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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한국당 혁신? 안상수의 '입'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끝이 안 보인다. 자유한국당이 6·13 지방선거 참패의 후유증을 톡톡히 앓고 있다. 참담하기 그지없는 선거 결과에 좀처럼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양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잠자고 있던 '친박-비박' 간의 고질적인 계파싸움도 불거졌다. 죽기살기로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선거 패배의 책임론과 당 수습방안을 둘러싸고 '너 죽고 나 살자'식의 이전구투가 펼쳐진다. 시쳇말로 답이 없는 형국이다. 

유권자들은 지방선거를 통해 한국당에게 철퇴를 내렸다. 시대착오적인 반공 이데올로기와 수구냉전적 인식, 정부여당이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반대만 일삼는 퇴행적 구태 정치에 준엄한 심판을 내린 것이다. 2016년 촛불정국에서 드러난 변화와 개혁의 강렬한 열망을 직시하지 못한 채 과거의 패턴대로 국면을 타개하려던 안이함이 결국 대선 패배와 지방선거 참패로 돌아왔다는 분석이다. 


ⓒ 오마이뉴스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6·13 지방선거 여론조사 평가와 정계 개편 전망' 토론회에서도 비슷한 진단이 나왔다. <프레시안>, <이데일리> 등의 보도에 따르면, 한국정치조사협회가 주최하고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후원한 이번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한국당이 정치·사회적 환경의 변화를 갈망하는 국민의 뜨거운 염원을 간파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념과 지역주의에 기대 기득권을 유지해온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의 발제를 맡은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그동안의 보수 정치는 부패와 특권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가 경제 관리, 국가 운영 능력에 대한 강한 신뢰를 갖고 있었다"며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함께 그 신화는 사라졌고 믿음은 무너져 내렸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그동안 한국당을 떠받쳐온 이념·지역·정책적 틀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 현 상황에서는 "텐트를 쳐도, 비대위원장으로 누구를 데려와도 예전같은 방식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꼬집었다.  

새누리당 출신의 이상일 전 의원은 보다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이 전 의원은 "한국당은 그 인적구성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백약이 무효하다. 리노베이션이 불가능하다"면서 "비대위원장이 와서 한국당을 해산하는 게 아니라면 인적청산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이 전 의원은 이날 한국당 해산을 거론하기도 했다. 극심한 계파싸움으로 한국당의 몰락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당을 해산하고 무소속으로 각자도생 하다가 2020년 총선에서 새롭게 재탄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당을 향한 비판은 보수진영 내에서도 가열차게 터져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이었던 정두언 전 의원은 지난 20일 tbs라디오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에 출연해 "(한국당이) 언제 소멸되냐면 다음 총선에서 소멸된다"며 "왜냐하면 구제불능이다. 누가 가지도 않고, 간들 되지도 않는다. 지난 총선 때 어쨌든 별의별 해괴망측한 유치한 짓을 해서 공천을 받아서 당선이 그나마 됐는데, 그 당선도 국민의당이 있었기 때문에 표를 갈라먹어서 당선됐던 것이다. 이제 다음 총선에서 심판을 받아야 된다. 국민들한테. 지금 와서 비대위원장 누가 갈 사람도 없지만 간다고 될 것 같지도 않다"고 힐난했다. 

<조선일보>도 한국당 비판에 나서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19일 "'혹시' 했으나 '역시'로 가는 한국당"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지방선거 이후 당 수습방안을 놓고 내홍에 빠진 한국당을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한국당은 "앞으로 과거에 해왔던 '쇼'를 또 하고 2020년 총선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며 "가장 중요한 세대교체와 인적 쇄신은 거의 손대지 못할 것이다. 비대위원장이 누가 되든 의원들이 반발하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이번 지방선거의 한국당 기록적 참패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모양이다"라고 원색적으로 비꼬았다. 

<중앙일보> 역시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중앙일보>는 20일 "보수 아닌 반동 한국당, 폐업이 답"이라는 칼럼에서 "급진주의자는 너무 멀리 간 사람이고, 보수주의자는 충분히 가지 않은 사람이며, 반동주의자는 아예 가지 않으려는 사람이다"라는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말을 인용하며, "한국당은 문을 닫는 게 옳다. 그게 유권자들의 표심이다. 어영부영 시늉으로 될 일이 아니다. 척박한 땅에서는 씨를 뿌려도 싹이 나지 않는다. 완전히 갈아엎고 불을 놓아야 한다. 야초와 잡목을 태워 지력을 회복하는 화전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일갈했다. 

