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의 위안부 재단(화해·치유 재단)에 대한 일본 정부의 출연금 지급이 완료되면
한일 간 위안부 문제 합의에 따른 일본 측 책임을 다하는 것"
#2
"(위안부 배상 문제가 종결되지 않았다는) 우리 입장은 변함이 없고, 일본 입장도 변함이 없다. 현실적 한계에서 고령의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검토한 것"
'#1'은 최근 '화해·치유 재단'에 10억엔의 출연금 지출을 의결한 일본 정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발언이고, '#2'는 일본 정부의 출연금을 피해자들에게 현금 분할 지급하겠다며 정부
당국자가 밝힌 내용이다. 한쪽은 출연금 지급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다른 한쪽은 끝난 게 아니라 한다.
한일 양국이 지난해 전격 타결한 위안부 문제 합의 내용에 대한 양국의 견해가 이처럼 첨예하게
다르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 합의와 출연금 지급 등과 관련한 양국 정부의 주장을 면밀히 들여다 보면 박근혜 정부가 대국민 언론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는 정황이 뚜렷해진다.
지난해 12월 28일 전격 합의된 위안부 문제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부분은 합의문에 포함되어 있던 문구였다.
한일 양국은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으로 그리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문구를 합의문에 삽입했다. 그런데 이 문구를 두고 양국 정부 사이에 뚜렷한 시각차가 표출되기
시작한다.
박근혜 정부는 일본의 계속되는 말바꾸기를 차단하려는 취지에서 해당 문구를 넣었다고 주장했지만
일본 정부의 입장은 달랐다. 일본 정부는 이 문구를
양국 정부가 더 이상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말자는 의미로 해석했다. 합의 이후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부 관계자의 발언들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논란이 될 것이 자명한 문구를 합의문에 낳은 정부를 향해 국내의 비판이 쏟아진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정부는 위안부 문제 합의가 한일관계 개선과 대승적 견지에서 이루아진
것이라 평가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합의를 외교적 성과로 치켜세우는 사이, 정작 피해 당사자들인 할머니들과 다수 국민은 '협상 무효'와 '재협상'을 주장하고 있었다.
ⓒ 오마이뉴스
지난 12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과 전화통화를 가졌다. 외교부는 이날 저녁
브리핑을 통해 "윤 장관이 '화해·치유 재단' 출범을 설명하고, 기시다 외무상은 지난해
12월 합의에 따라 국내 절차가 완료되는 대로 정부 예산 10억엔을 신속하게 출연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외교부는 출연금 지급과 관련한 구체적 합의 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관련 내용은 일본 정부로부터 흘러나왔다. 기시다 외무상은 "일본 정부에 의한 지출이 완료되면 일한 합의에 기반한 일본 쪽의
책무는 다한 것이 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발언과 일치하는 것으로, 일본 정부가 10억엔의 출연금 지급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최종적 책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다.
이는 위안부 배상 문제가 종결되지 않았다는 박근혜 정부의 입장과는 완전히 상반된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10억엔의 출연금의
성격을 배상금이 아닌 치유금이라고 분명히 하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박근혜 정부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꿈보다
해몽'일 가능성이 높다.
배상이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10억엔의 정부
출연금에 대해 단 한번도 배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10억엔의 출연금이 지급되고 나면 일본의 책임은 완전히 끝난다고 거듭 주장해왔다. 시쳇말로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10억엔으로 '퉁'치겠다는 의미다.
한일 양국이 위안부 문제 합의를 통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문구를 삽입하고 이 문제로 상호 비판하는
것을 자제하기로 합의한 이상, 박근혜 정부는 이제 더 이상 일본 정부에게 위안부 문제를 제기할 법적 정치적
근거가 사라지게 됐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부가 일본 정부에게 면죄부를 주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 오마이뉴스
#3
"양국과 그 국민의 재산•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한다"
#4
"한국 정부는 이번 발표를 통해 일본 정부와 함께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함"
'#3'은 1965년
6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본과 체결한 한일청구권협상의 내용 중 일부이고, '#4'는 박근혜 대통령이 작년 12월 일본 정부와 합의한 위안부 문제 합의문 내용 중 일부다.
합의를 이끌어 낸 정부 측 인사들의 인식과 그 내용이 놀랄 만큼 흡사하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비슷한 것 하나 더. 한일청구권협상 당시 박정희 정부는 들끓는 여론을 의식해 청구권협정이 일본 정부의 식민지 배상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를 배상이 아닌 경제협력자금이라 주장했다. 그로부터
50년 뒤, 박근혜 정부는 일본 정부가 출연하는 10억엔의 기금이 배상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일본 정부는 이를 치유금이라고 분명하게 못
박고 있다.
이상은 50년을 터울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충격적인 데자뷰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두고 두고 문제가 될 문제의 협상을 이끌어 낸 당사자가 다름 아닌 아버지와 그 딸이다. 그 어떤 스릴러보다 전율스러운 기가 막힌 반전이다. 아무래도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역사는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소극(笑劇)으로 끝난다고 했던 마르크스의 가정은 틀린 것 같다. 비극이다. 그것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돌이킬 수 없이 끔찍한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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