난 대선기간동안에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의지를 밝힌 바 있던 박 대통령이 이날 행사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담겨져 있는 '희망 복주머니'를 선택한 것이 우연인지 아닌지는 확실히 모르겠습니다만 공교롭게도 지금 사회적으로 뜨거운 이유로 떠오르고 있는 '학교 비정규직 6475명의 해고'와 맞물려 박근혜 정부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과 실제적인 방안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주목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정규직 공약


먼저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과정에서 내세운 비정규직 공약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박근혜 당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대선공약 비교, 출처 : 경향신문>


경실련은 당시 박근혜 후보의 비정규직 해소 공약에 대해서 '공약의 목표와 방향에 부합하는 구체적 실행계획이 부족하다'라는 평가를 내렸습니다.(경실련 홈페이지 가기)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벌어진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공약집에 담겨져 있기는 하나, 정책 목표도 모호하고 개별 정책 실행 방안도 막연하게 표현되는 등 전체적으로 부실하다고 지적을 받은 것입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서도 공약에는 '비정규직 비율을 OECD 평균인 25% 수준까지 낮추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된 것이 없습니다. 또한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해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직 종사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겠다고 했지만 이 역시 구체적 방법이나 내용이 빠져 있는 상태입니다. 


비정규직 문제에 직접 노출되어 있는 노동계 역시 이명박 정부도 추진했던 공공부문 상시.지속업무 비정규직을 전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약속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실행여부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내하도급 보호법이 사내하도급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인권위원회가 그 위험성을 경고한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특수고용직의 경우 그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250만명에 이르는 특수고용직 종사자를 둔 노동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처럼 노동계와 경제전문가들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실현 방안이 막연하고 적극적인 정부의 개입보다는 기업의 변화를 유도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는 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비정규직 공약실현의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학교 비정규직 6475명 해고, 일선에선 칼바람이 분다


"노공계의 큰 현안 중 하나가 비정규직 문제로 당은 이 문제를 반드시 실천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 2015년까지 공공부문에서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일에 대해서는  (비정규직을) 전부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확고한 실천 의지를 갖고 있다" (2012년 3월 25일 울산방문 현장에서)


지난해 총선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노동자들의 지지를 호소하면서 새누리당과 자신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확고한 의지가 있음을 거듭 밝힌 바 있습니다. 총선과 대선, 그리고 취임식에서까지 연이어 강조했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박 대통령의 관심과 의지는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일선에서는 박 대통령의 말과는 정반대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6일 국회 정론관에서 민주통합당 노동대책위원회 유기홍 의원과 전국학교비정규직 노조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달 25일부터 약 한 달간 전국 초중고 1만1천여개 학교를 대상으로 학교비정규직 계약해지 실태조사의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조사결과를 보면 전체 계약해지자 6475명 중 기간제 근로자가 5537명(82.7%)이고, 무기계약자도 1118명(17.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4635명(72%)이 본인의 희망과는 무관하게 해고를 당했습니다. 해고된 679명(61%)의 무기계약자 역시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계약이 해지되었습니다. 


해고당한 기간제 근로자 중 박 대통령이 총선 유세에서 언급했던 상시.지속적 업무자가 무려 5128명(92.6%)에 달하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입니다. 박 대통령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지가 저렇게도 확고한대도 불구하고 일선 현장에서는 이와는 정반대로 해고의 칼바람이 불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요?

 시험대에 놓인 박 대통령의 비정규직 해법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를 토대로 정부가 발표한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2012년 8월 기준으로 대한민국 전체 노동자의 33.3%인 약 591만명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노동계의 기준은 다릅니다. 정부가 포함시키지 않은 임시직과 일용직 노동자들 중 계약기간이 1년 미만인 노동자들까지 포함시킨다면 비정규직의 규모는 전체 임금노동자의 47.8%에 해당하는 848만명에 이릅니다. 대한민국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인 것입니다. 

필자는 일전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현장에서 어떤 처우를 받고 있는지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똑같이 일하고도 임금은 정규직의 반토막에 불과하고, 복지혜택도 형편없으며, 언제든 해고당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비정규직. 대한민국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 해당하는 비정규직이 고용에 대한 불안과 저임금, 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있고, 이로 인해 그들의 삶은 극한으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더군다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도 선언적 수준으로 머물러 있고,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빠져있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사회보험료를 100% 지원하겠다던 공약이 50%지원으로 반토막 난 것에서 보듯 그나마 있던 공약도 수정 혹은 후퇴하고 있습니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노동현장에서는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주장했던 것과는 달리 비정규직을 향한 한풍이 거세게 불어닥치고 있습니다. 이런식이라면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비정규직 문제해결에 대한 의지 자체를 의심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종탑에 오른 재능교육 노조원들은 외친다. '이젠 끝내고 싶다"고, 연합뉴스>


학교 비정규직 노조는 매해 되풀이되고 있는 비정규직 '해고 대란'에 대한 정부의 실질적인 대책이 상반기 안에 나오지 않을 경우 6월에 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할 것임을 선언했습니다. 이는 경우에 따라서 학교 비정규직 노조 뿐만 아니라 전체 비정규직 노조들의 연대파업 및 총파업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박 대통령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벼랑 끝 현실을 직시하셔야 합니다. 이는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인 대한민국의 노동현실은 대한민국의 경제상황에 시한폭탄과 다름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한폭탄은 언젠가 터지게 되어있기 때문에 시한폭탄인 것입니다. 터지기 전에 올바른 방법으로 폭탄을 해체해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박 대통령에게 묻고 싶습니다. 

무려 1895일동안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재능교육 비정규직 노조원들의 저 간절한 외침을 들어보셨습니까? 박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식에서 무려 57번에 걸쳐서 국민을 언급하신 것으로 압니다. "국가가 아무리 발전해도 국민의 삶이 불안하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까지 말했습니다. 박 대통령에게 이 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몇번 째에 해당하는 국민입니까? 그들의 삶이 불안을 너머 극한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에 과연 저들의 자리가 있긴 있는 겁니까? 

이제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때입니다. 시한폭탄의 시계는 오늘도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