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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한국당의 논리대로라면, 반역행위의 원조는 2014년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이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의 방남을 비판하는 데 화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김 부위원장의 방남 소식이 알려진 22일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수용불가' 입장을 천명하더니, 이후 파상적 공세를 펴면서 총력전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23일 청와대를 항의 방문한 데 이어 25일에는 파주 통일대교 점거 농성을, 그리고 26일에는 서울 청계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는 등 공세의 수위도 점차 높여가고 있다.

물 만난 물고기가 따로 없다. 건수라도 잡았다는 듯이 당력을 있는 힘껏 끌어올리고 있는 한국당의 모습이 영락없는 그 꼴이다. 북한발 안보 이슈가 보수진영의 전가의 보도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다. 한국당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즐겨쓰는 정치공학적 '상수'가 바로 안보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안보 이슈를 부각시켜 보수층을 결집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국면을 전환시켜 온 경험은 그들의 전략적 자산이다.

김영철 방남에 한국당이 결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것은 그들의 본능이자 관성이라 할 터다.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여파로 한국당은 시쳇말로 '쪽박'이 난 상태다.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9년 동안의 총체적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면서 합리적 보수층은 한국당에 등을 돌린지 오래다. 1년이 넘도록 10%대의 박스권에 갖혀있는 한국당의 정당 지지율이 그 방증일 것이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은 여전히 고공행진 중에 있다. 집권 2년 차에 접어들었음에도 문 대통령은 60% 중반대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고 민주당 역시 50%에 가까운 높은 지지율을 나타내고 있다. 눈여겨 봐야 할 것은 한국당이 평창동계올림픽에 발맞춰 노골적인 색깔론 공세에 나섰음에도 지지율에 변화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6.13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한국당이 대단히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함의다.

한국당의 사생결단식 공세는 이와 같은 현실인식에 기인한다. 당안팎으로부터 지방선거 비관론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가운데 이대로는 공멸할지 모른다는 절박함이 잠자고 있던 본능을 깨우고 있는 것이다. 한국당이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정부여당의 실정을 끊임없이 부각시켜 판을 거세게 흔들어야 한다. 전술한 것처럼 보수층을 결집시켜 국면을 타개하기에는 그만한 방법이 또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지뢰 도발의 배후로 지목받고 있는 김영철의 방남은 놓칠 수 없는 기회라고 판단했을 터다.

이는 한국당이 "김영찰 사살", "살인마", "전범", "철천지원수", "주사파 정부", "뼈속까지 친북", "반역행위" 등의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수사를 총동원하고 있는 것만 봐도 자명해진다. 전통적 보수층의 반공 이데올로기를 자극시켜 최대한의 정치적 효과를 얻어보겠다는 선전·선동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한국당은 김무성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김영철 방한저지 투쟁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김영남 방남 이슈를 정치쟁점화시키기 위해 총공세에 나서고 있는 모양새다.


오마이뉴스


그러나 한국당의 정치공세가 원하는 만큼의 정치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한국당의 주장이 지극히 '이율배반'적이라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논리의 일관성이 전혀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당이 김영철 방남을 문제 삼자 당장 한국당의 과거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언론에 공개된 것처럼 김 부위원장은 박근혜 정권 시절 이미 한국 땅을 밟은 전력이 있다. 2014년 10월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 군사회담에 북측 대표로 참석한 것이다.

당시 새누리당(현 한국당)은 대변인 명의의 논평에서 "남북대화가 대화와 도발의 국면을 오가는 상황이지만 대화의 시도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매우 바람직하다. 남북대화가 앞으로도 꾸준히 이뤄지길 기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에도 김 부위원장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의 주범으로 지목받던 상황이었지만 새누리당은 여기에 대해 일절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김영철 방한 저지 투쟁위원회' 위원장인 김무성 의원의 과거사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한국당이 김 부위원장의 방남에 색깔론을 덧씌우며 대여투쟁을 강화하자 투쟁위원장인 김 의원의 과거 행적이 덩달아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김 의원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한 고 김양건 통일선전부장, 황병서 북한국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등과 만나 환담한 바 있다. 당시 김 의원은 북한 군 최고 실세인 황 국장과 환하게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하기도 했다.

황 국장은 이번에 방남한 김 부위원장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군부 내 서열과 위상이 높은 거물 중의 거물이다. 북한군 지휘체계의 특성에 비춰 볼 때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같은 대남 도발에 황 국장이 개입되어 있을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북한군 서열 1위였던 황 국장이 연평도 포격을 주도했다고 의심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김영철과 악수하면 대통령으로 인정 못한다"며 으름장을 놓던 김 의원이 이미 2014년 연평도 포격의 주범으로 지목받는 인물과 버젓이 악수를 한 것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내로남불'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비등해지자 한국당은 "2014년 판문점에서 이뤄진 회담은 적군과 적군이 만나는 양국 고위급 군사회담"이라고 황급히 진화에 나섰다. 판문점에서 이뤄진 당시 군사 회담과 김 부위원장이 방남은 비교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다는 해명이다. 그런가 하면 한국당은 김 의원이 북측 고위인사를 환대했던 과거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이렇다할 설명을 못하고 있는 상태다. 자신들의 이중적 잣대가 드러나자 궁색하기 짝이 없는 자기부정과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셈이다.



무릇 주장이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논리적 타당성과 합리성, 일관성 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당의 주장에는 이것이 결여되어 있다. 한국당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2014년 당시 군사회담 자체를 열지 말거나 적어도 김 부위원장의 자격에 문제를 제기했어야 옳다.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당은 자신들이 집권할 당시에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의 주범들과 아무 거리낌 없이 만났으면서도 지금은 그와는 전혀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래서는 공감을 이끌어 내기 어려울 뿐더러 상대방을 설득할 수도 없다. 당리당략에 따라 입장이 뒤바꾸는 이율배반적 행태에 수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남북군사회담과 남북교류협력의 상대였던 인물을 돌연 "살인마", "사살할 대상"으로 낙인찍었고, 문 대통령 또한 반역행위자로 규정했다. 그러나 그 주장대로라면, 반역행위의 원조는 사살할 대상과 대화를 이어간 2014년의 새누리당이라는 논리가 성립한다. 한국당의 공세가 결국 '자기 얼굴에 침뱉기'라는 의미다. 한국당의 터무니 없는 정치공세가 효과를 거두기 힘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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