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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이준식 장관은 시대착오적 국정교과서를 당장 폐기하라

교학사 교과서 파동이 한창이던 지난 2014년 초의 일이다. 박근혜 정부가 노골적으로 밀어주던 교학사 교과서의 채택률이 1%에도 미치지 못하자 당시 새누리당의 황우여 대표는 "교과서를 하나 만들었는데 1%의 채택도 어려운 나라가 세상에 어디에 있느냐, 정치인으로서 현실을 아주 비통하게 보고 있다"고 한탄했다. 같은 당의 김무성 의원 역시 "교육부의 엄격한 검정을 거쳐 통과된 역사 교과서가 전교조의 테러에 의해 채택되지 않은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강한 불만을 내비쳤다.

당시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학계와 교육계, 시민사회의 반응은 차갑다 못해 냉담했다. 왜 그랬을까. 시장의 원리를 생각하면 그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상품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냉정하고 엄격하다. 만일 결함이 있거나,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시장은 해당 상품에 대해 가차 없는 철퇴를 내린다. 상품이 시장에서 퇴출되는 이유는 거의 대부분 상품 자체의 문제에 기인한다. 상품이 시장의 흐름이나 기호에 부합하지 못하거나,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판명이 나면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것이다.

교학사 교과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교학사 교과서가 환영받지 못한 것은 오직 하나, 교과서의 내용이 아주 부실했기 때문이었다. 교육부의 엄격한 검정과정을 거쳤다는 주장이 무색하게 교학사 교과서는 거의 책 한 권을 다시 써야 할 정도의 오류와 왜곡이 드러났다. 여러 차례의 수정·보완 과정을 거친 최종본에서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교학사 교과서가 외면당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정부 여당은 일선 학교와 학부모들이 교학사 교과서를 외면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들은 교학사 교과서에서 드러난 친일·독재의 미화, 수많은 오류와 왜곡은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대신 일선 학교가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는 사실에만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나 불량품이 시장에서 외면당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쯤 되면 부실하기 짝이 없는 함량 미달의 교과서를 일선 학교에 유통시키려는 정부 여당의 저의를 의심해봐야 한다.

결과적으로 교학사 교과서 파동은 정부 여당의 국정교과서 추진 의지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절치부심한 정부 여당은 이후 국정교과서를 부활시키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절차와 과정이 완전히 무시되는가 하면, 집필 과정의 법적·도덕적 잡음도 끊이질 않았다. 집필진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졌고,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극강의 비밀주의가 횡행하기도 했다. 통상 2~3년이 소요되는 집필·수정·심의 과정도 1년으로 대폭 줄여버렸다. 



ⓒ 오마이뉴스


지난달 31일 공개된 국정교과서는 여러모로 교학사 교과서와 닮아 있다. 국정교과서 역시 친일·독재를 미화하고,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틀리게 기술되는 등 오류 및 왜곡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채택률이 1%에도 미치지 못했던 교학사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국정교과서 역시 일선 학교에서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는 점도 흡사하다. 교육부가 연구학교 신청 마감일을 지난 10일에서 15일로 연장한 가운데 아직(12일 현재)까지 연구학교 신청 학교는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하고 있는 교육부의 행태 역시 당시와 비슷하다. 이준식 교육부 장관은 10일 "학교의 정상적인 교육 과정 운영을 방해하는 등 위법 부당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를 강구할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며 시도교육청과 전교조를 겨냥했다. 서울, 경기 등 8개 시도교육청이 연구학교 신청 공문을 일선 학교에 전달하지 않은 사실과 전교조가 몇몇 학교에 연구학교 신청을 하지 말도록 권유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 장관은 교과서 선택의 자율성을 시도교육청과 전교조가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어불성설에 지나지 않는다. 이 장관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국정교과서가 일선 학교에서 채택될 수 있을 만큼의 수준과 함량을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국정교과서는 이를 전혀 충족시키지 못했다.

지난달 31일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최종본을 발표하며 현장검토본에서 지적된 오류 760건을 수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최종본에서도 653건에 달하는 오류가 다시 발견되는 등 국정교과서에서 무려 1000건이 넘는 무더기 오류가 드러났다. 수십 년 동안 교육 현장에 몸담았던 이 장관이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를 리가 없다. 


국정교과서가 외면 받는 이유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국정교과서 자체의 부실함이 야기시킨 당연한 귀결이다. 그럼에도 이 장관은 함량 미달의 엉터리 교과서를 만들어놓고 왜 채택하지 않느냐고 강하게 반문하고 있다. 건강에 해로운 불량식품을 왜 사지 않느냐며 어깃장 놓는 것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박근혜 교과서'라고 일컫어지는 국정교과서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이뤄지면서 이미 국민적 심판을 받은 상태다. 국정교과서 추진을 막기 위한 '국정교과서 금지법' 역시 지난 1월2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통과했다. 국정교과서를 폐기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 또한 시종일관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하고 있다. 국정교과서의 앞날을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문제다.


탄핵 정국임을 고려하면 이 장관의 임기는 길게 봐야 4~5개월 남짓이다. 머지 않아 사라질 국정교과서의 운명을 임기가 얼마 남지 않는 시한부 장관이 틀어 쥐고 있는 것부터가 지극히 불합리한 이율배반이다. 이 장관은 지금이라도 국정교과서의 폐기를 선언해야 한다. 비이성과 비상식의 요지경이 대한민국의 미래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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