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경제원이 자신들이 주최한 '이승만 시 공모전'에서 입상한 작가들을 고소하고 손해배상 소송까지 제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3일 '우남찬가'의 저자 장민호씨는 자유경제원이 자신을 업무 방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명예훼손 및 사기 등의 혐의로 고소하고, 5000만원의 위자료와 업무지출금 699만6000원을 요구하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자유경제원은 또 다른 수상작인 'To the promised land'의 작가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고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 서울경제
사건의
경위는 이랬다. 지난 3월 자유경제원은 '제1회 건국대통령 이승만 시 공모전'을 주최했다. 그런데 이 중 최우수작인 'To the promised
land'(약속의 땅을 위하여)와 입선작인 '우남찬가'가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문제가 됐다.
이 작품들은 모두 '세로드립(가로 쓰기의 글에서
문장의 첫 글자를 조합해 원문에는 없는 새로운 의미를 드러내는 일종의 암호문)을 사용해 이승만 전 대통령의
행적을 비꼬았던 것이다.
실제 이
작품들은 가로로 읽으면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업적을 찬양하는 내용 일색이지만 문장의 첫 글자를 세로로 읽으면 오히려 그의 행적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최우수상 수상작인 'To the promised
land'의 문장 첫글자를 조합하면 'NIGAGARA HAWAII'가 되고,
입선작인 '우남찬가'는 '한반도분열 친일인사고용 민족반역자 한강다리폭파 국민버린도망자 망명정부건국 보도연맹학살'이라고
읽힌다.
뒤늦게
이 사실을 발견한 자유경제원은 입상작들의 입상을 취소하는 한편 법적 대응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당시 그들은 "두 작품은
이승만 대통령을 폄훼하는 내용을 고의적으로 담고 있어 행사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고, 이로써 주최 측 및
다른 응모자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초래했다"며 "대회
취지에 반한 글을 악의적으로 응모한 일부 수상작에 대해 입상을 취소하고 법적 조처를 포함해 강력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자유경제원의
고소와 손해배상 청구는 결국 그에 따른 대응이었던 셈이다. 관련 사실이 알려지자 온라인 포탈사이트와 SNS를 중심으로 자유경제원을 비난하는 의견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시민들은 행적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문제적 인물을 찬양하는 공모전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하며,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고 구속하려는 자유경제원의 행태를 강하게 꼬집었다.
자유경제원을
향해 시민사회의 비난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세간의 관심은 고소당한 사실을 밝힌 장씨에 대한 처벌 여부에 쏠리고 있다. 자유경제원은 크게 업무방해와 명예훼손, 그리고 사기혐의를 근거로 장씨를 고소했다. 장씨의 작품으로 인해 자유경제원의 공모 취지가 크게
훼손됐고(업무방해), 그가 역사적 사실과 다른 사실에 기초해 허위 사실을
적시했으며(명예훼손), 장씨가 실제 이름이 아닌 '이정환'이라는 필명을 사용한 것(위계)을 문제삼은 것이다.
이와 관련해
장씨가 법적인 처벌을 받게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장씨가 작품 속에서 비판한 내용이 이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상조사 등에서 사실로 드러나 사자명예훼손의 사유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자명예훼손은 친고죄이기 때문에 자유경제원이 고소를 제기할 자격 자체가 없다.
혐의를 구체적으로 입증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사기 혐의 역시 처벌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결국 문제가 될 수 있는 소지는 위계로 인한 엄무방해죄 혐의 정도인데 해당 작품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분석을 하지 않은 주최측의 실수와 과오도 있는 만큼 이것만으로 장씨를 처벌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결국 논란만 거세질 뿐 작가들에 대한 고소와 손해배상 청구로 자유경제원이 얻을 실익은 거의 없는 셈이다.
ⓒ 오마이뉴스
자유경제원의 고소건과 관련해 공모전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복거일 작가는 "(자유경제원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했다. 자유민주주의는 너그러움인데 조롱거리가 됐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너그럽게 이해해야
한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결국 표현의
자유와 비판의 자유에 대한 자유경제원의 몰이해가 공인에 대한 문학적 풍자조차 수용할 수 없는 극단적인 무관용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의미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풍자한 작가들에게 무리한 고소전을 감행한 자유경제원을 향해 시민사회는 물론이고 문학계와 법조계 등 각계각층의 비판과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이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시민의 권리를
위협하는 데에 따른 당연한 반응들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판한 작품을 '이승만 시 공모전'
수상작으로 선정해 망신을 톡톡히 샀던 자유경제원이 다시 한번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지금 누워서 침을 뱉고 있다는 사실을 오직 그들만 모르는 것 같다. 오호통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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