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인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은 "한반도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남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충돌의 근원이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겠다"며 "5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한다"고 천명했다.
판문점 선언이 나온 이후 남북은 신속하게 합의 이행 절차에 착수했다. 국방부는 1일 오후부터 대북 확성기 철거 작업에 들어갔으며, 북측 역시 대남 확성기 철거를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민간단체가 주도하는 대북전단 살포다. 통일부가 1일 입장문을 통해 "전단 살포 중단은 군사적 긴장 완화뿐만 아니라 접경지역 주민의 신변 안전, 사회적 갈등 방지를 위해서라도 중요하다"며 협조를 당부했지만 민간단체들이 전단 살포를 강행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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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 살포를 주도해온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는 1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5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대북전단 30만 장을 날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민복 대북풍선단장 역시 3일 CBS<시사저키 정관용입니다>와의 전화통화에서 "(대북전단 살포는) 자유민주사회에서의 합법적 행위이기 때문에 라디오와 인터넷이 없는 북한 동포를 향해 북한이 언론을 개방할 때까지 날려야 된다"며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민간단체들이 대북전단 살포 강행 의사를 굽히지 않자 입장이 난처해진 건 문재인 정부다. 대북전단 살포가 남북관계에 행여 영향을 끼칠까 우려해서다. 북한은 그동안 자신들의 체제를 비난하는 내용이 주로 담겨있는 대북전단에 대해 아주 예민하게 대응해왔다. 대북전단 살포를 "사실상의 선전포고"로 규정하며 강력하게 응징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내비쳐왔다. 실제 2014년 10월 북한이 대북전단을 향해 고사총을 발포했고 우리군이 대응 사격을 하는 아찔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대북전단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는 접경지역 주민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의 고사총 사격 이후 대북전단 살포는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위험요소가 됐다. 북한이 대북전단 살포를 선전포고라 규정한 이후 지역 주민들은 불안과 공포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생존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인간은 누구나 자기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접경지역 주민 역시 다를 바 없었다.
북한의 총격 이후 주민들은 대북전단 살포를 막기 위해 트랙터 등으로 도로를 막는가 하면 민간단체 회원들과 격한 몸싸움을 펼치기도 했다. 서로를 향해 거친 욕설과 고성이 오갔고 어디선가 계란이 날아들기도 했다. 남북이 서로 총부리를 들이대는 38선 접경지대에서 대북전단을 뿌리려는 자들과 막아서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총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구촌 유일의 냉전지대로 남아있는 한반도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대북전단 살포는 이처럼 남북 사이의 군사적 긴장과 갈등을 조장할 뿐 아니라 접경지역 주민의 생존권까지 위협하고 있다. 그럼에도 민간단체들은 대북전단 살포가 '표현의 자유'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민간단체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가 있다.
대북전단 살포가 남북간 군사 충돌로 이어지자 정부의 강력 대처를 요구하는 각계의 목소리가 비등해졌다. 그러나 당시 박근혜 정부는 "민간 대북 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문제"라며 이를 "강제적으로 막을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고 남남갈등마저 벌어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민간의 자율적 판단에 맡긴 것이다.
대북전단 살포에 제동을 건 것은 오히려 법원이었다. 탈북자 출신의 한 선교사가 경찰의 대북전단 살포 제지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 2016년 대법원이 '국가에게 대북전단 살포를 막을 권리가 있다'며 원고 패소한 원심을 확정한 것이다. 법원은 대북전단 살포가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것은 맞지만 인근 주민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국가의 제재는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국민 보호 차원에서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제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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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민간단체들은 철저하게 통제된 사회인 북한 주민에게 북한 정권의 실체와 남한의 실상을 알릴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점을 대북전단 살포의 당위로 내세우고 있다. 이와 관련 이민복 단장은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6.25 전쟁을 일으킨 주체가 김일성이라는 대북전단을 보고 탈북을 결심했다며, 전단 살포가 진실을 알리는 행위임을 강조했다. 바깥 세상과 단절돼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전단 살포를 멈출 수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이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개방적이라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상태다. 휴대전화만 해도 500만대에 이르며 북한 당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장마당도 500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 하면 장마당을 통해 북한 주민들은 다양한 한국 제품은 물론이고 최신 드라마와 가요 등 한국 대중문화를 손쉽게 접하고 있다.
북한 전문가인 박영자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4월 4일 tbs뉴스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김정은 국방위원장 집권 이후 북한이 시장경제적인 요소들이 대거 도입됐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가 북한을 아는 것보다 북한이 남측 정보를 훨씬 더 많이 본다"며 북한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그는 '북한에서도 뉴스공장을 듣는다'며 김어준 공장장을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북한이 훨씬 개방적인 사회라는 의미다.
잘 알려진 대로 김정은 위원장은 군사제일주의를 표방하는 '선군정치'에서 탈피해 경제 우선주의 노선으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는 중이다. 2016년 5월 제7차 당 대회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발표하는 등 경제 살리기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장마당 등 자본주의 요소를 적극 도입시킨 것도 그런 맥락이다.
개혁·개방을 길을 선택한 이상 북한 체제가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남북정상의 판문점 합의는 이를 전세계에 알리는 선언이었다. 남북정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공동 번영을 위해 함께 나아가기로 굳게 약속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고립·폐쇄의 길이 아닌 종전 선언과 평화 협정 체결, 나아가 북미 협상과 수교에 이르는 비핵화의 여정에 발을 들여 놓았다.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진 이번 합의는, 그렇기 때문에 '비가역적'(非可逆的) 성격을 지닌다. 북한의 변화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이다.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중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백번 양보해 대북전단 살포의 정당성과 실효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남북정상이 한반도의 획기적 변화를 이끌어 낼 역사적 합의를 이룬 상황이다. 90%에 가까운 절대다수의 국민 역시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남북이 함께 만들어 갈 제반 조치들을 지켜보는 게 먼저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 공동의 번영을 위한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가로막을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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