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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황교안 취임 100일, 한국당은 무엇이 달라졌나

ⓒ 오마이뉴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6일 취임 100일을 맞이했다. 황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오늘은 자유한국당 대표 취임 100일이 되는 날"이라며 "취임 100일을 맞아 '초심'을 다시 생각한다"라고 적었다.

또한 "개혁이란 바로 국민 속으로 가는 길이고, 미래로 가는 길이며, 통합으로 가는 길이다"라며 "우리 스스로 당을 개혁하고 혁신하지 않으면 역사의 주체 세력이 될 수 없다. 혁신을 주저하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황 대표는 "자유한국당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책임지고 이끌어온 중심세력"이라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던 희생정신과 역동성이 우리 당의 피와 땀, 눈물 속에 도도히 흐르고 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취임 100일, 황 대표가 꺼내든 키워드는 '개혁', '미래', '통합'에 방점이 찍힌다. 당을 근본적으로 개혁시켜 화합과 통합,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문제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그럴싸하게 포장된 외피가 아니라 구체적인 내용이다.

한국당의 지난 100일을 돌아본다. 과연 황 대표의 말처럼 개혁, 미래, 통합을 떠올릴 만 했던가. 아니, 외려 그 반대에 가깝다는 것이 중론이다. 개혁의 핵심이자 본질은 인적쇄신에 있다. 그런데 한국당의 인적쇄신은 전무하다시피 하고 있다.

당내 계파갈등을 주도하고 국정농단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방조·묵인했던 친박세력은 '김병준 비대위' 시절부터 인적청산 1순위로 지목돼 왔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친박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던 황 대표가 인적청산을 감행하기는 어려웠을 터, 그는 손에 피를 묻히는 대신 전략적 '공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황 대표는 취임 이후 당 사무총장(한선교 의원)과 전략기획부총장(추경호 의원), 당 대표 비서실장(이헌승 의원), 당 대변인(민경욱·전희경 의원) 등 핵심요직에 친박계를 대거 등용시켰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황 대표가 '친박'을 중용하며 '친황' 체제를 구축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중도세력과 합리적 보수층을 등돌리게 만든 주된 요인인 시대착오적 색깔론과 냉전주의적 인식도 여전하다. 국정농단과 탄핵을 거치며 한국당은 시쳇말로 바닥까지 떨어졌다. 당은 쪼개졌고, 지지율이 한때 한 자릿수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인공지능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이념에 경도돼 시대흐름을 역행한 탓이었다. 

이념과 노선의 재정립이 절실하다는 각계의 평가가 잇따랐다. 당에 덧씌어져 있는 수구보수의 이미지를 떨쳐내야 한다는 당안팎의 요구가 거셌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한국당은 달라지지 않았다. 김병준 비대위에서도, 황교안 체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한국당의 극우보수적 색채는 점점 짙어지는 모양새다.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이른바 '태극기부대'로 대표되는 극우세력의 입지가 강화되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유가족을 모욕한 의원들에 대해 솜방망이 처분을 내린 것도 이들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잇단 막말과 망언 등이 속출하는 것도 이같은 당내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지지층이 반기는 언행을 통해 선명성을 드러내고 인지도를 높이려는 속내다. 실제 주목도가 떨어지던 김순례 의원은 '5·18 망언' 이후 당내 인지도가 급상승해 최고위원으로 당선되는 파란을 연출했다.

당내 개혁이 지지부진하자 한국당이 추진하고 있는 보수통합 명분도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전 대표는 한국당의 개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대표적인 인사다. 그는 지난 3일에도 일각에서 제기되는 한국당과의 통합 가능성을 일축하며 쓴소리를 날렸다.

이날 오후 경북대학교에서 열린 특강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한국당이 개혁보수의 길에 나오는 것이 대한민국 정치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아직까지는 전혀 가능성이 안 보인다"라라 "그런 상태에서 보수통합 이야기를 꺼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라고 일갈한 것.

