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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홍준표의 막말과 보수의 품격

ⓒ 오마이뉴스


연일 화제를 몰고다니는 도널드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기 전인 후보 시절부터 정제되지 않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유명세를 탔다. 대통령이 된 이후 조금 순화(?)되기는 했지만, 특유의 제스처를 동반한 트럼프의 발언들은 듣기가 거북할만큼 노골적이고 원색적이었다.

대략 이런 식이었다. 2011년 자신의 법률 고문이 모유 유축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자 "넌 역겹다"고 외치며 방을 나갔는가 하면, 2015년 4월에는 민주당의 대선후로로 거론되던 힐러리 클린턴을 향해 "제 남편도 만족을 못 시키면서 미국을 만족시키겠다고?"라며 대놓고 비꼬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폭스 뉴스의 여성 앵커가 자신의 과거 여성 비하 발언을 문제삼자, CNN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녀의 눈에서 피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그녀의 다른 어딘가에도 피가 나오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해 형편없는 젠더 감수성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멕시코 이민자들을 가리켜 "그들은 성폭행범이고 마약, 범죄를 가져오고 있다"고 인종차별적 비하 발언을 하는가 하면,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도한 여기자를 향해 "저 X이 보도한 것은 다 거짓말이다. 저X는 삼류기자다"라는 폭언을 퍼붓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정치인에게 자칫 치명적이 될 수 있는 막말이 외려 트럼프의 인지도를 높이고 지지율 상승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실제 트럼프는 토론회와 유세 도중의 막말과 폭언, 각종 구설에도 불구하고 지지율 고공 행진을 이어갔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을 깨고 공화당의 대선후보로 낙점되더니 대세론을 달리던 힐러리마저 무너뜨렸다.

트럼프가 당선된 이유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의 막말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하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실에 대해 불평·불만이 많을수록 대중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정치인에게 끌리게 된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꽉 막힌 현실로부터의 탈출이 절실한 대중은 자신들의 불만을 대리해 줄 강력한 지도자를 추종하는 경향이 있다. 유대인에 대한 대중의 증오와 적개심을 활용해 독일을 단번에 휘어잡은 히틀러가 그런 경우다. 히클러는 대중의 분노와 반감을 결집시키는 탁월한 선동력을 지닌 인물이었고, 결국 그것을 통해 절대 권력을 쟁취했다.

트럼프의 경우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트럼프의 승리는 과격한 수사를 동반한 대중 선동이 급진적인 변화를 원하는 유권자의 마음을 뒤흔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 희대의 막말 선동가가 선거에서 승리한 이유가 설명이 안 된다.


ⓒ 오마이뉴스


우리나라에도 트럼프에 버금가는 인물이 한 사람 있다. 자유한국당 대선후로로 나선 홍준표 후보가 그 주인공이다. 홍 후보는 대선 출사표를 던질 때부터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우파 '스트롱맨'이 되겠다고 공언했다. 미국·중국·러시아·일본 등에 맞서기 위해서 우리나라 역시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전술핵을 재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대북 압박을 위해 송유관을 끊어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를 향해 "TK에서는 살인범은 용서해도 배신자는 용서하지 않는다"고 공세를 펴는 것도, 좌파를 공격하며 연일 강성 귀조노조를 걸고 넘어지는 것도 그런 이유다.

강성 우파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한 홍 후보의 노력은 거침없는 막말로 이어지고 있다. 그가 원래부터 그런 인식의 소유자인 것인지 아니면 철저하게 계산된 전략적인 선택인지는 알 길이 없다. (요즘 유행하는 정치권의 언어로 국민이 알아서 판단할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한가지 분명한 것은 홍 후보가 작심하고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지율이 낮게 나오도록 조작하는 여론조사기관은 도둑놈 새끼들이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언론에서 겁이 날 것이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대통령 안 시키려고 온갖 지랄을 다한다", "집권하면 SBS 8시뉴스를 없애 버리겠다", "(SBS)사장, 본부장 다 목을 잘라야 한다",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한국의 대통령은 김정은이 되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면 전교조를 응징하겠다", "대통령이 되면 제일 먼저 손 볼 게 검찰이다", "촛불민심이라는 것은 광우병 때처럼 전교조, 민주노총 등 좌파단체가 주동이 돼 선동한 민중혁명이 아니냐" 등등등.

믿기 힘든 언어폭력이 대권후보의 입을 통해서 마구 양산되고 있다. 홍 후보의 발언들은 상대를 향한 비방과 모욕은 물론이고 욕설과 폭언까지 동반되기 일쑤다. 정제되지 않은 말은 정제되지 않은 사고에서 출력된다는 점에서, 극단의 혐오감과 불쾌감을 유발시킨다는 점에서 이는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트럼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홍 후보 역시 거듭되는 막말 논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정치 지도자의 자질과 품격과는 별개로 지역주의와 색깔론이 결합된 홍 후보의 막말이 TK지역과 보수층의 결집시키는데 대단히 효과적이라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홍 후보의 거친 언행이 선택지를 정하지 못한 보수 유권자의 표심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에서 보수진영이 승리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야권으로의 정권교체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가운데 보수 유권자의 표심이 누구에게, 그리고 얼마나 집중되는지가 이번 선거의 또 다른 관심 포인트다. 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양분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보수 적자 논쟁의 승패가 이번 대선에서 가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저는 제 성질대로 산다. 성질 참으면 암에 걸린다. 내 성질대로 살고 안 되면 집에 가면 된다."

이번 대선에 임하는 홍 후보의 마음가짐이 이 표현 속에 오롯이 녹아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는 자기 성질대로, 있는 말 없는 말, 해야 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 등을 가리지 않고 쏟아내면서 보수 유권자를 결집시켜 최소한 2등은 해보겠다는 심산인지도 모른다. 그래야 보수 적통 싸움에서 승리하고 훗날을 기약할 수 있을테니까.

그러나 '보수의 품격'이라는 말도 있다. 지난달 7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홍 후보에게 보여달라고 주문했던 바로 그 '품격' 말이다. 그래도 감이 잘 안 잡히거든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쓴 <표창원, 보수의 품격>의 일독을 권한다. 행여 정파적 논리에 이 책이 거슬린다면 로저 스크러튼의 <합리적인 보수를 찾습니다>라는 책도 있다. 보수의 품격을 갖추는 것,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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