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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한국당 원내대표 경선? 싹수가 노란 이유

이렇게 존재감이 없을 수가 있나. 아니, 이처럼 무색무취하게 진행되는 선거도 있었던가. 아무리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로 전락했다지만 명색이 대한민국 제 1야당이 아닌가. 그것도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을 바로 턱밑에서 추격하는, 무려 116석의 의석수를 지난 거대 야당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참 요상하다. 원내대표 경선이 불과 일주일 뒤라는 것을 생각하면 분위기가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기 때문이다. 요즘, 뭘 해도 안 되는 자유한국당 얘기다.

한국당 원내대표 경선은 오는 12일로 예정돼 있다. 오늘부로 정확하게 일주일 남았다. 그런데 아직까지 '선수'도 확실히 정해지지 않았다. 지난달 28일 한선교 의원이 공식적으로 출마 선언을 한 이후, 언론을 통해 '하마'평이 오르내리는 인사만 해도 어림잡아 예닐곱은 된다. 홍준표 대표가 밀고 있다고 알려진 김성태 의원, 친박계 인사인 홍문종·유기준 의원, 중립성향의 이주영·조경태·한선교 의원 등이 그들이다.

언론에 따르면 이주영·조경태·한선교 의원은 7일까지 단일후보를 세우는 것에 원칙적으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6일 단일화 토론회를 연 뒤, 그날 오후부터 7일까지 이틀간 여론조사를 진행해 단일후보를 확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친박계 후보인 홍문종·유기준 의원은 이미 단일화 의사를 밝힌 상황. 이에 한국당 원내대표 경선은 '친홍' 김성태 의원과 '친박' 단일후보, '중립지대' 후보간의 3파전이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원내대표 경선이 코 앞으로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관심은 뜨뜻미지근하다. 세간의 관심을 끌만한 이슈나 의제,  인물 등이 달리 눈에 띄지 않는 탓이다. 아무리 한국당이 처해있는 현실을 감안한다 해도 처량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직후 치뤄진 지난 2016년 12월 원내대표 경선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정우택 후보와 나경원 후보간의 2파전으로 전개된 당시 경선은 탄핵사태 이후 존폐 위기에 몰린 당을 책임질 원내사령탑을 선출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특히 국정농단 사태의 공동정범이라 지목받았던 친박계가 전폭적으로 지지한 정우택 후보와 계파 청산과 당 혁신을 전면에 내세운 비박계 나경원 후보의 대결이란 점에서 열기가 아주 뜨거웠다. 당시 경선은 친박계와 비박계간의 정치적 운명이 걸린 혈전으로,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국민적 심판을 받은 새누리당이 도로 친박당이 될 것인가 아니면 변화를 선택할 것인가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선거이기도 했다.

당시 경선이 뜨거웠다는 것은 두 후보간의 근소한 표 차이에서도 확인된다. 친박의 노골적인 지원을 받은 정우택 후보와 비박계 나경원 후보의 표 차이는 겨우 7표에 불과했다. 뚜껑을 열기 전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일대 혼전이 펼쳐졌던 셈이다. 당시 새누리당은 국정농단 사태와 탄핵 역풍으로 분당 위기가 고조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당 해체에 준하는 혁신과 쇄신, 환골탈태 요구가 각계각층에서 빗발치기도 했다. 원내대표 경선에 당안팎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 오마이뉴스


그런데 이번 경선은 그와는 영 딴판이다. 좋든 싫든 사람들의 관심 밖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을 터다. 먼저 한국당에 대한 기대치가 고갈됐다. 어찌보면 '정우택·나경원'의 빅매치는 한국당이 변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고 볼 수 있다. 민의에 반하는 계파 패권주의를 배격하고 상식에 입각한 보수혁신의 길을 선택했더라면 한국당은 지금과 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 지역주의와 반공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수구적 행태를 청산하고 시대 흐름에 걸맞는 정치 철학과 비전을 제시했더라면 상황은 확연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당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탄핵을 당해 정권이 붕괴돼도, 대선에서 참패를 당해도, 민심이반의 징후가 뚜렷해도 도무지 변화할 줄을 모른다. 마치 진화를 멈춘 원시생물처럼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번 경선만 하더라도 그렇다. 친박 패권주의를 청산하라는 민심의 요구를 비웃기라도 하듯 후보군에는 여전히 친박계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홍준표 대표 사당화 논란이 보여주듯 물밑에서는 계파 권력투쟁 역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당을 추락시킨 본질과는 동떨어진 대여 공세 역시 '불변'이다.

누가 되더라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와 불신이 팽배한 것도 이번 경선이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주된 요인이다. 친홍이든, 친박이든, 중립 성향이든 사람들의 눈에는 시쳇말로 '오십보 백보요',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현안에 대해 한국당이 어떤 포지션을 취하게 될지 예측하는 것은 정치 문외안에게도 쉬운 일이 됐다. 과거는 논외로 치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만 보더라도 한국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주야장천 외치고 있지 않은가.

여야정 협의체 불참 선언, 이낙연 총리 예방 거절, 추경예산 반대, 국무위원 인사청문회 파행, 차담회 거부, 여야 영수회담 거부, 헌법재판소장 반대 및 표결 불참, 대법원장 인준 반대, 국정감사 보이콧 등 한국당이 반대하거나 거부한 현안들은 지금껏 한 둘이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극적으로 합의된 2018년 예산안 역시 마찬가지. 예산안 여야 합의 직후 열린 의원총외에서 협상을 주도한 정우택 원내대표가 의원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일련의 흐름들은 누가 원내대표가 된다 한들 한국당의 대여 강경 기조가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변화의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지금과 같은 정치지형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의미다. 한국당이 직면한 위기의 심각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왜 그럴까. 국정농단 사태와 대통령 탄핵에 대한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지기는커녕 적반하장과 자가당착, 민심을 거스르는 과거지향적 행태를 고집하고 있는 한국당에 대해 국민들의 염증과 피로감이 쌓여만 가고 있다. '한국당 해체'를 외치는 성난 시민들의 함성이 텃밭인 대구에서도 목격되고 있는 실정이다. 반세기가 넘도록 사회를 짓누르던 지역주의와 반공 이데올로기도 힘을 쓰지 못한다. '시대'가,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그러나 한국당은 여전히 '과거'에 산다. 미래를 향한 파격적 발상을 보여주고, 케케묵은 고정관념과 통념을 폐기하는 과감한 도전에 나서야 함에도 낡은 담론과 방식으로 사태를 모면하려 애쓰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하는 꼴이 완전히 거꾸로다. 새롭고 참신한 인물들은 찾으려야 찾아보기 힘들고, 권력의지만 높을 뿐 시민의 삶을 진작시키는 정책 개발과 제도 개선에는 뒷전이다. 새 시대에 걸맞는 수준높은 정치를 보여주기는커녕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고만 하고 있다.


시대 흐름을 역행하는 과거 세력, 시대 인식을 따라잡지 못하는 정치 세력이 시민의 정치적 의사를 제대로 대리할 수는 없는 노릇일 터. 한국당은 위기의 본질을 전혀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누가 뽑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바꾸느냐가 중요하다. 이런 상태로는 누가 선출된다 해도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 당연히 당의 미래도 담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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