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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골든크로스'는 실현될 수 있을까?

ⓒ 오마이뉴스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대선 이후 살얼음 위를 걷는 듯 했던 자유한국당이 선거 패배의 책임론과 진로 모색을 놓고 폭발한 것이다. 17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당 중진의원 간담회 자리에서다. 이날 한국당은 친박계와 비박계, 당권파와 비당권파로 나뉘어 고성과 막말이 난무하는 낯뜨거운 장면을 연출했다. 해묵은 '친박-비박'간의 앙금이 또 다시 터져나왔다는 지적과 함께 새 지도부 선출을 앞두고 당권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시작된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포문은 대선 패배 이후 미국에 체류 중인 홍준표 전 대선후보가 열었다. 홍 전 후보는 17일 오전 페이스북에 "박근혜 팔아 국회의원 하다가 박근혜 탄핵 때는 바퀴벌레처럼 숨어 있었고, 박근혜 감옥 가고 난 뒤 슬금슬금 기어 나와 당권이나 차지해볼려고 설치기 시작하는 사람들 참 가증스럽습니다. 더 이상 이런 사람 정치권에서 행세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친박계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홍 전 후보의 친박 비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선후보로 선출되기 전인 지난 2월16일 '성완종 리스트' 관련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친박은 이념이 없다. 의원 한번 해보고 싶어서 박근혜 대통령 치맛자락 잡고 있던 사람들이다. 친박은 궤멸할 것이라고 진작부터 봐왔다"고 독설을 날린 바 있고, 이틀 전인 15일에도 "한국당 지지율이 13%대로 폭락한 것을 봤습니다. 대선 대 치솟았던 지지율이 이렇게 폭락한 것은 우리 국민들이 자유한국당을 실패한 구 보수주의 정권세력들의 연장으로 보기 때문입니다"라며 힐난하기도 했다.

홍 전 후보가 친박계에 공세적으로 나가고 있는 것은 결국 당권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당 지도부 교체가 유력한 상황에서 당내에 친박 책임론을 부각시켜 주도권 싸움에서 앞서가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대선을 위해 잠시 손을 잡았지만 홍 전 후보는 친박계를 가리켜 '양박'(양아치 친박)이라 칭하는 등 이전부터 불편한 관계를 이어온 터였다.

홍 전 후보는 한나라당(현 한국당) 대표 시절부터 '친박-친이' 사이의 갈등의 내막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인물이다. 당대표가 되기 전부터 당내 계파주의를 경계해왔던 그는 친박계에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지난 2009년 6월에는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박근혜 전 대표를 옹호하기에 급급한 친박계를 '종교집단'에 비유했을 정도였다. 대선을 고려해 협력관계를 유지했을 뿐, 홍 전 후보와 친박계는 추구하는 가치와 정치 성향 자체가 다른 것이다.

홍 전 대표는 친박 계파정치 아래에서는 당의 미래가 없다고 확신하고 있는 듯 보인다. 친박계를 극단의 혐오 곤충인 '바퀴벌레'에 비유하는 등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대선을 위해 잠시 힘을 합쳤던 친박계와의 밀월관계를 깨고 본격적으로 당권에 도전하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문제는 당권을 노리고 있는 홍 전 후보에게 당내 세력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홍 후보가 당권을 잡으려면 바른정당 탈당파를 위시한 당내 비주류 세력과의 공조가 절실하다. 


이와 관련 한국당 원내대표를 지낸 비박계 중진 정진석 의원의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 의원은 이날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갈 수 없다. 정부 수립 이후 최대의 보수 참패다. TK 자민련으로 남아서 대체 뭐 할 건가"라며 "이제는 정말 보수의 존립에 근본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육모 방망이'를 들고 뒤통수를 뽀개버려야 한다'며 격앙된 반응을 내보였다. 당내 혁신과 개혁의 대상으로 친박계를 겨누고 있다는 점에서 홍 전 후보의 입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홍 전 후보와 비박계가 총구를 겨누자 친박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친박 중진인 홍문종 의원은 이날 회의에서 "바퀴벌레라고 하면서 페북에 썼다니, 이게 제정신인가. 그동안 선거운동하면서 목이 터져라 우리가 살고 당이 사는 일이라고 얘길 했는데, 바퀴벌레고 탄핵이고 제정신이냐. 낮술했나.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비분강개했다.

