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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팽' 당한 전원책, 다음은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9일 조직강화특위 위원인 전원책 변호사를 해촉했다. 내년 2월로 예정된 전당대회 일정을 연기해야 한다며 당 지도부와 마찰을 빚어온 전 변호사가 비대위 결정에 반발하자 전격적으로 해촉을 결정한 것이다. 

이로써 이목을 한몸에 받으며 한국당 조강특위에 합류한 전 변호사는 인적쇄신의 칼을 휘둘러보지도 못한 채 37일 만에 당을 떠나게 됐다.

"오늘 비대위는 조강특위 위원인 전 위원이 비대위 결정에 동의할 뜻이 없음을 확인하고 전 위원을 조강특위 위원직에서 해촉하기로 했다. 어제 비대위 결정사안에 대해 사무총장인 제가 직접 전 변호사를 찾아 뵙고 소명 드리고, 이 사안을 준수하셔서 조강특위가 정상 가동되도록 설득작업을 했지만 동의하지 않아 설득작업이 끝났다. 전 위원이 공개적으로 준수할 수 없음을 말했기 때문에 더 이상 상황을 둘 수 없다고 판단해서 즉각 해촉을 결정하고 새로운 외부 인사를 선임해서 조강특위를 정상가동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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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 사무총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해촉 사유다. 전당대회 시기를 둘러싼 갈등이 전 변호사와 결별하게 된 결정적 이유라는 설명이다. 


ⓒ 오마이뉴스

그동안 전 변호사는 2월 전당대회를 고수하는 당 지도부에 맞서 '전대연기론'을 강력하게 주장해 온 터였다. 2월에 전당대회를 실시하면 당협위원장 교체 작업을 제대로 하기 어려운 데다가 신임 당 대표가 언제든 결정을 뒤집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전 변호사는 해촉 통보를 받은 이후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내년 2월 말 전당대회를 하려면 12월 15일까지 현역 의원을 잘라야 하는데 그것은 누가 봐도 불가능하다"며 각을 세웠다. 

이날 오후 자택 앞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2월말 전당대회를 하라는 이야기는 나를 정말 하청업체 취급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시간에 쫓긴 인적쇄신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뜻을 재차 피력한 것이다. 

전당대회 일정을 둘러싼 갈등이 기폭제가 됐지만 비대위가 전 변호사를 해촉하기로 한 것은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이미 당내에서는 전 변호사의 좌충우돌식 돌발언행에 부정적 기류가 증폭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전 변호사는 특위 위원으로 위촉된 이후 "탄핵 재판이 졸속으로 이루어졌다", "한국당 모든 문제의 뿌리는 박근혜다", "경제민주화 강령을 받아들이고 당색을 빨간색으로 바꿔 당이 침몰하기 시작했다" 등의 돌출 발언으로 당내 혼란을 가중시켜왔다. 그 때문에 당안팎에서는 전 변호사가 월권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더욱이 전 변호사는 인적쇄신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당사자다.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취임 일성으로 강도 높은 인적 쇄신을 예고했기도 했다. 전 변호사를 경계하는 당내 분위기를 감안하면 잇따라 분란을 촉발하는 그의 언행이 달갑게 보일 리는 없었을 터다. 

이와 관련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전 변호사가 해촉되기 하루 전인 8일 기자들과 만나 "당내에서 의원들을 만날 때마다 전 위원의 언행 이야기를 들은 게 사실"이라며 "어제 그제 초선모임과 오늘 재선모임도 마찬가지다"라고 밝힌 바 있다. 전 변호사를 향한 당내의 부정적 기류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김 위원장은 전 변호사 해촉 관련 입장문에서 "당의 기강과 질서가 흔들리고 당과 당 기구의 신뢰가 더이상 떨어져서는 안 된다"며 "전대 일정과 관련해서도 더이상의 혼란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이어 "국민과 당원 동지들께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린다", "경위야 어찌 됐든 비대위원장인 제 부덕의 소치"라고도 했다. 


ⓒ 오마이뉴스


그 말 그대로, 이번 소동은 전적으로 김 위원장의 책임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당 지도부와 사전 조율 없이 독단적 행동으로 당내 분란을 초래한 전 변호사나 명망있는 외부 인사 영입만으로 당의 체질을 바꿀 수 있다고 판단한 지도부나 결국 '도긴개긴'이긴 마찬가지다. 

특히 전 변호사를 영입한 김 위원장은 더욱 궁색한 처지가 됐다. 김 위원장은 자기 손에 피를 묻히기 싫어 '하청을 줬다'는 뒷말까지 들어가며 전 변호사에게 인적쇄신의 '전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한 실패로 끝이 났다. 호기롭게 출범한 '전원책' 조강특위는 아무 것도 해보지 못하고 좌초됐다. 

문제는 전 변호사의 퇴장이 비단 특위 위원 한 사람을 교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전 변호사는 김병준 비대위가 '십고초려'를 통해 어렵게 영입한 인사다. 그만큼 한국당의 쇄신 의지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욕을 먹더라도 칼자루가 있으니 할 일을 할 것"이라던 전 변호사는 당에 합류한 이후 보여준 게 거의 없다. 한국당의 고질적 병폐인 계파 청산과 새 인물 수혈에 나설 것이라 기대했지만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종잡을 수 없는 언행으로 당내 분란만 가중시키더니 급기야 문자 메시지로 해촉을 당하는 굴욕을 당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전 변호사를 통해 여론을 되돌리고, 지지부진하다고 비판받던 당내 쇄신을 선도하려던 김병준 비대위의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이는 사실상 한국당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인적 청산 실험이 실패했다는 뜻이나 다름이 없다.

전 변호사 해촉의 의미가 남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당의 재탄생을 위해 출범한 김병준 비대위 역시 '전원책' 조강특위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김병준 비대위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아주 인색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김병준 비대위가 출범할 당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요구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이념적 지평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대적인 인적청산을 통해 계파 청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시대정신에 맞게 당의 이념과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함에도 한국당은 국가안보와 남북관계 등에서 여전히 수구냉전적 인식과 행태를 고수하고 있다. 당 혁신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인적청산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국정농단과 탄핵, 대선과 지방선거 참패에 대한 반성도, 자기희생도 찾아보기 힘들다. 

대안과 비전도 안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사회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정책이나 새로운 패러다임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실정과 실책에 기대 반사이득을 보려는 행태만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정부여당의 지지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한국당이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일 터다. 

전 변호사를 해촉한 날 김 위원장은 충북도당 여성·청년 당원 간담회에서 "제 팔을 하나 잘라내는 그런 기분"이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진심이라 믿고 싶다. 그러나 그것을 증명하려면 달라져야 한다.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전 변호사의 씁쓸한 퇴장 속에 담겨있는 본질적 의미를 직시하기 바란다. 전 변호사가 갔던 그 길을 김 위원장이 걷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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