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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총장 사퇴 이끌어낸 이대인들의 끈기

ⓒ 오마이뉴스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꼽히는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특혜 의혹에 휩싸인 이화여대 최경희 총장이 19일 결국 사퇴했다. 정씨에 대한 특혜 의혹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상황에서 교수들과 학생들이 진상규명과 총장 사퇴를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이어가자 더는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최 총장은 이미 평생교육단과대학 설립 추진 과정에서 학생들의 본관 점거와 경찰 난입 사태 등으로 이대인들의 신뢰를 잃고 있던 터였다.


이를 의식한 듯 최 총장은 사퇴문을 통해 "평생교육단과대학 설립 추진으로 야기된 본관 점거 시위에, 최근 의혹들까지 개입되면서 어지러운 사태로 번져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를 했다. 그러나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정씨에 대한 특혜 의혹에 대해서는 "여러 의혹들에 대해 최대한 사실에 입각해 해명한 바 있다" "(특혜는) 없었고, 있을 수도 없음을 분명하게 말씀드린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최 총장의 말과는 달리 이화여대는 정씨에게 입학 과정에서부터 학사관리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방위적인 특혜를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가 입학하던 해에 체육특기생 종목에 승마를 포함시켰고, 이마저도 '원서접수 마감일 기준으로 3년 이내 국제 또는 전국 규모 대회의 개인종목 3위 이내 입상자만 지원할 수 있다'는 모집요강을 무시한 채 정씨를 합격시켰다. 입학처장이 면접 평가 교수들에게 금메달을 가져온 학생을 뽑으라고 지시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정씨의 학과 생활 역시 특혜로 가득차 있다. 잦은 결석을 지적하는 지도교수를 하루 아침에 바꾸는가 하면, 같은 문제가 반복되자 '국제대회나 연수, 훈련, 교육실습 등에 참가한 경우 공문서를 제출하면 출석으로 인정할 수 있다'며 아예 학칙마저 바꿨다. 이 와중에 정씨는 공문서 없이도 바뀐 학칙의 수혜를 입었다. 정씨의 레포트를 둘러싼 잡음과 담당 교수와 정씨 간의 이해할 수 없는 메일 내용 등도 특혜가 아니면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총장은 정씨에 대한 특혜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 밖에는 안된다. 최 총장의 발언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때린 것은 맞지만 체벌은 아니다" 등의 논리파괴형 수사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그의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국민이 과연 누가 있을지 의문이다.



ⓒ 오마이뉴스



특혜 의혹 파문에 휩싸인 이화여대의 모습은 마치 대한민국의 현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모형같다. 그 속에는 '우병우', '최순실', '차은택', 그리고 '대통령'이 겹쳐 보인다. 불법과 부정, 특혜와 특권으로 얼룩져 있는 이화여대가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라면, 제기된 의혹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최 총장은 제2 '우병우', '최순실', '차은택'이다.

우병우 민정수석은 '진경준·넥센 게이트' 외에도 제기된 의혹만 10가지가 넘는다. 대한민국 권력서열 1위라는 최순실씨는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최근에는 페이퍼컴퍼니에 이어 대통령의 연설문까지 일일이 고쳤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문화계의 황태자 차은택씨 관련 의혹도 한둘이 아니다. 여기도 의혹, 저기도 의혹, 곳곳이 의혹 투성이다. 대한민국이 달리 '의혹 공화국'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빗발치는 경질 요구에도 대통령은 끝내 우병우 민정수석을 지켜냈다.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씨 의혹에 대해서는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며 일거에 일축시켰다. 그날 이후 최순실·차은택 관련 의혹들이 속속 터져 나오고 있지만 대통령은 여전히 묵묵무답이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이게 나라냐"라는 자조섞인 말들이 쉽게 오간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시절이다. 

그래도 희망의 씨앗 하나를 이대인들에게서 발견한다. 부정과 불의를 맞서는 그들의 끈기와 열정이 그렇다. 그들은 학교의 명예와 위상을 추락시키는 학내의 부정과 비리, 특혜 의혹의 진상규명을 줄기차게 요구했고 실력행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최 총장이 사퇴한 날에도 교수와 학생들 수백명이 본관 앞에 모여 특혜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시위를 전개했다. 지난 여름에는 평생교육단과대학 설립을 추진했던 최 총장의 독단과 독선에 맞서 본관을 점거하며 저항하기도 했다.

만약 이대인들이 최 총장의 독단적 학사 운영과 학내 부정 비리 등에 눈감고 침묵했더라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외면했더라면 어땠을까. 교육의 질을 저하시키고 대학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평생교육단과대학 설립이 중단되었을 리 없고, 최 총장이 물러나는 일 역시 없었을 터다.

어제 이대인들은 단순하지만 아주 강력한 메시지 하나를 이 사회에 던졌다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부정과 비리, 부조리와 모순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해소되지 않는 의혹의 진상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외치고, 외치고, 또 외쳐야 한다. 세상은 그렇게 진화해 왔고, 진화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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