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27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상임위원회 차원의 상시청문회 실시를 골자로 하는 국회법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이미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그러나
예상했다고 해서 그 충격까지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 3당은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강력하게 반발했고,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를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며 삼권분립 위배라고 개탄스러워 했다.
특히 야 3당은 거부권을 행사한 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성명을 일제히 발표하는 한편
20대 국회에서 법안의 재의결을 위한 공동전선을 펼치기로 다짐하는 등 강력하게 대응하기로 했다. 야당의 일사분란한 대응에는 '두고보자'는 결의마저 느껴진다.
이처럼
야 3당이 한 목소리로 의기투합하는 데에는 거부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국회를 완전히 무시하는 박 대통령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태도에서는 삼권분립의 대원칙은 고사하고 국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왜 그럴까?
ⓒ 오마이뉴스
박 대통령의
이번 거부권 행사는 그 행태가 아주 고약하고 지극히 졸렬했다. 박 대통령은 19대 국회가 폐원되기 이틀 전인 지난 27일 거부권을 행사했다. 본회의를 소집하기 위해서 최소한 3일 전에 소집공고를 내야 한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재의결 할 수 있는 방법 자체를 박 대통령이
완전히 원천봉쇄시켰기 때문에 19대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무하다.
박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점도 국회의 입장에서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박 대통령은 27일 황교안 국무총리가 주재한 임시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이 의결되자 전자결재를 통해 재가해 버렸다. 해외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기 전까지 거부권
행사에 따른 야권의 비난과 비판 여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거부권
행사에 따른 정치의 파행과 갈등, 대립과 반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정작 자신은 그 격랑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겠다는 뜻이다. 대통령의 모습은 국정을 책임지는 최고통수권자로서 지극히 비겁할 뿐만 아니라, 야당이 크게 반발하든 말든 국정 난맥이 초래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라는 듯한 무책임마저 읽힌다.
박 대통령의
무책임과 비겁함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와
헌법가치를 유린한 국정원 사건, 대한민국의 총체적 난제가 결집되어 나타난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밑도 끝어 없이 벌어지는 인사참사, 국정원 간첩조작사건과 민간인 사찰 의혹,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 성완종 게이트와 어버이연합 게이트 등 크고
작은 국정 현안마다 그는 무책임과 비겁함으로 일관하며 수많은 국민들을 좌절감과 허탈감에 빠뜨리고는 했다.
반면 자신의
지위와 권위에 대한 도전은 추호도 용납하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쉽게 말해 '책임이 따르지 않는 권위'의 폐해가 그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해를 위해 박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발생했던 사건·사고들에 대한 한결같은 반응들과 불같이 화를 냈던 장면들을 곱씩어 볼 필요가 있다. 그에게는 타인에게 물을 책임은 있을지언정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은 없다.
ⓒ 오마이뉴스
상시청문회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과정 역시 그동안 박 대통령이 보여주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물론 집권 후반기 국정 운영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상시청문회법을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거부권 행사를 통해
재의시킨 속내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 과정에서 정치의 미덕이자 본질인 대화와 타협, 절충은 외면한
채 오로지 자신의 권위와 지위만 줄기차게 내세웠을 뿐이다.
박 대통령의
이 모습 그 어디에도 지난 13일 3당 원내대표단과의 청와대 회동을 통해 협의한 '협치의 정치'를
찾아볼 수가 없다. "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협치는 서로 협동, 협력하는 정치가 아니라 협박하는 정치, 협량한 정치로서의 협치"라던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의 탄식이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20대 국회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판이 삐걱거리게 됐다. 그 중심에 박 대통령이 있음을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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