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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구미시의 박정희 찬가가 불편한 이유

경북 구미시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다. 아니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유별나다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왜 그런지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자.

구미시에서는 매년 박정희를 기리는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박정희가 태어난 날인 1114일에는 탄신제가, 박정희가 세상을 떠난 날인 1026일에는 추모제가 성대하게 치뤄진다. 죽은 독재자의 생일과 기일을 해마다 살뜰히 챙기는 도시는 대한민국에서 구미시가 유일하다.

그래서인지 구미시하면 자연스럽게 박정희가 오버랩된다. 이는 어디까지나 현 남유진 구미시장의 공로가 가장 크다. 지난 2006년 민선4기로 구미시장에 당선된 이후 그는 내리 3선에 성공하며 구미시를 박정희의 도시로 만드는데 절대적인 공을 세운 인물이다.

박정희를 향한 남 시장의 절절함은 지난 2013 '박정희 대통령 96회 탄신제'에서 절정으로 치달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하늘이 내린 반인반신"이라며 박정희를 신의 영역으로 격상시켰다. 구미시에서 박정희는 이제 신과 동급으로 취급받는다.



ⓒ 오마이뉴스



남 시장의 박정희 예찬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최근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치겠다고 밝혔다. 오는 2017년 시비와 도비 등 40여 억원을 투입해 뮤지컬 공연, 국제학술대회, 기념우표, 사진전, 불꽃축제 등 다채로운 행사를 열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남 시장의 야심찬 계획이 알려지자 여론이 들끓고 있다. 특히 이 사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창작 뮤지컬 '고독한 결단' 28억원의 예산이 책정된 것으로 드러나자 비난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박정희에 대한 국민정서가 극명하게 갈리는 상황에서 막대한 시예산을 투입하려는 남 시장과 구미시에 대한 비난이 폭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굴복할 남 시장이 아니었다. 그는 시민들의 비판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고 꿋꿋했다. 이번에는 박정희가 먹었던 밥상이 찬양의 도구가 됐다. 구미시는 28일 보도자료를 통해 "박정희 대통령의 근검절약 정신을 되새기고 관광자원화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발굴·재현한 대통령 테마밥상 시식행사를 가졌다"고 밝혔다.

'박정희 대통령 테마밥상' 6개 유형 중 '보릿고개 밥상'을 시식한 남 시장은 "테마밥상은 검소함과 대한민국의 어려웠던 시절을 다시 한 번 체험하는 역사적 의미와 소중한 문화의 가치가 있는 음식이다"라는 소회를 남겼다. 이쯤되면 남 시장의 박정희 사랑은 각별과 유별을 넘어 애잔함마저 묻어난다. 구미시가 달리 '박정희시'로 불리는 것이 아니다.


미국 마운트 버논에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이 살았던 저택이 국가 사적지로 보존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이 사적지 안에 있는 '노예들의 숙소'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건물이다. 이 건물은 워싱턴이 부리던 노예들이 살던 공간이었다.

이 건물은 워싱턴이 죽을 당시 무려 318명의 노예가 살고 있었다는 설명과 함께 노예들의 당시 생활상을 잘 묘사해 놓고 있다. 미국인들에게 워싱턴은 건국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워싱턴에
대한 존경과 찬사와는 별개로 살아생전 노예 늘리기에 집착했던 오점까지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이는 역사적 인물의 '' ''를 함께 기록함으로써 다음 세대가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첨예한 과거사 논쟁이 있을 때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는 표현의 진정한 의미가 바로 이 모습에 녹아 있다.


 


ⓒ 오마이뉴스



박정희에 대한 평가 역시 마찬가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박정희 역시 '' ''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문제적 인물이다. 그에게는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근대화를 이끈 위대한 지도자란 평가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한 서슬 퍼린 독재자라는 평가가 동시에 따라 다닌다.

따라서 박정희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지려면 '' ''를 함께 기록하는 작업이 수반되어야 한다. 박정희의 업적으로 도배되어 있는 박물관의 한켠에 인혁당 사건, 동백림 사건 등 유신독재 시절의 어두운 단면이 함께 전시되어야 하고, 테마밥상바의 메뉴에도 '시바스리갈'이 곁들어진 안가 음식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박정희에 대한 진정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구미시는 박정희의 ''만 기억하고 싶은 모양이다. 남 시장의 우상화 작업이 노골적으로 진행되는 동안 박정희의 ''는 희석되고 ''은 점점 부풀려져 가고 있다그 결과 박정희는 이 지역에서 조국의 근대화와 산업과를 일구어 낸 영웅이자, '반인반신'으로 추앙받기에 이른다.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인권을 짓밟은 독재자가 마침내 신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구미시에는 5m 높이의 거대한 박정희 동상이 있다. 매년 박정희 탄신제와 추모제가 열리는 이 곳에서는 
조선중앙방송에서만 볼 수 있던 기괴한 장면이 심심치 않게 목격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 모습이 구미시에서라면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박정희의 그림자가 여전히 지배하는 땅, 구미. 이대로라면 구미시의 이름이 '박정희시'로 개명될 날이 머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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