지방선거 이후 지독한 내분에 휩싸인 한국당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이처럼 비판 일색이다. 요약하면, 극약처방이 아니라면 누구 말마따나 '백약이 무효'라는 것이다. 냉철한 반성과 성찰, 환부를 모조리 도려내겠다는 강한 의지, 과감하고 결연한 쇄신책과 인적 청산 등이 한데 어울어져야 한다는 것일 테다. 그러나 한국당은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머리를 맞대고 힘을 규합해야 할 시기에 내부 총질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지방선거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의원총회를 열었지만 거센 비방전에 정작 중요한 당 수습방안 논의는 지리멸렬하다. 


ⓒ 오마이뉴스


관련해 눈여겨 봐야 할 것은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준비위원회다. 준비위가 누구를 인선하느냐에 따라 한국당 혁신비대위의 성격과 역할을 가늠해볼 수 있는 탓이다. 현재 한국당은 혁신비대위의 역할을 놓고도 계파간 이견이 속출하고 있는 상태다. 김성태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를 비롯한 비박계는 혁신비대위에 인적 청산을 포함한 전권을 일임하자는 입장인 반면, 친박계는 전당대회 전까지 당의 혼란을 수습할 관리형 비대위를 원하고 있다. 친박계는 혁신비대위에 전권을 내줄 경우, 자신들이 인적 쇄신의 표적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혁신비대위의 역할을 둘러싼 '친박-비박' 간의 정치공학적 셈법과는 별개로, 한국당에 강력한 외부 충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보수진영에서조차 한국당 해체 주장이 나오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모두를 깜짝 놀랄게 할 쇄신안이 나와야 그마나 여론을 환기시킬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식이라면 달라진 유권자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혁신비대위 준비위의 책무가 막중해 보이는 이유다. 

"소위 온고이지신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과거의 추억은 취하면서 변화시킬 건 변화하고 이래야 되는 것이지 이것을 그냥 하나부터 끝까지 다 바꾼다. 이것은 특히 정치 현실에서는 잘 맞지 않는 얘기고요. 말로는 또 쉽지만 실제로 실행할 때는 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굉장히 변화하고 개혁하는 노력을 하고 이제 그런 것도 국민 눈높이에서 돌아가도록 해야 되겠습니다마는 또한 현실은 현실과 같이 접목이 되는 부분도 인정을 해 달라 이런 주문도 할 수 있죠."

25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안상수 혁신비대위 준비위원장은 "자유한국당의 재탄생을 위해서는 지금 거명되는 이런 분들보다는 정말 토양, 자유한국당 토양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인물이 와야만 정당혁신 가능한 거 아니냐, 이런 국민적 인식이 있다"는 사회자의 지적에 위와 같이 답했다. 조만간 출범하게 될 혁신비대위의 역할과 위상이 행간 곳곳에서 묻어난다. 한마디로 물갈이 수준의 전면적인 쇄신작업과 인적 청산은 곤란하다는 의미다.  

안 위원장은 28일 의원총회에서도 비슷한 요지의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혁신비대위원장 인선과 관련해, "신선한 이미지를 생각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 당내 화합과 추진력을 같이 가질 수 있는 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밝혔다. 강력한 쇄신작업보다는 내홍에 휩싸여있는 당을 화합으로 이끌 수 있는 인물을 염두해두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지방선거를 통해 확연히 드러난 민심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 듯한 인식이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과연 '한국당의 혁신이 가능하겠느냐' 하는 점이다. 지방선거 결과가 말해주고 있듯, 대다수 정치 전문가가 지적하고 있듯 더 이상 과거의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환골탈태의 심정으로 진정성있는 쇄신작업을 펼쳐도 될동말동한 암울한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당은 여전히 옛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볼썽사나운 그 '관성' 때문에,  진저리 쳐지는 기득권에 대한 미련 때문에 이 지경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국당 내홍이 끝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놀라운 건, 당이 소멸할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집안싸움에 날새는 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강력한 개혁드라이브로 당의 쇄신을 주도해야 할 혁신비대위 역시 크게 기대할 게 없어 보인다. 아직 멀었다. 유권자로부터 사망선고를 받았음에도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 모양이다. 보수진영 내부에서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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