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코 앞에 둔 요즈음 아마도 가장 분주한 사람들은 유통업, 그 중에서도 택배계통에 종사하는 분들이 아닐까 싶다. 이를 반영하듯 택배업계는 명절을 앞두고 너나 할 것 없이 비상근무에 돌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소보다 물동량이 약 20~30%가량이나 증가한다고 하니 명절 연휴 특수에 택배업계가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런데 요즈음 가장 바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을 택배기사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고 있는 곳이 바로 국회의원 회관이라 한다. 명절을 맞아 각계각층에서 국회의원들에게 보내는 선물들로 지금 국회의원 회관이 몸살을 앓고 있다는 얘기다. 불철주야로 국정활동에 여념이 없는 국회의원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우리사회에 이렇게나 많다. 얼핏 사진으로만 봐도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선물의 내용도 홍삼, 전복, 굴비 등 지역특산품에서부터 고가의 양주, 와인 등에 이르기까지 가지가지다. 그렇다면 이 많은 선물들은 누가 보내는 것일까? 발신인의 면면을 보니 지방자치단체, 학교, 기관, 업체,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각종 단체들에 심지어 경찰청장의 이름도 보인다. 물품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살아있는 권력인 국회의원들에게 선물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원들은 '갑' 중에서도 '슈퍼 갑'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여야의 이름있는 현역 중진의원들의 경우 당내의 의사결정에는 물론이요,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 등에서 공천권을 포함해 막강한 실력행사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정감사나 예산안 심의, 명절 대목 등을 앞두고 국회회관이 북새통을 이루는 것이다.
물론 국회의원들의 입장에서도 할 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입장과는 상관없이 불특정 다수들이 보내는 물품들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이는 사실과 조금 다르다.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방법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는 편이 더 정확하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시절에 제정된 '공무원 행동강령'에 따르면 공무원의 경우, '공직자는 직무 관련 민간인으로부터는 선물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단 직무 관련 공직자 간에는 3만원 한도 내에서 선물을 주고 받을 수 있도록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의 경우, '공무원 행동강령'과 유사한 '국회의원 윤리실천규범'의 제5조에 의거 '국회의원은 법률안, 기타 의안과 관련하여 직접 또는 간접으로 금품 기타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거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를 공여해서는 안된다'는 규정 이외에는 어떠한 조항도 없는 상태다.
특히 '국회의원 윤리실천규범'의 경우 구체적인 액수 및 적용대상이 명시되지 않아 위반했을 경우 이를 규제할 근거가 전혀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이는 국회의원 및 공직자가 받을 수 있는 선물의 범주와 구체적 액수까지 명확하게 법에 명시되어 있으며, 이를 어겼을 경우 엄격한 법적 책임을 묻고 있는 정치 선진국의 경우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현재 국회에서는 내년 9월부터 시행될 '김영란법'을 앞두고 구체적인 규정과 예외사항을 만들기 위해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에게 전해지는 명절 선물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인 '김영란법'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국정감사 시즌인 추석에 국회로 전달되는 명절 선물의 상당수가 소속 상임위원회의 피감기관에서 보내진 것들이다. 이 선물에는 '잘 봐달라'는 청탁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그렇게 본다면 명절 선물은 '국회의원 윤리실천 규범' 제5조 위반에 해당되며, 포괄적 의미에서 '김영란법'에도 위배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작 명절 선물과 관련해서 그들이 취하는 행동은 전무하다. 자신의 목에 스스로 방울을 달 이유가 저들에게는 하등 없기 때문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현재 과도하게 부여되어 있는 국회의원들의 각종 특권과 특혜를 문제삼고 있다. 국민들은 국회의원의 과도한 특권과 특혜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무엇보다 이해 당사자들인 국회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왔다. 그러나 역대 최악의 국회라 평가받는18대 국회에 이어 이번 19대 국회에서도 국회의원들의 특권내려놓기는 공염불에 그치고 말았다.
자신들의 기득권과 관련된 문제이니 만큼, 국회의원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없거니와 그 필요성 역시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대한민국의 국회의원들이 '슈퍼 갑'으로서 온갖 특혜와 특권을 누리기만 할 뿐 자신들이 해야 할 책임과 의무 및 역할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인은 사회구성원들에게 꿈과 희망, 비전을 제시해 주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대한민국의 정치는 이와는 완전히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정치행위를 보고 있노라면 꿈, 희망, 비전은 커녕 이와 비슷한 감정의 편린조차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를 맞아 국회의원 회관 앞이 선물꾸러미로 발 딛을 틈이 없을 지경이라 한다. 유독 대한민국 국회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라 하니 참으로 민망한 요지경이 아닐 수 없다. 갈수록 뒷걸음치고 있는, 보여주기 싫은 대한민국 정치의 부끄러운 현주소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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