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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황색언론이 박원순의 죽음을 소비하는 방법

ⓒ중앙일보

 

지난 몇 일간 뉴스를 보지 않았습니다. 두려웠습니다.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이 바래질까봐, 부정될까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박원순 변호사가 야인 생활을 끝내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뛰어든 2011년 저는 본격적으로 정치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박 시장 관련 글도 꽤 많이 썼지요. 찾아보니 지난 10여 년간 스무 편 정도의 기사를 썼더군요. 이명박·오세훈 두 전임시장의 권위적 전시행정에서 벗어나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시정을 운영해 나가는 모습을 먼거리에서 흐뭇하게 지켜봐온 날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작금의 사태를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힘이 듭니다. 10여년 가까이 박 시장의 행보를 관찰해온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인권변호사로, 시민운동가로, 그리고 서울시장으로 살아온 지난 수 십년의 족적이 거짓말처럼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무너져내리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몇 일간 뉴스를 아예 보지 않았던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내가 알고있던 인간 '박원순'과 성추행 가해자 박원순 사이의 괴리감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조국 사태와 정의연 논란에서 보듯, 이 나라 언론이 이 사안을 어떻게 대할 지는 불을 보듯 뻔한 상황입니다.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 행태에 더해 정치와 진영논리가 개입하게 되면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그야말로 혼돈과 혼란의 아노미 상태로 빠져들고 말게 될 겁니다.

오늘 잠시 짬을 내어 언론 기사와 SNS, 유튜브 등을 살펴보니 역시나 예상대로입니다. 광고와 트래픽에 목을 매는 무수한 황색 언론들과 유튜버 등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제목과 내용의 기사로 대놓고 호객행위를 벌이고 있더군요. 대중들 역시 니편 내편을 가르는 편가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언론은 이 모습 역시 고스란히 생중계하면서 논란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급기야 박 시장을 옹호하는 쪽에서는 음모론까지 제기하는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한 사람의 행적을 둘러싸고 끔찍한 이전투구가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해서, 잠시 이 사건을 한발짝 떨어져서 생각해 보려 합니다. 주지하다시피 이 사건의 핵심은 박 시장이 피해 여성을 지속적으로 성추행하고 희롱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물론 이는 피해자 측의 일방적인 주장입니다. 사건의 진위를 밝히기 위해서는 고소인과 피고소인인 박 시장이 진실게임을 벌여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박 시장은 세상을 이미 떠난 상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이라면 '공소권없음'으로 사건이 종결되는 사안입니다.

그러나 박 시장이 대권까지 넘보던 유명 정치인이었던 이상 사건이 이대로 종결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당장 미래통합당 등 야권에서는 수사종결은 안 된다며 진상규명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문제는 피고소인이 세상을 떠나버렸기 때문에 진실을 밝히는 것이 사실상 어려워진 상황이라는 점입니다. 더욱이 정치논리가 개입되었기 때문에 배가 산으로 갈 공산이 아주 커져버렸습니다. 정치권과 이 나라 언론이 이 사건을 어떻게 다룰지 이미 답이 나와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광고와 트래픽을 노린 언론의 황색 저널리즘은 극에 달할 것입니다. 야권은 야권대로 정치적 이득을 보기위해 정치 공세에 사력을 다할 겁니다. 그리고 박 시장을 옹호하는 사람들과 비난하는 사람들 사이의 흑백 공방전이 펼쳐지면서 논쟁은 더욱 거세지게 될 겁니다. (실제 그렇게 돼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 한 건 이 과정에서 언론과 정치권이 보호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강조하고 있는 고발인에 대한 2차 피해가 속출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조폭 저리가라 할 정도로 잔인무도하고 안정사정 없는 이 나라 언론과 당리당략을 위해서라면 안 하는 것, 못 하는 것이 없는 이 나라 정치인들의 생리를 감안하면 그렇게 될 가능성은 제가 볼 때 거의 '백프로'입니다.

우려스러운 것은 고발인 측의 행보입니다. 만약 고발인의 목적이 진실을 밝히는 것에 있다면, 머뭇거리지 말고 가지고 있는 성추행의 증거를 다 공개하는 편이 바람직합니다. 왜냐하면 고발인 측이 지금처럼 기한을 정해 조금씩 증거를 공개하는 방식을 고수한다면 고발인의 신상이 결국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이에나 같은 이 나라 언론의 생태상 진실이 밝혀지기도 전에 고소인의 신상이 먼저 털리게 될 테니까요.

고발인이 성추행 증거를 빨리 밝혀야할 이유는 또 있습니다 .박 시장의 죽음과 관련해 이런저런 음모론이 난무하는 현실이고 보면,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입증할 증거 공개가 미뤄지면 미뤄질수록 고소인을 향한 억측과 음해 등 2차 가해는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고소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구체적 물증을 제시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고소인은 용기를 내 성추행 피해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불필요한 오해와 논쟁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 편이 고소인의 명예를 지키고 2차 피해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구체적 물증이 공개된다면 박 시장의 행위를 둘러싼 논쟁은 자연스럽게 설 저리를 잃게 될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조언드리자면, 언론은 의지할 대상도 신뢰할 대상도 아닙니다. 공정의 가치를 상실한 이 나라 언론이 이 사건을 소비하는 방식은 아주 간단합니다. 단적으로 말해 대중의 관심을 얼마나 끌 수 있는가. 트래픽을 얼마나 남길 수 있는가. 광고수익을 얼마나 낼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진실보도? 공정보도? 피해자 인권? 피해자 보호? 미안한 얘기지만, 이 나라 언론에게는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얘기입니다. 정치권과 언론에 기대는 순간, 고발인의 명예는 물론 보호받아야 할 인권까지 흔들리게 되고 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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