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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홍준표의 신년기자회견에 언론의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

지난 10일 열렸던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은 확 달라진 형식으로 커다란 화제가 됐다. 먼저 각본이 사라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이 잘 짜여진 한 편의 상황극이었다면, 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은 '좌충우돌' 리얼버라이어티에 견줄만 했다. 청와대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대통령과 기자들이 자유롭게 질의응답하는 기자회견을 기획했고, 이를 위해 사전에 질문 내용과 질문자를 선정하지 않는 파격적인 방식을 도입했다.

대통령이 직접 질문자를 지명하는 형식으로 진행된 기자회견은 질문권을 얻기 위한 기자들간의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기도 했다.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 인형을 흔드는 기자가 있는가 하면, 손팻말이 등장하기도 했고, 종이와 수첩을 크게 흔드는 기자들도 있었다.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대체로 우호적인 평가가 많았다. 사전에 기획된 시나리오대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합'을 맞췄던 이전 정부와는 달리 연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함을 잘 구현해냈다는 지적이다. 특히 외신기자들의 호평이 이어져 눈길을 끌었다. 


이날 질문권을 얻었던 워싱턴포스트의 안나 파이필드는 "대통령 기자회견이 이렇게 오래 지속된다는 게 놀랍다. 75분이 막 지나는 중"이라며 놀라움을 표시했고, 영국 BBC 특파원 로라 비커는 "문 대통령은 모든 질문에 답하는 데 한 시간이나 할애했다. 그는 언론과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소감을 남겼다.

CNN, NBC 등 주요 외신 역시 청와대의 기자회견 방식을 높이 평가하면서 회견 내용을 비중있게 보도했다. 그들은 문 대통령의 언론관에 주목하면서 이전 정부와는 확연하게 달라진 현장의 분위기를 힘주어 강조했다. 요컨대, 질문자와 질문 내용 등을 조율한 채 짜맞춘 각본대로 진행하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기자들과 자유롭게 질문하고 답하는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에 자극을 받았던 것일까.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 방식을 그대로 따라해 화제다. 22일 여의도 한국당 당사에서는 홍 대표의 신년기자회견이 펼쳐졌다. 기자회견에 앞서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기자회견문 발표 이후 자유롭게 질문 답변을 하면 된다"며 "손을 들어주면 홍 대표가 직접 지명하고, 저희들이 마이크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방식을 설명했다.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과 동일한 형식으로 진행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오마이뉴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기자회견이 시작되자 홍 대표는 '독불장군'의 위용을 마음껏 과시하며 기자들의 빈축을 샀다. 말이 '직접 지명, 자유 질의' 방식이지 내용은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과 달라도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예의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기자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던 홍 대표의 기자회견 장면들을 꼽아봤다.

홍 대표는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이 시작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뜨겠다고 말해 기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애시당초 이날 기자회견은 직접 질문 방식에 맞지 않는 좌석배치 탓에 진행에 애를 먹었다. 기자회견 장소였던 여의도 당사 앞쪽에 카메라 기자들이 몰리면서 뒤쪽에 있던 기자들이 홍 대표의 얼굴을 볼 수 없었던 것. 이 와중에 홍 대표는 앞쪽에 있던 기자들의 질문이 끝나자 "질의가 없으면 가겠다"는 무성의한 태도를 내비쳤다.

홍 대표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질문을 하지 말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대구 북구을 당협위원장 '셀프공천' 논란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내가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려고 당 대표를 맡은 게 아니다. 더 이상 그 질문은 이제 하지 마라"고 날선 대응을 한 것이다. 자유로운 질의응답을 이어갈 것이라던 장 수석대변인의 사전 예고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홍 대표는 자신의 답변 태도를 반박하는 기자의 질문이 이어지자 답변을 회피하기도 했다. 한 기자가 "이 질문은 하라, 저 질문은 하지 말라 하는 것도 문제이고 'KNN과 SBS를 빼앗겼다'는 식의 발언을 해서 언론에 대한 문제가 지적됐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자, "이 질문에는 답변을 하지 않겠다"고 잘라 말해 장내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자신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막말'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이를 적극적으로 방어하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홍 대표는 "막말한 사례를 얘기해주면 대답하겠다. 어떤게 막말인가. 이야기해 보라. 가장 아픈 말은 (막말이 아닌) 팩트다. 그게 철부지들은 막말로 보이는 것"이라며 자신은 막말이 아닌 팩트를 말했을 뿐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팩트를 유난히 강조했던 홍 대표는 이날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과 관련해 사실과 다른 내용을 말해 청와대가 반박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홍 대표가 기자회견의 말미에 "이쯤하자. 나는 문재인 대통령처럼 답변 써주는 프롬프터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을 보니까 앉아가지고 기자들 물으면 답변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더라. 그런데 나는 내 혼자 답변해야 한다"며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폄하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 문제였다. 


청와대는 즉각 홍 대표의 발언을 반박했다. 2개 이상의 질문이 나올 경우 질문의 요지를 정리한 것일 뿐 답변이 아니라고 해명한 것이다. 어떤 질문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실시간 답변을 프롬프터로 곧바로 출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그런가 하면 홍 대표는 이날 특정 언론사를 면박주는 볼썽사나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오마이뉴스> 기자가 나경원 의원의 '평양 올림픽' 발언에 대해 질문하자 "오마이뉴스도 우리 당 출입하냐"고 반문하며 망신주기에 나선 것이다. 홍 대표는 당 관계자가 출입기자가 맞다고 귀뜸하자, 그제서야 "출입인지 몰랐다. 죄송하다"며 답변을 이어갔다. 이는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언론사는 물론이고, 언론의 규모나 지역, 질문 내용에 상관없이 성심성의껏 답변을 이어가던 문 대통령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장면이다.

한국당은 홍 대표가 직접 지명하고 자유 질의응답하는 신년기자회견에 상당한 공을 쏟아왔다.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 방식을 그대로 차용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형식만 빌렸을 뿐 살펴본 것처럼 내용면에서는 완전히 정반대였다는 평가다.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홍 대표의 왜곡되고 편향적인, 자기중심적 언론관이 여지없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에 이번 기자회견이 홍 대표와 한국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더욱 증폭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호평이 이어지던 문 대통령과는 달리 홍 대표의 기자회견에 언론과 대중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 그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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