유기준 의원 역시 "홍 후보의 노고에 대해 상당히 인정하지만 선거 과정에서 보여준 여러가지 일들, 예를 들면 정치 지도자는 품격있는 언어 사용하고 그에 맞는 행동도 해야 하는데, 그 부분에 있어 아쉬운 점이 많았다"며 홍 전 후보를 에둘러 비판했다.


ⓒ 오마이뉴스


이번 대선을 분석한 결과 한국당은 TK와 PK, 그리고 60대 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영남지역과 노령층이 한국당의 주요 지지기반이라는 뜻이다. 정당의 존립과 미래를 결부시켜 생각한다면 이는 대단히 심각한 위험 신호가 아닐 수 없다. 지역주의와 고령층에 의지하는 이상 한국당은 결국 쇠락해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나경원 의원은 "강남서초 같은 데를 보면 바른정당 후보가 10% 이상이 나왔다. 그쪽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유한국당이 너무 창피해서 못 찍겠다는 것이다"며 "우리 당이 보수정당으로서 그동안 부패, 무능, 수구 이런 보수하고 결별하는 모습을 진지하게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정 지역과 세대에 의존하는 당의 폐쇄성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당의 미래에 대한 깊은 우려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국당은 또 다시 내홍 중이다. 지난 2000년 대 중반부터 시작된 패권을 향한 정치적 욕망이 곪아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 모습은 지난 해 말 친박과 비박간의 치열한 권력 투쟁으로 분당까지 치달았던 당시의 정황과 아주 흡사하다. 지난 대선 당시 계파 패권주의를 청산하고 새로운 보수를 건설하겠다며 보수 결집을 주도했던 한국당의 다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한국당이 내홍에 빠져있는 사이, 보수 적자 경쟁을 펼치고 있는 바른정당은 당의 결속을 위해 집중하고 있다. 지난 15일 국회 고성연수원에서 열렸던 원내·외 당협위원장 연찬회에서는 향후 당의 진로를 두고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이날 연찬회에서는 연대론과 자강론을 두고 뜨거운 토론이 벌어진 가운데, 명분 없는 연대론보다 자강론에 주력해 위기를 극복하자는 의견이 우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무너진 보수의 가치를 재건하고, 따뜻하고 합리적인 보수를 건설하겠다는 바른정당의 모험은 당 지지율 상승으로 돌아오고 있다. 대선 직후 실시된 리얼미터의 5월 2주차(10~12일) 주간동향 집계에서 바른정당의 지지율은 2주 연속 상승한 8.3%를 기록했다. 전주에 비해 4.5%포인트가 폭락한 한국당(13.0%)과는 불과 4.7%포인트 차이다.

한국당이 거의 전 지역과 계층에서 하락세로 돌아선데 반해 바른정당은 대선 이후에도 지지율이 상승하며 한국당과의 격차를 조금씩 좁혀나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TK와 PK, 중도 보수층의 지지율 추이다. 한국당은 이번 조사에서 TK와 PK는 물론이고 60대 이상에서도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역주의와 노령층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당으로서는 충격적인 결과임에 틀림이 없다.  

반면 바른정당의 지지율 상승은 TK와 PK, 20대, 그리고 중도 보수층이 주도하고 있다. 이는 바른정당이 창당 정신으로 내걸었던 합리적 보수의 기치가 대중에게 조금씩 각인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지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줄도 모르고 권력 투쟁에 열을 올리고 있는 한국당과 불확실하지만 뚜벅뚜벅 자기 길을 가고 있는 바른정당 사이의 보수 적자 경쟁 제 2라운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는 모양이다. 토끼와 거북이의 싸움의 승자가 누구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 한국당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면, 보수 적통을 둘러싼 '골든크로스'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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