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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한국당 쇄신안이 공감받지 못하는 이유

ⓒ 오마이뉴스



자유한국당이 지난 15일 단행한 인적 쇄신안이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다. 


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오후 현역의원 21명이 포함된 '국회의원 선거구 조직위원장 임명안'을 의결했다. 그에 따르면 253개 전체 지역구 중 173곳에서 기존 당협위원장의 잔류가 확정됐고, 79개 지역은 공모 대상으로 지정됐다. 나머지 한 곳인 강원태백·횡성·영월·평창·정선 지역구는 현 당협위원장인 염동열 의원의 1심 재판 결과를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비대위는 2016년 총선 당시 공천 파동과 총선·대선·지방선거 참패 책임,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관련 인사, 기득권 안주 인사 등을 혁신 대상에 포함시켰다고 밝혔다. 김병준 비대위원장 역시 쇄신안 발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조강특위 외부위원들이 많은 고심을 한 결과"라며 "너무 가슴 아픈 결정을 했기 때문에 마음을 좀 추스려야겠다"고 말했다. 국정농단과 탄핵, 연이은 선거 패배로 당의 존립이 위태로워진 상황에서도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해왔던 핵심 인사들에 대해 책임을 물었다는 뜻이다.

한국당 쇄신안이 발표되자 당 안팎의 비상한 관심이 쏟아졌다. 쇄신 대상에 김무성·최경환·윤상현·홍문종·권성동·김용태 의원 등 당내 유력 인사들이 대거 포함돼 있는 데다, 20%에 육박하는 현역 의원이 당협위원장 자리를 박탈당하거나 공모 배제 대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31.2%에 달하는 당협위원장 교체 비율 역시 예상을 웃돈다는 평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김병준 비대위가 발표한 쇄신안에 대해 상반된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번 쇄신안을 한국당 인적 혁신의 결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쇄신안의 내용은 물론이고 이후 한국당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흐름들이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번 인적 쇄신으로 21명에 이르는 현역 국회의원들이 당협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숫자로만 보면 결코 적지 않은 수치다. 교체 대상 역시 친박계와 비박계의 중량감 있는 인사들로 채워졌다. 물갈이 규모와 인물의 면면을 놓고 보자면 비대위가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내용을 뜯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21명의 의원 중 김무성·황영철·윤상직·정종섭·이군현 의원 등은 이미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최경환 의원 등 재판에 넘겨진 인사들도 11명에 달한다. 현역 의원에 대한 실질적인 물갈이 규모는 대여섯 명 수준에 불과한 셈이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역시 이같은 사실을 지적했다. 그는 17일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21명이라는 현직 국회의원들이 당협위원장에서 탈락을 했으니까 그 숫자만 보면 크다"면서도 "알맹이를 들여다보면 다음 선거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불출마 선언한 분들, 재판에 계류 중인 분들 다 합하면 15명인가 16명이 된다는 것 아닌가. 사실상 쇄신이라고 하면 5~6명 정도니까 알맹이를 따지면 큰 폭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더욱 의아스러운 건 당내 분위기다. 예상과 달리 크게 동요하는 기색이 없다. 해묵은 계파 갈등을 촉발시키는 도화선이 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쇄신 대상으로 지목된 인사들 상당수가 비대위의 결정에 수긍하면서 쇄신안 발표에 따른 혼선과 갈등이 빠르게 수습되는 모양새다. 홍문종·홍문표·김정훈 의원 등 일부가 유감을 표하며 반발했지만, 비대위의 결정에 반기를 드는 강력한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

외려 눈길을 끄는 건 쇄신안의 후폭풍을 잠재우려는 당 지도부의 행보다. 김 위원장은 17일 비대위회의 직후 "정말 백의종군하면서 국가에 공을 세운 분은 우리가 다시 재등용을 하고 그런 일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며 "이번에 배제된 분들도 앞으로 2020년 21대 총선 공천 때까지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이번 쇄신안이 총선 공천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며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쇄신 작업에 참여했던 이진곤 조강특위 외부위원도 비슷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열심히 노력해서 하는 분들에게 만회할 기회조차 박탈해서는 안 된다"며 "(쇄신안이) 영원히 정치의 길을 막아버리고 그런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 15일 비대위 의결 직후 "당협위원장 배제 명단에 오른 의원이라도 남은 1년간 의정활동을 열심히 한다면 다시 구제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하지 않나"고 반문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쇄신안 결과가 공천 탈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 의원들의 향후 의정 활동과 내년 2월 전당대회 이후 들어서게 될 차기 지도부의 정치적 결단에 따라 일부 의원들이 구제받을 수 있는 여지를 준 것으로 풀이된다. 

엄청난 후폭풍에 휩싸이게 될 것이라는 당초 전망과 달리 당내 반발이 크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차기 총선까지는 1년 6개월의 시간이 남아있는 데다가, 비대위 결정이 뒤집힐 수 있는 가능성이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당 쇄신안에 뒷말들이 무성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당 쇄신안에는, 윤 전 장관의 말마따나 알맹이가 없다. 이것 떼고 저것 떼고 나면 실제 쇄신 대상에 오른 현역 의원은 고작 5~6명에 지나지 않는다. 쇄신 대상에 오른 인사들의 조직적인 반발이나 계파 갈등도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눈가림용 처방에 불과하다고 의심받을 수 있는 정황들이 도드라지고 있을 뿐이다. 한국당의 쇄신안을 두고 일각에서 '무늬만 쇄신'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