앞서도 유 전 대표는 "당이 변화나 혁신할 의지가 없어보인다. 2016년 새누리당을 탈당한 이후 변화한 게 없다"(4월 9일), "크고 힘은 있지만, 그저 누워 있고 옆에 서 있기만 한 무리"(4월 28일)라며 한국당을 비판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한국당에게서 개혁과 혁신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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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대표가 강조한 미래와 통합은 어떤가. 미래와 통합의 전제조건은 상대를 향한 이해와 존중, 포용에 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서로의 간극을 좁혀갈 때 갈등을 극복하고 통합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황 대표의 지난 100일은 어땠을까. 황 대표는 대표에 선출되자마자 "문재인 정부의 폭정에 맞서서 국민과 나라를 지키는 치열한 전투를 시작할 것"이라고 취임 일성을 날렸다. 당의 방향을 강경투쟁 노선으로 잡겠다는 신호탄이었다.

이후의 과정은 모두가 안다. 3월 임시국회에서 '반짝' 의정활동을 했던 것을 제외하면 한국당은 지금껏 국회 의사일정을 전면 거부하고 있다. 한 달을 훌쩍 넘긴 장외투쟁 역시 언제 멈출지 알 수 없다. 그 사이 추경안, 최저임금법 개정안, 근로기준법 개정안 등 중요 법안 처리가 올스톱됐다. 

아이러니다. 19일 동안 전국 각지를 돌며 '민생투쟁'에 나섰던 황 대표였다. 그런데 민생을 위해 투쟁에 나선 한국당이 정작 민생을 외면하고 있다. 정치의 기본인 대화도, 타협도 실종됐다. 모든 책임은 오로지 정부·여당의 몫이다. 잘못을 인정해야 국회를 정상화시키겠다고 어깃장을 부린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막무가내도 이런 막무가내가 없다. 국회 파행의 책임이 한국당에게 있다는 여론이 훨씬 더 높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짐짓 딴소리다. 국회법을 어긴 당사자들이 '헌법파괴', '의회민주주의의 조종(弔鐘)'을 외친다. 

정부·여당에 반하는 것이라면 국가안보와 외교, 평화도 소용없다. 군더러 정부 지침을 거스르라고 선동하는가 하면, 당리당략을 위해선 외교기밀을 폭로해도 문제될 게 없다. 한미공조를 이간질하고, 남북평화와 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공공연하게 남남갈등을 부추긴다.

황 대표 취임 100일 동안의 일들이 대개 이렇다. 도대체 이 모습 그 어디에 개혁, 그리고 미래와 통합이 있다는 건지 알 수 없다. 물론, 그 사이 한국당에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탄핵 사태 이후 숨죽이고 있던 '샤이 보수층'이 돌아왔고, 끝모르게 추락하던 지지율도 탄핵 이전의 상태를 회복했다.

황 대표 자신의 정치적 입지도 탄탄해졌다. 당초 우려 섞인 전망도 있었지만 지난 100일 동안 명실상부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다졌다는 평가다. 민생투쟁 대장정을 대권을 위한 몸풀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황 대표 취임 이후 되풀이되고 있는 강경일변도의 행보가 부메랑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한국당의 극단적인 대여투쟁이 지지층 결집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잇따른 망언·막말과 장기 국회 파행이 이어지면서 한국당의 지지율은 다시 하락세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정책과 대안 없는 강경 대여투쟁만으로는 중도층을 껴안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정치 입문 전부터 중도 확장은 황 대표의 약점으로 지적돼 왔다. 황 대표가 지난 5일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30%대의 콘크리트 지지세력으로는 내년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고 강조한 것도 그런 이유일 터다. 중도로의 외연확장 없이는 어렵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다는 뜻이다.

공안검사 출신인 황 대표는 법치와 체제, 질서를 중시한다. 평화와 복지, 경제민주화를 지향하는 시대정신과 상충한다. 줄곧 권력의 중심에 있던 그에게 개혁을 기대하기도 난망이다. 개혁의 성패는 전적으로 기득권 타파 의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황 대표는 외연확장에 성공할 수 있을까. 핵심은 지금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느냐다. 근본을 바뀌지 않으면 100일, 1년이 된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말과 행동의 불일치를 분별하지 못할 만큼 시민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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