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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한국당이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

"청년들이 한국당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청년이 좋아할만한 가치도 콘텐츠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당 의원들은 낮은 지지율의 이유를 '전교조에 잘못 배운 청년 탓'으로 돌린다. 이런 식으로는 한국당이 머지 않은 시일 내에 폭망할 것이다. (의원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1일 충북 단양 대명리조트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당협의원장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에 참석한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의 독설에 가까운 일갈이다. 이날 이 대표는 청년들이 한국당을 외면하는 이유를 그들이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시 말해 청년들의 관심을 끌만한 뚜렷한 가치와 정책, 비전이 한국당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지난 19대 대선 결과 홍준표 한국당 후보는 20대 득표율에서 5명의 후보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최종 득표율에서 2위에 오르며 선전했다는 자평을 내렸지만 20대 득표율만 놓고 보자면 꼴찌다. 홍 후보는 한국당의 텃밭인 TK와 60대 이상의 전통적 보수층을 제외하면 20~40세대 뿐만 아니라,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표를 몰아준) 50대에서조차 문재인 후보에게 밀렸다. 

대선 이후에도 이같은 쏠림 현상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5월 4주차 주간집계에 따르면, 한국당의 20대 지지율은 전주 대비 2.8%포인트 하락한 3.7%를 기록했고, 30대에서는 0.9%포인트가 빠진 4.3%로 조사됐다. 반면 60대 이상에서는 4.0%포인트 상승한 26.4%를 기록했고, 보수층에서도 1.8%포인트가 오른 37.3%를 나타냈다.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한국당의 전통적 지지 지역인 TK의 민심이다. 이번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은 TK지역에서 전주보다 무려 7.9%포인트가 오른 46.4%를 기록했다. 반면 한국당은 3.1%포인트가 하락한 19.1%에 그치며 체면을 구겼다. 이는 대통령 탄핵과 대선 과정을 거치면서 50대 이상의 보수층과 TK지역의 정서에 변화가 생겼다고 해석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19대 대선의 세대별 지역별 득표율 분석과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는 한국당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달라진 환경과 변화를 직시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이날 연석회의에서 울려퍼진 이 대표의 일성처럼 한국당이 '폭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오마이뉴스


그런데 이날 연석회의에서는 한국당을 향한 쓴소리만 나온 것이 아닌 모양이다. 소설가이자 보수논객인 복거일씨는 '보수의 미래 및 자유한국당 혁신 과제'라는 제목의 특강에서 한국당이 반색할만한 이야기들을 쏟아내 주목을 끌었다. 복씨가 이날 꺼내든 소재는 '블랙리스트', '태극기 집회', '촛불집회', '국정교과서' 등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첨예한 정치·사회적 이슈들이다.


복씨는 블랙리스트 파문에 대해서 "서툴렀던 건 있지만 용감한 시도였다"고 평가하며 "언론·예술을 억압하는 것은 반대지만 적어도 정부 돈으로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폄하하고 약화시키는 작품에는 돈이 들어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화예술인들의 활동을 제약하고 자기 검열을 유도하는 반헌법적·반민주적 탄압이라 평가받는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박근혜 정부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복씨는 태극기 집회에 대해서도 극찬을 이어갔다. 그는 "보수에게는 아주 희망찬 현상이 있다. 바로 태극기 집회다. 그 열기는 대단하고 순수하다"며 "자기 시간, 자기 돈으로 나와서 몇 시간씩 행진하고 깃발 흔들고 기부까지 한다. 이런 운동은 세계적으로 봐도 이해가 안 될 만큼 없다"며 태극기 집회를 한껏 치켜세웠다.

반면 촛불집회에 대해서는 상반된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경제 때문에 민심이 사나워져 정권이 안 힘들수가 없었다. 박근혜 정권 불행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경제가 불안했다는 점인데 촛불 민심이 그걸 뜻한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정부 내내 이어져온 경제불안이 촛불 민심의 동인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이어 "젊은 사람들이 이념을 뭘 알겠나, 못 살겠다고 한 것"이라며 촛불집회에 참가한 청년 세대를 깎아내리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를 짓누르던 불평등과 불공정, 부조리와 모순에 저항하는 청년 세대들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사회 개혁 요구를 한낱 현실에 대한 불만과 투정의 산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복씨는 새 정부 들어 폐기된 국정교과서에 대해서도 말을 이어갔다. 그는 "박 대통령의 지시로 국정교과서가 환원됐는데 국정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들이 좌파들로부터 공격받을 때 정부가 보호해주지 못해다"면서 "이념적으로 편향된 교과서로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 무엇으로 막겠나"라고 목소리를 드높였다.


ⓒ 오마이뉴스


같은 날 같은 곳에서 펼쳐진 이질적인 장면들을 보고 있자니 씁쓸함과 한심함이 교차한다. 청년 세대의 마음을 대변했던 이 대표와 한국당 지지층의 심리를 엿볼 수 있는 복씨에게서 한국당이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청년들이 한국당을 지지하지 않은 이유는 정책과 콘텐츠 부족이 전부는 아니다. 그 외에도 진영 논리와 색깔론, 지역주의와 권위주의에 의존하는 한국당의 고루한 철학과 이념이 청년 세대의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을 쫓아가지 못하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태극기 집회는 말할 것도 없고, 박근혜 정부의 크나큰 실착이라 평가받는 블랙리스트 사건, 국정교과서 문제 등은 청년 세대에게 사회공동체의 보편적 상식과 가치를 위해하는 시대착오적인 행태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복씨가 극찬했던 태극기 집회는 욕설과 폭력, 무질서가 난무하는 관제 데모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순수한 의도에서 자발적으로 거행됐다는 복씨의 주장과는 달리 전경론을 통해 대기업의 돈이 흘러들어간 사실이 드러나는가 하면, 청와대의 지시 정황까지 드러나면서 청년 세대로부터 철저히 외면받고 있는 중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보수층을 대표한답시고 특강에 나선 복씨는 지금 무슨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인가. 당의 미래가 돼야 할 청년 세대들의 시선에는 구태스럽고 너절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외려 보수층의 눈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전가의 보도처럼 인식되고 있으니 이 어찌 '씁쓸'하고 '한심'하지 않을까.


새로운 피가 수혈되지 않는 조직은 괴사하기 마련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당 역시 새로운 인물과 정책, 비전으로 시민주권 시대에 걸맞게 변모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당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극강의 패권주의를 보여준 지난 총선, 국정농단 사태와 탄핵 과정에서 보여준 수구적 태도, 촛불 민심에 담겨있는 적폐청산에 대한 당위 왜곡에 이르기까지 한국당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고 있다.


한국당은 닳디 닳은 진영 논리와 색깔론, 망국적인 지역주의에 의존하는 고루한 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울러 청년 세대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면 미래는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런 식이라면 "머지 않은 시일 내에 폭망할 것"이라는 청년 세대의 섬뜩한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60대 이상 보수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다고 한들 그들이 자연법칙마저 거스를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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